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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집단이 밥그릇 지키려 국가더러 '사기치라' 강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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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집단이 밥그릇 지키려 국가더러 '사기치라' 강요하나"

[현장] 25개 로스쿨 3000여 명 자퇴서 들고 법무부 앞 시위

이 땅의 법조인들에게

(상략)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 쉬는 국민들에게
그대들은 어찌 그리 야박하단 말인가
변호사 1인당 국민 5891명
그대들은 이들의 의견을, 이들의 외침을 모두 귀담아들어 줄 수 있는가
사법개혁은 바로 그런 국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귀담아들어 주기 위한 노력이노라
(중략)
법조인들이여
부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고하노라
그리하여 선대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민주주의가 만개하기를 기대하노라


6일, 경기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 한 수가 울려 퍼졌다. 현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생들의 마음을 담은 이 시는 전북대학교 엄태섭 학생회장이 만든 것이다.

2시경부터 집회가 시작됐지만 한낮에도 불구하고 칼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은 추웠다. 한 시간 전부터 대형 주차장에 줄을 이어 들어선 수십 대의 관광버스에선 수많은 학생들이 내렸다. 이날 집회를 위해 모인 이들은 전국 25개 로스쿨 소속 학생 3000여 명이었다.

▲ 25개 대학 로스쿨 학생 회장들이 자퇴서를 들고 서 있다. ⓒ뉴시스

멀리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부터 경남, 전남 등지에서도 서둘러 올라왔다. 동아대 박빛나 학생회장은 "새벽 5시 30분에 부산에서 출발해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이른 새벽 이들의 발길을 재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3000여 명의 학생들이 집회를 연 계기는 지난달 25일 법무부가 주최한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 방법에 관한 공청회에서 불거졌다. 이 자리에서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합격자 정원을 입학정원 대비 50%로 제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김형주 로스쿨학생협의회 회장은 "정원 대비 50% 합격이라는 변협의 제안은 법조인력 공급을 통제하겠다는 사법고시식 발상"이라며 "로스쿨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응시인원의 80~90%가 합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학생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는 '본래 취지'와는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 사법시험 제도는 보다 많은 변호사를 배출해 국민들에게 법률서비스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80% 수준의 합격률을 대략 합의하고 개원했기 때문에 정부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학생은 "로스쿨 도입 및 학생 모집 단계에서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80% 수준으로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합격률을 50%로 낮춘다면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과 다름 없다. 변호사 집단이라는 변협이 자기 밥그릇 지키겠다고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83개 시·군은 아직도 무변촌"

이날 학생들이 만들어온 피켓도 이런 주장들을 담고 있다. '83개 시·군은 아직도 무변촌', '전국 변호사 만명... 서울 서초구에 1/3'이란 피켓에선 현재 1인당 변호사 수가 OECD 국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변협이 주장하는 '변호사가 너무 많다'는 논리는 법률서비스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보단 공급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나온 논리라고 항변했다.

또한 학생들은 변협의 주장대로 하면 일본처럼 로스쿨 제도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변협의 말처럼 인위적으로 합격 정원을 제한하면 불합격자가 누적돼 결국 몇 년 안 가 변호사 시험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10%, 20% 정도로 합격률이 떨어지면 졸업생들은 장기실업자로 내몰리게 되고 과거 고시제도처럼 고시촌을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변호사시험 정원제 일본실패 답습', '고학력 취업자 모아다가 고학력 실업자 양산 한다' 피켓의 구호는 이런 문제들을 반영한다.

이날 결연한 자세로 모인 학생들은 모두 '조건부 자퇴서'를 작성해 와 시위를 벌였다. 김형주 회장은 "회원 학교에서 자퇴서 2601명분을 확보했다"라고 밝혔다. 로스쿨 전체 재적 학생 수(3820여 명)의 70%에 육박하는 수다. 현재 추가 접수 중인 서류까지 합치면 80%대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학생협의회는 전했다.

'조건부'인 이유는 법무부의 결정에 따라 자퇴를 철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학생들은 자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뉴시스

이날 집회에서 25개 전체 로스쿨 대표들은 자신들의 학교에서 거둔 집단자퇴서를 각각 제출했고, 9개 대학 대표자(경북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들은 공동 의견서를 들고 법무부 건물로 향했다. 이후 이들 9개 대학 대표자는 법조인력과장 등 법무부 관계자들과 비공개 협의를 벌였다.

시민사회 단체도 "변호사시험 정원제 반대"

학생들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오늘 오후 1시 30분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기획추진단장이었던 김선수 변호사, 전 법무부 장관이었던 천정배 의원과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변호사시험 정원제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법무부가 변호사 시험을 현행 사법시험처럼 합격자 수를 미리 정해둔 정원제 시험으로 운영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로스쿨 도입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하태훈)는 '로스쿨에서 충실한 법학 및 실무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합격할 수 있는' 순수 자격시험으로 로스쿨을 운영하는 방침을 정하라고 촉구하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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