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표 국세청장 내정자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현대 글로비스 물량 몰아주기 등 재벌 일가의 변칙 증여·상속에 대해 "제도가 불비(不備)하다"며 "현행 세법으로는 과세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 내정자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조세법률주의와 납세자의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면서 "국민의 법 감정 상 (과세)해야 되는 것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인 조세법률주의를 따라야만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12일 열린 국회 재정경제위의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은 전 내정자에게 고소득층의 증여·상속세 문제, 론스타 등 해외투기 자본에 대한 과세 문제 등을 집중 추궁했다.
전군표 "방법이 없어"…심상정 "의지가 없겠지"
여야 위원들은 '삼성 에버랜드, SDS' '현대 글로비스, 모비스'등 구체적 회사명을 거명하며 이들이 재벌의 불법적 상속, 증여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전군표 국세청장 내정자는 '조세법률주의'를 내세우며 "지금으로선 과세가 불가능하다"고 버텼다.
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현대 글로비스 같이 자녀한테 (비상장)회사를 설립해 주고 물량을 몰아 줘서 실질적 증여효과를 내는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전 내정자는 "글로비스 같은 경우 회사는 사업 기회의 편취라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조세법률주의 원칙 하에서는 (과세가) 만만치 않다"면서 "삼성 같은 경우에는 재경부에서 검토했지만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고 답했다.
전 내정자가 "의원들의 지적에 공감하고 재벌들에게도 어떻게든 과세해야 한다고 본다"고 넘어가려 했지만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어떻게든'이 아니라 '어떻게 과세하겠다'고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고 늘어졌다.
이에 전 내정자는 조세법률주의를 재차 강조하며 "국민들의 요구나 의원 요구에 따라 법에 없는 것을 (과세)할 수는 없는 것이다"고 답했다.
그러나 심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 현대차 그룹이 글로비스, 엠코 등으로 1조2000억 원을 증여한 효과를 거뒀다고 지적하며 제도가 부족해 과세 못하면 법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라고 말했는데 답이 없다"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이에 전 내정자는 "우리는 종합적 검토를 끝내 재경부로 넘겨 그 쪽에서 검토 중"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도 "상속증여세 문제가 불거지니까 삼성과 현대에서 각각 8000억 원, 1조 원씩 사회에 헌납한다는 발표가 났다"면서 "내가 국세청장이면 도대체 낼 돈을 얼마나 안냈길래 저런 거액을 마련하는지, 돈의 출처는 어딘지 궁금해서 당장 세무조사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내정자는 "사실상 증여행위가 있음에도 법의 불비로 과세가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또 사회적으로 지적되니까 기여금을 다른 형태로 낸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돈의 출처는 반드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삼성 에버랜드 건에 대한 상속증여세 평가액을 계산해보니 2700억 원"이라며 "이는 4인 평균 가정 23만 가구의 근로소득세와 맞먹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뒤집어 말하면 23만 가구의 소득세만큼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론스타 과세 자신 있다…방법은 못 밝혀"
이날 청문회에서든 최대 4조5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차익에 대한 과세 문제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전 내정자는 전임 이주성 국세청장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준비하고 있고 과세도 자신 있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구체적 과세방법에 대해서는 "외국계 기업에 대한 과세는 논리와 입증자료 간의 전쟁이라 자세히 말씀 못 드리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우리당 우제창 의원은 "이주성 전 청장이 '자신 있다'고 말했지만 조세특례지역에서 벨기에가 빠졌기 때문에 론스타가 벨기에 소재로 판명나면 과세할 수 없고 론스타의 투자자가 미국거주자로 나와도 한미조세협정에 따라 과세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전 내정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우 의원이 "그렇다면 과세방법이 뭐냐"고 다시 묻자 전 내정자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지만 우리 나름대로 잘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 의원은 "2003년 스타타워 매각 때처럼 론스타 코리아에 권한이 있었음을 입증해 고정사업장으로 간주 과세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고 전 내정자는 "다각적 검토방법 중 하나"라고만 답했다.
전 내정자는 "론스타 과세는 자신 있다"며 수차례 확언했지만 론스타가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로비활동이나 한미 FTA의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론스타가 미 상무부, 의회 등에 한국정부의 과세 문제로 전방위적 로비를 벌였다는 보도를 봤냐"고 물었지만 전 내정자는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송영길 의원도 "한미 FTA로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국경 간 거래나 신금융상품 문제에 대한 국세청 차원의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별도로 준비하는 팀이 있나"고 물었지만 전 내정자는 역시 "없다"고 답했다.
전 내정자는 심상정 의원이 "한미FTA가 체결되면 투자자-정부소송제도 도입으로 과세권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에 대한 정책적 검토가 있나"고 질의하자 "한미FTA로 과세권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응수했다.
"언론사, 성역 아니지만 동시 세무조사는 없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뒤늦게 지난 2001년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DJ정부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처럼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자 전 내정자는 "나는 그 때 국방대학원에 파견 나가서 잘 모르겠지만 23개 언론사에 대한 동시조사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전 내정자는 "언론사도 성역이 아니라 세무조사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당시처럼 한꺼번에 (세무조사를)실시해 오해의 여지를 남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 내정자는 "앞으로는 가급적 일반사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도 줄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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