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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내내 하혈…그래도 병원은 안 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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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내내 하혈…그래도 병원은 안 가, 왜?

[기고] 너무도 당연시되는 저임금 노동자의 권리 포기

"단무지에 밥만 먹으면 살 수는 있어"

이렇게 말하는 인생은 서글프다. 이 과잉의 시대에 이 무슨 결의인가. 대형마트에서 최저임금보다 조금 많은 임금을 받는 한 여성의 저임금 대처법이다. 그렇다. 적은 돈으로도 사먹을 음식은 많다. 1500원짜리 싸구려 김밥, 3000원짜리 싸구려 햄버거, 싸구려 길거리 음식.

'웰빙' 시대에 우리들의 빈곤은 싸구려 음식들로 꾸역꾸역 박탈감을 채우며 비만해지고 있다. 최저임금은 단지 적은 임금과 남들보다 적게 먹는 문제가 아니다.

쪽팔리다

A씨와 함께 일하는 동료 대부분은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A씨의 시급은 4900원, 하루 7.5시간 파트타이머다. 한 달에 채 100만 원을 벌지 못한다. 생활고에 찌들어가면서도 임금 올려달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산다.

'어쩔 수 없잖아, 현실인 걸…'이라며 체념하고 살아가는 A씨와 동료들. 이들은 저임금 노동자라고 적혀있지도 않은 유니폼이 부끄럽다. 대기업노동자와 달리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하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것은 내가 얼마짜리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A씨는 출근이 늦어 택시를 탔다.

'000 가주세요'라는 A씨의 말에 택시기사는 '출근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000 다니면서 얼마나 번다고 택시를 타세요?'라고 타박한다. 아침 7시40분, 차로 5분 거리인 출근길에서 저임금 노동자는 오늘도 쪽팔리다.

ⓒ연합뉴스

선택할 수 없는 삶, 지킬 수 없는 행복

A씨의 동료 B씨는 이혼하고 싶다. 남편의 의처증에 수년을 시달리다가 별거 중이다. 한 부모 가정이지만 아이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하지만 B씨의 월급으로 중학생인 두 자녀를 홀로 키울 엄두가 안 난다. 결국 B씨는 남편이 있는 집에 제 발로 들어갔다.

싫어도 어쩔수 없었다. B씨의 월급으론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었다. B씨는 그날로 가정에서의 행복은 포기했지만, 저임금 노동자인 B씨가 그나마 엄마로써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A씨의 동료 C씨는 10개월 내내 매일 하혈을 한다. 남성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매일 어지럽다는 C씨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고, 어제는 결국 주르륵 코피까지 흘렸다.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동료들의 걱정에 C씨는 이렇게 말했다.

"동네 산부인과 가면 대학병원에 가라고 해. 나쁜 놈들 돈만 받아쳐먹고…. 대학병원가기 싫어. 돈만 많이 받고 오래 기다려야하고…."

C씨는 결국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나름 어처구니없는 체념의 논리도 있다. 동료들의 걱정에 C씨는 "매일 하혈을 하는데 어지러운 게 당연하지"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단단히 병에 걸렸을 상황에도 저임금 노동자들은 무던하다. 진찰 한번 받는데 월급의 10분의 1을 써가면서 건강을 지키기엔 월급이 너무 적다.

그들의 생존방식, 포기

D씨는 아이를 지웠다. 자식이 주는 행복감과 성취감에 대한 기대와 미래도 지웠다. 머나 먼 미래를 꿈꾸기엔 당장 아이에게 들어갈 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부모자식이라는 본능적 관계조차 선택할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에도 D씨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술비를 걱정했다.

A씨는 친구만나기를 꺼린다. 약속과 함께 계산되는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면서도 '누가 계산하지?', '나는 얼마를 내야하지?' 라는 생각은 만남의 기쁨보다는 불안을 불러온다. 결국 A씨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하나 둘 끊어간다. 휴가철을 앞두고 평균 여름휴가비가 40만 원을 웃돈다는 뉴스가 나온다. 며칠 여행에 임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쓸 수는 없다.

A는 한 달째 반값 여행정보를 찾아 헤매더니 결국 여름휴가를 포기했다. 휴가철이 끝나면 좀 싸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휴가를 가을로 미뤘다. 가을엔 단풍놀이 계절이라고 또다시 미룰지도.

500원 올리면 저축도 할 만큼 충분한가?

이 얘기는 나와 내 주변의 실제 이야기다. 최저임금은 단지 적은 임금의 문제가 아니다. 10원 인상, 30원 인상이네 하며 흥정할 문제도 아니다. 인간의 자존감에 대한 문제이자 건강과 생명의 문제이며, 고립되면 자살하기도 하는 근원적 관계의 문제이고, 본능의 문제이자, 밥 그 이상의 문제이다.

흥정판으로 전락한 최저임금위원회가 파국을 맞은 가운데, 2012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오는 12~14일 다시 회의를 연다고 한다. 회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지만, 열리더라도 지난 7월 1일 제시된 공익위원안(시급4580~4620원)을 놓고 씁쓸한 줄다리기가 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줄다리기의 한 쪽에 선 사용자들은 물론 심판관인 공익위원들에게도 저임금노동자의 삶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용자들은 최저임금이 "저축도 할 만큼 충분한 임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윤만을 쫓는 게 아무리 자본의 속성이라지만, 어쩌면 그리도 잔혹한 말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 최소한의 양심이다. 이리 말하면 경영계는 최저임금은 감상이 아닌 경제의 문제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다. 도대체 양심을 팽개치고, 사람의 사람다운 삶을 포기하고, 노동의 가치를 짓밟고 달성하려는 그 경제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국민들은 서서히 경제라는 말로 포장된 자본의 탐욕을 발견하고 있다. 기업은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노동하는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묻고 있다. 양심이 있다면 답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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