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가축=고기? 적게 키우고 덜 먹어야 산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가축=고기? 적게 키우고 덜 먹어야 산다"

[인터뷰] 전국귀농운동본부 전희식 대표 "감기 걸렸다고 사람 죽이나?"

"전에 우리는 들판에서 풀을 뜯고 살았습니다. 논에서 쟁기를 끌었고, 진실된 노동 끝에 한 통의 여물을 받았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제사상이나 명절상에 귀한 음식으로 오르긴 했지만, 한 번도 식탐의 재료가 되어 사시사철 고깃집에 걸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날이면 날마다 소주에 곁들여 우리를 뜯어먹던 이들이 포클레인의 삽날로 우리를 짓뭉개고 있습니다. 좁은 쇠창살에 가두어 놓고 평생 사료만 먹이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평생토록 단 한 번도 짝짓기를 못하게 하고 강제 인공수정으로 새끼만 빼내가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자식같이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살처분 당했다고 통곡하는 축산 농가에도 할 말이 있습니다. 정녕 자식을 이렇게 키운답니까."

'늙은 소 한 마리의 호소'. 하루 10만 마리씩 살아있는 가축이 구덩이에 파묻히던 지난 1월, 그가 쓴 한 편의 글은 구제역에 몸살을 앓던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농민 전희식(54) 씨. 시급히 생매장해야 할 것은 가축이 아니라 인간의 과도한 육식 문화라는 그의 날선 지적은, 가축 전염병의 창궐을 낳은 국내의 축산 환경을 되돌아보게 했다. 평생 흙 한 번 밟지 못하고, 햇볕 한 번 보지 못한 채 인간의 '식탐'을 위해 태어나고 죽는 '단백질 식품'들. 흔히 '공장 식'이라고 불리는 밀집 축산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구제역 사태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단 100일 만에 가축 350마리를 매몰한 사상 초유의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이제는 동물복지까지 고려한 친환경적 축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 기고와 각종 토론회를 통해 누구보다 강하게 현재의 축산 환경을 비판해온 전국귀농운동본부 전희식 대표를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 대표 특유의 날선 비판과 '파격적인' 제안은 인터뷰 내내 쏟아졌다. 그는 이번 구제역 파동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상한 음식은 계속 먹으면서 지사제만 처방하는 꼴"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밥상을 다시 들여다 봐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편집자>

▲ 전희식 전국귀농운동본부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구제역 사태, 상한 음식 계속 먹으면서 지사제만 처방하는 꼴"

프레시안 : 이제는 한 풀 꺾였다고 하지만,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였다. 살처분 된 가축 수만 350만 마리에 이른다. 흔히들 '방역 실패'를 지적하는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전희식 : 물론 가장 가까운 원인은 정부의 방역 실패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역을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방역 실패로만 진단하면, 더 견고하고 치밀한 방역 시스템이 요구될 것이고 그걸 무너뜨리는 사태는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다. 구제역 같은 가축 질병은 언제든 악화되고 반복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실제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같은 가축 질병의 발생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방역을 철저히 해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인데.

전희식 : 상한 음식을 계속 먹으면서 지사제만 처방하는 꼴이다. 설사를 멈추려면 일회적으로 약을 먹을 게 아니라, 상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유일한 대응책은 방역 강화였다. 발생 지역을 꽁꽁 밀폐하고 고립시켜서 확산을 막고 바이러스를 퇴치하겠다는 것이다. 꼼짝달싹 못하는 농민들 입장에선 비상계엄령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손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구제역이 터지면 그 땐 어떻게 할 건가. 상한 음식을 안 먹어야지, 설사약만 죽어라 먹는다고 되겠나.

여기서 상한 음식이 바로 '농업의 세계화'와 '축산의 산업화'를 말한다. 모든 가축 질병의 원인이 이 두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미국서 생산한 사료를 수입해 한국에서 돼지를 키우고, 그 돼지를 또 외국으로 수출한다. 돈벌이가 축산의 유일한 목적이다 보니 성장촉진제까지 맞춰가며 최대한 빨리 키워 가장 값나갈 때 내다판다. 항생제부터 시작해 온갖 약품을 넣어 키우다 보니, 가축들은 늘 '약물 중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몸은 커졌지만 면역 체계가 붕괴된 것이다. 이렇게 자란 가축들이 구제역 같은 질병에 취약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방역 시스템을 아무리 잘 꾸리고 초동대응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이번처럼 여기저기서 들불처럼 구제역이 번지면 방역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축산이 바뀌어야 가축 질병도 이긴다"

프레시안 : 가축 생매장이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살처분 방식에 대한 비판도 많다. 특히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논란도 많았는데, 전문가들은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선 불가피하다고 한다.

