다만 정부가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식품 안전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제도에는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프레시안은 총 5회에 걸쳐, 원산지 표시제, 수입쇠고기 유통이력제, 국내산 쇠고기 이력제 등의 시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점을 짚어본다.<편집자>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①] "20년간 먹던 고깃집 고기 맛이 변했어. 조사해봐" |
▲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수입 쇠고기의 수입유통식별번호. 왼쪽 노란색 스티커의 열두 자리 번호다. ⓒ프레시안(김하영) |
지난 15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수입쇠고기 유통이력제 현창체험'을 위해 찾은 한 무리의 주부들이 식육코너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쇠고기 매대에 표시돼 있는 열두 자리 '수입유통식별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800301034359"
스마트폰으로 '수입쇠고기 유통이력관리시스템' 홈페이지(☞바로 가기)에 접속해 번호를 입력하자 수입 정보가 좌르륵 떴다.
매대에는 "부위명: 척아이롤, 용도: 스테이크용, 원산지: 수입(쇠고기, 호주)라는 정보만 있었지만, 시스템에 접속하니 원산지는 물론, 수출국 도축·가공장 이름, 수출국 도축·가공일자, 수출업체, 수입업체, 수입일자가 표시돼 있었다. 특히 '냉장'인지 '냉동'인지의 정보와 유통기한, 부위명까지 표시된 점이 눈에 띄었다.
검색 결과 호주산 쇠고기는 'JBS AUSTRALIA PTY LTD'라는 곳에서 5월 18~24일 도축됐고, 6월 15일 HANJUNG FOOF LTD라는 업체에 의해 수입됐으며, 유통기한은 8월 4~22일까지였다. 부위는 목심, 앞다리, 우둔, 설도, 양지, 갈비 등이 뒤섞여 있었는데, 이는 수출 단계에서 해당 국가의 쇠고기 부위 분류 방식이 다르거나 포장 시 여러 부위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도축일과 유통기한도 부위별로 조금씩 달랐다.
▲ 수입유통식별번호를 입력해 조회한 화면. ⓒ프레시안 |
내친 김에 다른 수입 쇠고기의 수입유통식별번호도 찍어봤다. 미국 'JBS GREEN BAY, INC.'와 'JBS TOLLESON, INC.' 두 곳에서 도축‧가공돼 'SWIFT BEEF CO.'가 수출, 신세계푸드가 수입했다. 앞선 호주산 쇠고기와 다른 점은 도축일자가 4월 25일~5월 4일로 2주일가량 더 오래 전 쇠고기였다. 수입 냉장 쇠고기의 유통기한은 3개월로, 이 미국산 쇠고기의 유통기한은 7월 26~8월 3일이었다.
원산지 표시 부분에서는 큰 차이는 없지만 수입유통식별번호를 통해 매대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도축일과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물론, 일반 휴대전화에서도 접속번호 '6626'을 입력하고 통신사별 인터넷 접속키를 눌러 수입유통식별번호를 입력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수입육의 등급은 표시되지 않는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쇠고기 수입국의 등급 체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은 '프라임', '초이스' 등으로 나뉘지만 호주의 경우 풀을 먹고 자랐는지(Grass Fed.), 곡물을 먹고 자랐는지(Grain Fed.), 소의 성숙도, 거세 여부 등 품질이 아니라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분류가 이뤄지고 있다.
후쿠시마 세슘 쇠고기가 수입됐다면?
▲ 검역관이 내용물 검사에 앞서 수출국 검역 증명서와 수입품 내역이 일치하는지 점검하고 있다. ⓒ프레시안(김하영) |
이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수입 쇠고기의 수입부터 판매까지 유통 단계별 거래내역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모든 쇠고기 수입업자와 종업원 5인 이상의 식육포장처리업자, 규모 300㎡ 이상의 식육판매업자·식육부산물판매업자는 전산망에 수입육 입출입 내역을 기록해야 한다. 그 외 수입 쇠고기를 사고 파는 모든 이들은 거래내역서 장부를 작성해 1년간 보관해야 한다.
