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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도 '4대강 사업 저지' 한 자리에 "거대한 수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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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도 '4대강 사업 저지' 한 자리에 "거대한 수로만"

[현장] 봉은사서 '소리영상제'…명진 "무치 정부"

"강은 초상집인데 조등(弔燈)도 밝힐 수 없다. 조문(弔問) 가는 길, 눈물만 걸음 재촉한다." (김희정)

"지금 살해되고 있는 것이 오직 강뿐이겠는가. 말이 흐르지 않는 땅, 우리의 입을 돌려 달라." (이민하)

"강의 낱낱을 들꽃의 낱낱을 모래의 낱낱을 그냥 두라, 살아 숨쉬게, 나도 숨쉬게, 아이들이 숨쉬게." (권현형)

"누가 강을 살리고 혹은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강은 끝내 이명박 정권보다 오래도록 멀리 흐를 것이다" (최성각)


1882개의 문장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됐다. 문화예술인 1882명이 4대강 사업을 '강에 대한 살해'라고 선언했다. "자연이 없이는 그 어떤 예술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떠한 화려한 수사로도 그 죽음의 현장을 미화할 수 없"기에 시작된 시국선언이었다.

'4대강 사업 중단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이 끝난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 보우당 앞. 해가 완전히 저문 시간이 되자, 시 낭송과 다큐멘터리 상영, 공연, 자유 발언이 이어지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작가선언6.9를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소리영상제-강은 강처럼 흐르게 하라'를 마련한 것.

▲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소리영상제'가 20일 오후 서울 봉은사에서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공연의 시작과 함께 무대에 오른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은 침통한 표정으로 지식인과 언론을 향해 따끔한 충고의 말을 이어나갔다. 김 발행인은 "4대강 사업이 대운하의 은폐된 이름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 않았나. 지식인과 언론이 침묵하지 않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강은 사라지고 거대한 수로만 남을 것이다. 강이 없는 나라에서 어떤 문학과 예술이 가능하겠나"라며 "우리의 힘으로 과연 되겠냐고 의심하지 말고, 이미 (사업이) 많이 진행됐다고 포기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댐을 폭파하고 기도하자"고 덧붙였다.

▲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도 연단에 올라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이어나갔다. 명진 스님은 "만약 현 정부에게 별명을 지어준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치 정부', '삽질 정권'으로 불러야 할 것"이라며 "이 시대에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역사 속에서 죄인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변영주 영화감독은 이날 문화예술인 연대사에서 "4대강 현장에 가본 사람들은 분노보다는 공포를 느낀다. 가장 폭력적이고 반생명적인 방식으로 벌건 대낮에 대규모 공사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 감독은 이어 "우리는 4대강 사업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을 깰 수 있는 것도 우리"라고 강조하며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지지하기 보다는, 이 사업이 99.9% 완공돼도 그것을 깨부수자고 말하는 정치인을 만들고, 또 지지하자"고 덧붙였다.

4시간 남짓 진행된 이날 소리영상제는 각종 영상 상영과 춤·노래 공연, 시 낭송 등으로 이어졌다. 보우사 앞마당에 모인 참가자 300여 명은 작가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함께 부르고, 마지막으로 풍등을 날리며 '4대강 사업 중단'의 염원을 모았다.

▲ 보우사 앞뜰에 전시된 조형물과 판화. ⓒ프레시안(최형락)

아버지와 함께 낭독자로 나선 초등학교 5학년 김민재 학생의 동화 낭독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수십 년 전 쓰였다는 권정생의 동화 <새들은 날 수 있었습니다>의 한 대목은 어린 학생의 목소리를 통해 봉은사 앞뜰을 가득 울렸다.

""할아버지, 정말은 우리도 날고 싶어요. 높이 올라가고 싶고, 먼 곳도 가고 싶어요."
"날고 싶으면 나는 거다. 다만 날려거든 모든 새들이 한꺼번에 날면 되는 거다. 허수아비는 겁쟁이여서 모두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면 제풀에 날뛰다가 죽어 버릴 거야."
"야아, 맞았어요. 모두 함께 날면 허수아비는 꼼짝 못해요."

어느 날,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시원한 때였습니다. 하늘을 가득 메우듯이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습니다. 까마귀, 까치, 새매, 딱따구리, 황새, 두루미, 메추라기, 독수리…. 처음엔 어린 새들이, 다음엔 청년 새들이, 그 다음으로 많은 어른들과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새들까지 두 날개를 훨훨 펼치며 날아올랐습니다. 너무도 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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