전희식 :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본다. 워낙 빠른 속도로 바이러스가 전파됐고, 빠르게 전파될 수밖에 없는 축산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체제에선 그 방법 외엔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매몰 방식을 중단하려면, 축산이 바뀌어야 한다. 구제역에 감염돼도 성체(成體)의 경우 치사율이 5~15% 수준이라고 한다. 축산이 바뀌면 구제역이 발병해도 지금처럼 광범위한 살처분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처럼 축산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가축이 단백질 공급을 위한 '식품'으로만 여겨지다 보니, 치사율이 낮아도 상품성을 이유로 다 죽이고 있다. 반복되는 동물 대량 살육은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파괴를 가져온다.

프레시안 : 그래서인지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공장 식 축산'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다. 얼마 전 전라남도에선 동물복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녹색축산 조례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전희식 : 최근 10년 동안의 통계를 보면, 축산 농가는 줄었는데 사육 두수는 늘어났다. 축산이 그만큼 대형화됐다는 뜻이다.

공장 식 축산의 핵심은 축산의 대형화뿐만 아니라 축산의 자동화, 상업화도 의미한다. 예컨대 시골에선 열댓 마리씩 소를 키우는 농가들이 많다. 사육 두수 자체는 적지만, 사육 방식은 완전히 공장식이다. 축사 안에 가둬 키워 가축이 한 번도 흙을 밟아보지 못하고, 풀과 건초 대신 유전자 조작 배합사료를 먹이고, 인공 수정으로 새끼를 낳는다. 사육 두수가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이번 구제역 사태 이후 조방축산, 즉 방목축산이 대안처럼 이야기되는데, 그것만으론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무조건 땅만 넓다고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농가의 사육 두수도 함께 제한해야 한다.

호주나 뉴질랜드, 미국처럼 땅덩이가 넓은 나라도 축산은 농지 훼손 등의 폐해를 일으킨다. 넓은 곳에서 사료 작물을 재배해 밀집 축산을 하나, 넓은 땅에 방목을 하나, 농지 훼손은 마찬가지다. 엄청난 땅이 점유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조방축산, 생태축산이 논의되는 '방식'이다. 거기엔 '이렇게 키워야 우리가 안전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전제돼 있다. 인간의 먹을거리로만 가축을 대하는 것이다. 이런 식은 안 된다.

"가축을 '식품'으로 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프레시안 : 가축을 인간의 먹을거리로 보지 말자는 주장인데, 어차피 축산이란 게 인간의 필요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전희식 : 일정하게 습관화 된 밥상 문화와 영양학적 편견의 산물이고, 넘어서야 할 관점이라고 본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다. 유목민들이야 다른 영양섭취의 방법이 없기 때문에 육식을 했지, 인간은 기본적으로 채식 동물이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많이 고기를 소비하게 된 것은 축산의 산업화가 시작된 최근 40년 사이의 일이다.

동물을 '음식'으로 보는, 더군다나 그 음식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소비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나온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육식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할 때, 그 때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명순환 구조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고기를 먹는 방식은 그렇지 않다. 생존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육식에 길들여진 입맛에 따라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프레시안 : 그런 맥락이라면 생태축산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건데…. 당장 모두가 채식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희식 : 나는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뜻)'란 개념을 즐겨 쓰는데, 축산 뿐 아니라 농업 전체가 그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지산지소의 개념은 흔히 통용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이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 돼지, 닭, 오리 같은 가축들도 먼 곳에서 들여온 사료가 아닌 지역에서 생산된 먹이를 먹고 자라야 한다. 자연생태계 먹이사슬의 여러 체계가 이 개념에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축산 규모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어떤 지역은 소 100마리도 키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100마리만 키우고, 더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건 적게 육식을 해도 되는 기후와 지형, 문화, 생태 조건에 그 지역이 놓여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 방식대로 한다면 논란이 엄청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육고기 자급량이 45~50%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해 충당을 하는 건데, 지산지소 축산을 하면 기존 생산량의 10%에도 못 미칠 거라고 본다. 물론 지산지소에서 '지역'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할지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축산이 바뀌면 살처분을 안 해도 된다'는 말 역시 그 연장선인가?