이렇게 유통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은 오염된 쇠고기가 수입됐을 때 위해 쇠고기를 신속하게 회수하기 위해서다. 유통 기록을 통해 수입된 쇠고기가 어느 도매상을 통해 어느 소매상에 판매됐는지 위치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마트는 이를 위해 쇠고기 정보를 계산대에서 바로 전송 받아 판매를 차단하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일본산 쇠고기는 수입되지 않지만, 만약 후쿠시마 세슘 오염 쇠고기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수입유통이력제를 통해 후쿠시마 산 쇠고기가 어디에서 어디로 팔려 나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추적을 통해 신속한 회수가 가능하다. 그 이전에 소비자들이 수입유통식별번호를 입력해 의심 가는 쇠고기를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히 제도가 본격 시행된 7개월 동안 아직 위해 쇠고기 회수가 실제로 이뤄진 사례는 없다고 한다.
유통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유통단계를 모두 기록 관리하기 때문에 수입량과 출고량을 맞춰야 한다. 호주산을 미국산으로,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키기 어렵다. 만약 미국산 냉동 쇠고기를 100kg, 호주산 냉장 쇠고기 100kg을 들여왔는데, 수입유통식별번호를 부여해 판매한 기록에 미국산 냉동 쇠고기 50kg, 호주산 냉장 쇠고기 150kg으로 기록돼 있으면 미국산 냉동 쇠고기 50kg의 재고를 입증하고, 호주산 냉장 쇠고기 50kg의 출처를 입증해야 한다. 적발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관계자는 "원산지 표시를 넘어 수입유통이력제를 통한 유통 관리까지 하기 때문에 유통 업자들이 섣불리 '장난'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15일 검역과 통관절차를 마치고 발급돼 부착된 수입유통식별번호. 번호를 조회한 결과 미국에서 6월 10!23일 도축돼 7월 15일 수입됐다. ⓒ프레시안(김하영) |
구슬이 서 말이어도….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더니, 그제서야 창고에 가서 박스 하나를 꺼내오더니 "이거 말하는 건가?"라면서 박스에 붙어 있는 유통이력제 관련 스티커를 보여줬다. 주인은 "얼마 전에 설명은 들었는데, 이거구만"이라며 멋쩍어 했다.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정육점. 역시 매대에는 수입유통식별번호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정육점 주인은 수입유통식별번호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매대에까지 일일이 표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차피 원산지만 알면 되죠. 수입유통식별번호 찾는 손님도 없고, 일일이 스티커 뽑아서 붙여줄 기계도 없고. 그런 거 큰 마트에서나 하는 거지 이런 작은 가게에서 고기 끊어서 파는데 굳이 필요한가 모르겠네요." 그는 "그래도 기관에서 검사를 나오기 때문에 입출고, 재고 내역은 장부에 다 기록하고 있다"며 "요 옆에 SSM에서 수입유통식별번호를 부착하고 있어서 일단은 매대에라도 표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식별번호 시스템 잘 갖춰져 있는 대형 마트들이 직접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도 수입유통식별번호를 제공하지 않는다. 매대에서는 수입유통식별번호를 직접 확인하고 고를 수 있지만, 정작 인터넷에서 주문할 때는 미리 확인할 수 없다. 일부 통신판매 업체 중에는 판매 홈페이지는 물론 배달 된 쇠고기의 포장에도 수입유통식별번호를 표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
다만, 냉동 수입 쇠고기의 경우에는 수입유통식별번호 자체가 부여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냉동 수입 쇠고기의 경우 유통기한이 1년인데,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된 것은 지난해 12월이기 때문. 그 이전에 수입된 냉동 쇠고기의 경우에는 수입유통식별번호가 없다. 냉장 쇠고기는 유통기한이 3개월이기 때문에 7월에 유통 중인 냉장 쇠고기는 모두 수입유통식별번호가 부여돼 있다.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수입유통식별번호 표시가 확대되고 있지만, 현장에 완전 정착되기까지는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중요하다는 지적.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조현호 사무관은 "100억 원을 들여 수입유통이력제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도 소비자들의 관심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사무관은 "소비자를 이기는 영업자들은 없다"며 "수입쇠고기를 살 때 유통식별번호를 요구하고 조회하면 영업자들이 자극을 받아 제도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다. 소비자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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