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대대장으로부터 본부중대에 갑자기 임무가 내려왔습니다. 간부식당 건물 옆에 '정자'를 하나 지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조만간 사단장의 부대시찰이 있는데, 대대장은 정자에서 닭백숙이라도 낼 요량이었나 봅니다.
그 때부터 행정보급관이 톱질 좀 한다는 부대원들을 데리고 부대 주변의 야산을 훑으며 쓸만한 나무를 물색하러 다녔고, 몇 그루 베어와 쓱싹쓱싹 톱질을 해 기둥을 땅에 박았습니다. 이어 마루도 만들고 지붕을 올려야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전 중대에 '볏짚으로 지붕을 엮을 수 있는 병사' 수색령을 내렸고, 부대원들은 볏짚 확보 작전에 나섰습니다. '특별휴가'를 노린 몇몇 시골출신 병사들이 지붕 엮기를 자원했지만 얼마 안 돼 그들의 실력이 '뽀록'이 났고 정자 건설 작전은 난관에서 헤어나질 못 했습니다.
그 때 꺼내 든 카드가 '공병대'였습니다. 사단 공병대에 의뢰한 결과 '목공'을 전문으로 하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3명의 병사가 허리춤에 각종 목공용구를 차고 연장이 가득한 가방을 들고 파견을 왔습니다. 그들의 작업은 마술에 가까웠습니다. 정확하게 켜고 맞추고 박더니 지붕까지 나무로 짜 맞춰 단 사흘 만에 뚝딱뚝딱 정자를 지었습니다.
공병대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간부숙소 앞에는 1면짜리 테니스코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 진지공사 기간에 대대장이 '간부 체력강화'를 이유로 테니스코트를 2면으로 늘리는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다른 중대원들이 모두 부대 밖으로 진지 보수를 하러 나갈 때 본부중대 병사들은 최소 경계 인원만 남기고 죄 테니스장 확장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덕분에 고참 병사들이 "나에게 삽 대신 총을 달라"면서 경계 임무에 자원하는 진풍경도 벌어졌었죠.
엄청난 공사였습니다. 테니스장이 간부숙소 올라가는 길 언덕에 있었는데, 확장을 위해서는 간부숙소 처마 밑까지 언덕을 깎아내야 했습니다. 연일 곡괭이와 삽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파낸 흙과 돌은 마대자루 양쪽에 막대기를 꽂은 일명 '당가'라는데 퍼 담아 쉴 새없이 날랐습니다. 아마 높은 곳에서 봤다면 개미들이 집 짓는 거처럼 보였을 겁니다. 일의 끝이 안 보였습니다. 대대장도 답답했던지 급기야 공병대에 '원군'을 요청했죠. 포클레인 한 대와 덤프트럭 2대가 왔습니다. 순식간에 언덕은 깎여 나갔고, 덤프트럭은 당가 1000개 정도의 기능을 수행했습지다. 공병대는 그렇게 수십 명의 병사들을 '삽질'에서 해방시켜줬고, 위대한 부대로 추앙받았습니다.
4대강 사업에 투입된 공병대인 '청강부대'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주특기 향상 차원에서 훈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명색이 공병대인데 산골 부대에 불려 다니면서 산 깎아 테니스장 만들고, 닭백숙 먹을 정자 만드는 일보다 얼마나 공병대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공병대가 이제 정자나 테니장 만들기에서 해방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공병의 주요임무는 "군이 사용하는 도로의 확보, 가교 부설, 도로의 구축과 보수, 그리고 상륙작전에서는 상륙용 주정을 이용해 부대를 상륙하도록 하는 일 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목포대교 투입"을 묻자 김 장관이 "필요하면 지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참에 도로공사에 아예 공병부대 훈련소를 차려 전국 각지 토목공사에 상시 투입하는 건 어떨까요? 그게 진짜 '주특기'라면요.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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