전희식 : 과거처럼 지산지소 농사를 짓고, 소위 '축산'의 개념이 아니라 '가축'의 개념으로 키운다면 구제역에 걸려도 살처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가구당 한두 마리의 가축만 키우고, 그 가축들이 풀도 뜯고 밭도 갈며 컸을 땐 치사율도 낮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란 소는 바이러스 내성도 강하고 면역력도 높다.

학계에선 구제역의 치사율이 최소 5%에서 최대 55%라고 한다. 엄정성이 과학의 기본인데, 이건 완전히 고무줄 수준이다. 그런데 이 치사율은 우리 축산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워낙 밀집축산이 많아 가축이 취약하게 자라다보니, 어느 지역에선 (치사율이) 55%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느 지역에선 5%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흔히 농작물은 거름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농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는데, 축산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살처분 할 것은 인간의 탐욕, 과도한 '육식 문화'다"

프레시안 : 다시 '지산지소' 축산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육식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전희식 : 그게 가능하냐고 많은 분들이 걱정하실 거다. 그러나 결국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과 같은 지구환경의 위기, 만성 질병, 이 모든 것들이 다 과도한 육식 문화와 대형화 된 축산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과도한 육식문화를 바꾸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생매장이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인도적 살처분'을 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데, 도대체 '인도적'인 게 뭔가. 인간의 입장에서 도리를 지킨다는 것인데, 죽어야 할 동물들의 입장에선 코웃음 칠 일이다.

현재 한국인이 먹는 육식의 양이 100년 전의 100배라고 한다. 작년 1인당 평균 36㎏을 먹었다. 2002년엔 32㎏이었다고 하니,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당장 육식문화의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는데도, 현실적인 수요자의 요청이란 이유로 이 모든 문제가 묵인되고 있다. 육식을 해야 단백질이 충당되고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식품산업의 허위 선전에 놀아나는 꼴이다. 금연운동만 해도 엄청난 국가예산을 들여 하고 있지 않은가. 육식에 대한 캠페인도 그런 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현재 먹는 양의 10분의 1로만 줄여도 충분하다.

프레시안 : 지산지소 축산을 해 고기 생산량이 줄어들면 고기값도 엄청 뛸 것이고 빈부격차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등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전희식 : 지금 한국에 소가 300만 마리 정도 있다고 한다. 50~60년 전에는 30만 마리였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쓰레기 같은 쇠고기 10배를 먹는 것 보단 알토란같은 쇠고기를 조금 먹는 게 낫지 않은가.

지금처럼 공장 식 밀집축산으로 생산되는 고기는 결코 '안전'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항생제 등 온갖 주사를 맞고 자라 약물중독 상태에 이른 고기가 인간에게도 좋을 리 없다. 육식을 많이 한 아이들이 집중력이 떨어지고 폭력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의 폭력성을 육식의 역사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고기 생산이 줄면 값이 올라갈 거라고 하는데, 담뱃값 올리면서 금연하자는 논리는 일반화 되어있지 않은가. 같은 맥락이다.

예전에는 제사나 명절 때만 고기를 먹었다. 그렇게만 먹어도 충분하다.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오로지 혀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다. 농산물 생산도 마찬가지지만, 축산 과정에서 고기는 최대한 소비자를 유혹하는 방식으로 가공된다.

마블링을 위해 유통 과정에서 고기에 지방을 주입하는 '라딩(larding)' 작업을 하는데, 먹을 때 연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위해 가공하는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부드럽고 연한 음식이 건강을 망친다. 결국 우리가 먹는 고기는, 실제 고기가 아니라 '만들어진' 음식인 것이다.

뿌리가 사라진 배추, 지줏대 세운 과수…"우리의 밥상을 다시 보자"

프레시안 : 비단 육식산업만이 문제가 아니라, 유전자조작(GMO) 식품 등 밥상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희식 : 대표적으로 요즘 배추에는 뿌리가 없다. 어릴 때 김장하는 엄마 곁에서 배추 뿌리를 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텐데, 언제부터인가 배추에 뿌리가 사라졌다. 배추는 잎이 중요하다보니, 잎이 왕성한 종자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불필요해 보이는 여러 지체들을 달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손톱 깎기 귀찮다고 해서 손톱이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대형 농기업들은 그런 짓을 통해 우리의 밥상을 망치고 있다. 잎만 무성한 배추, 당도만 높은 과일, 이런 식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요즘 과수 농장에선 전지(剪枝), 즉 가지 자르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나뭇가지에 팔뚝만한 지줏대를 세워 가지 하나하나를 줄로 묶는다. 과일 알맹이가 너무 커서 가지가 지탱을 못하기 때문이다. 과일 알맹이가 크고 많이 열리게 종자개량을 한 탓이다. 사람으로 치면, 손발이나 머리를 가누지 못해 지지대를 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자개량의 목적은 오로지 크고, 보기 좋고, 빨리 작물을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종 다양성이 훼손돼 생태계 역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산지소 농사는 그렇지 않다. 나무가 스스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자기가 달 수 있는 열매만 달고, 가지가 버티기 힘들면 과일이 떨어진다. 모든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밀집축산으로 키운 동물이 허약해지니 계속 약을 먹이고, 과수는 붙들어 매고, 배추는 뿌리가 사라지고…농업이 망가지고 있다. 이번 구제역처럼 '대재앙'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간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통해 우리의 밥상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길거리에 나가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것만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오늘 뭘 먹는가의 문제 역시 고도의 정치 행위다. 우리의 밥상엔 온갖 초국적 기업의 농간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래서 밥상 안에 스민 자본의 작용점을 보고, 이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만악의 근원' 도시…도시를 경작하라!"

프레시안 : 우리나라는 인구 대다수가 도시에 집중돼 있는데, '지산지소'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전희식 : 바로 '도시 농업'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귀농운동본부에선 '도시를 경작하자'라는 표어를 걸고 활동하고 있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도시를 '만악의 근원'이라고 한다. 생산 무엇에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생활 쓰레기는 바깥 지역에 의존하고, 자립도는 아주 낮고, 다른 지역을 착취하며 작동하는 게 바로 도시다. 이런 도시를 바꿔야 한다.

일본의 경우, 도시 농업이 오래전부터 발달해 왔다. 도쿄의 금싸라기 땅까지 텃밭으로 가꾸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진 등 재난에 자주 노출된 일본인들에게 일종의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밖에도 도시 텃밭은 이웃과의 친교, 도시인들의 정서적 순화, 산소 생산 등의 환경 정화 기능을 한다. 무엇보다 건강한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자급돼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해 집중호우로 서울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빗물 투수가 안 되는 아스팔트로 죄다 발라버리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넓은 땅도 필요 없다. 가구당 5~6평씩만 농사를 지어도 기본적인 채소는 모두 자급이 된다. 일본은 아파트 주차장을 걷어내 논을 만든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런 금싸라기 땅에 주상복합건물을 짓지, 누가 농사를 짓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에선 도시농업을 할 경우 정부가 세제상 특례를 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 그게 주상복합건물보다 훨씬 '공익적'이란 공감대가 확산돼 있기 때문이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해 조금만 고민한다면, 당장의 이익만 계산하지 말고 멀리 바라본다면, 도시 텃밭은 굉장한 공익사업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사고가 터지고 나면 그 때서야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지난 광우병 사태 때 육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었고 생협 조합원도 많이 늘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초국적 기업의 광고 홍수와 기득권 세력의 세뇌에 개인이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등의 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방어막'이다. 상식이란 이름으로 당연한 듯 통용되는 잘못된 견해들, 그걸 견고하게 지탱하는 자본주의 시스템…그 속에서 개인은 언제나 발가벗겨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학은 나와야 밥벌이를 한다던가, 고기를 먹어야 영양균형이 이뤄진다는 것, 성장기 때 우유는 필수라는 말은 거의 '미신' 수준이다.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의 음식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안 먹는다. 아니, 못 먹는다. 공짜로 줘도 안 먹을 것이다. 살아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미료와 양념 덩어리라고 본다. 단식을 하고 채식을 하면 몸이 그렇게 작용한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의 의제가 진보정당 중심으로 논의되지만 지금의 의료, 지금의 교육, 지금의 밥상이 공짜면 뭐하냐? 나 같으면 그게 다 공짜가 되어도 거부한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구제역 사태로 우리의 밥상, 우리의 식문화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 문제의 본질이, 또 답이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