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정부·여당의 기존 정책들에 대한 심판과 변화에 대한 요구다. 세종시 수정에 대한 반발은 대전과 충남·북에서 야당의 압승으로 표현되었고, 4대강 개발 강행에 대한 반발은 인천, 충북, 충남, 경남, 강원 등 4대강 유역 단체장의 전원 교체로 나타났으며, 정부·여당의 과도한 남북 간 위기감 조성과 북풍으로 인한 역풍은 그 동안 집권당의 아성이던 강원도에서의 한나라당 패배로 나타났다. 전교조 명단 공개와 무리한 교사 징계, 일제고사 강행 등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발과 자사고와 특목고 등 특권 교육 철폐에 대한 여망은 전남·북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강원 등 6곳의 진보 교육감의 당선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경우 25개 구청장 중 21개 지역을 민주당이 석권하였고, 경기도 시장 군수의 경우 31개 중 21개를 민주당(19개)과 무소속(2개)이 차지하였으며, 그 원인은 민주당 등 야당이 잘 해서라기보다는 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세대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이다.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 등의 광역 후보와 기초 지자체장 후보들의 대거 당선은 '노풍'의 효과 보다는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반발과 세대교체에 대한 국민 여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향후 민선 5기 단체장들에 대한 여론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들의 성공여부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권의 전면적인 세대교체가 가시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예전에 없었던 20대와 30대의 높은 투표 참여 경향은 문자 메시지 등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검증된 참여 독려 방식에 더하여, '트위터'나 '인증샷'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젊은 후보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세 번째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구체화된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무상급식 공약의 채택 여부로 판가름 날 만큼 무상급식은 중요 이슈가 되었다. 반면,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싹쓸이의 근거가 되었던 뉴타운 공약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번에 당선된 광역과 기초단체 장들의 선거공약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로는 민생과 관련된 보편적 복지 공약들을 들 수 있으며,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는 물론 교육감들의 공약들까지도 모두 보편적 복지가 중심이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그 동안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던 복지 강화 공약들이 다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 공약으로 전환하는 것이 확실하게 득표와 정비례한다는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 6.2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은 진보후보와 보수후보를 나누는 기준이 됐다. ⓒ프레시안 |
그러나 새로 출범한 민선 5기 지방자치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우선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은 현 정부가 지방선거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책방향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세종시 수정안은 상임위에 이어 본회의에까지 가서 겨우 무산되었으나, 추진 주체인 정부가 아직도 중앙부처 이전 계획을 구체화하지 않고 있어 행정중심복합도시가 현 정부 임기 내에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4대강 개발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강행의사를 표명하였고, 당선된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준설토를 쌓아둘 적체장의 임대 거부 등 소극적인 반대에 국한된다. 천안함을 계기로 한 과도한 대북 대립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혀 주춤하겠지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북한에 대한 민간단체 지원 등 실질적인 교류를 현 정부가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즉, 6.2지방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을 반영시키는 것은 지방정부의 역할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의욕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가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 신인들의 상대적으로 일천한 행정 경험으로는 지난 50년간 고착되어온 지방 공무원들의 관행을 깨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다. 지방 공무원들은 수십 년 동안 건설과 토목이 지역 발전의 상징인 것으로 교육받아 왔다. 지역 유지를 포함한 상당수의 주민들에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바람과 함께 도로 건설과 지역 개발에 대한 욕망이 공존하고 있다. 토목과 건설을 자신의 일로 알고 시정을 추진해온 분들이 하루아침에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도 아니고, 중산층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 정책을 시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실무를 담당할 공무원들에게는 보편적 복지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인식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주민들도 참여예산제와 주민참여 형 "거버넌스"에 대한 요구를 하고는 있으나 구체적인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방정부의 심각한 재정난을 극복하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정희 의원의 의뢰로 분석한 '지방자치단체별 재정난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08년 결산액 기준으로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인천, 전남, 충북, 전북, 강원, 충남 등 6곳의 전체 세입 대비 '가용재원'의 비율이 10퍼센트를 밑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용재원이란 국고보조금 등을 제외하고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일반재원'에서 인건비와 운영비 등 반드시 써야 할 '경상비용'을 뺀 금액을 말한다. 이 재원이 부족하면 자체사업을 벌일 여력이 없어지고, 지자체의 재정적자로 이어지게 된다. 전체 246개 시·군·구 자치단체 중 올해 지방세로 공무원들의 월급을 충당하지 못하는 곳이 137개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인천광역시의 경우엔 가용재원의 비율이 -13.1퍼센트로 새로운 지역사업은커녕 일반재원으로 경상비용조차 충당하기 힘든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자립도의 경우 시 지역의 평균은 40.7퍼센트, 구 지역의 평균은 37.3퍼센트, 군 지역 평균은 17.8퍼센트에 불과하여, 지방정부 예산의 절반 정도가 중앙정부의 교부예산으로 충당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부자감세와 4대강 개발 등을 추진하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위한 교부예산을 현 수준 정도로라도 유지하길 기대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민선 5기 지방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과감하게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중앙정부를 바라보기 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중심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중앙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중앙정부와는 다른 것인데, 지방정부를 작은 중앙정부로 생각하는 잘못된 경향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의 향상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필요하면 지방정부의 공무원 조직도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여정부에서 시작한 주민생활지원국을 확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각 국별로 주민생활과 관련된 업무를 중심으로 역할을 재설정하고, 공무원들의 실적에 대한 평가 지표도 실질적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 효과를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지방정부의 운영에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여야 한다. 기존의 지역유지나 건설업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올해 8월부터 시작될 예산 편성에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게 해 보자. 자신의 공약 이행을 위해 일정 정도의 총액을 부여하고, 이의 구체적인 사용처와 방법을 지역 주민들이 직접 정하게 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노인들을 모아놓고 노인복지관을 짓는 데 수백억 원의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데 투입할 것인지를 어르신들이 직접 판단하게 해보자. 보육 예산을 두고, 학부모들이 참여하여 시설 개선에 예산을 투입할 것인지, 보육교사 확충과 추가 부담금 완화에 투입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고, 자신들의 결정사항이 지켜지는지를 지역의 보육시설 평가인증에 직접 참여하여 감독할 수 있도록 해보자. 그리고 어린이, 여성, 노인, 일자리, 건강 등의 분야에 유능한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구를 운영하여 지방정부의 다양한 정책에 대해 도움을 받고 공무원과 지역 주민들이 다 같이 배울 수 있도록 하자.
셋째, 토건 관련 예산을 과감하게 축소하고 보편적 복지 예산으로 전환하자. 지자체의 예산은 지역에 따라 다르고, 광역시·도, 시·군·구에 따라 재정자립도와 예산 비중의 차이는 있으나 평균적으로 지방정부 예산의 30~40퍼센트가 토목과 건설에 투입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 사업을 계속하면서 복지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의 민간병원을 매입하거나 인수하여 공공병원으로 활용하거나, 예산을 투입하여 공공보건사업을 수행하게 하여 지역주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보호자 없는 병원'을 할 수 있도록 간호사 인력 파견 사업을 하는 것으로 지역 주민들의 질병 부담을 완화시켜줄 수 있다. 지방정부의 도로 확장을 조금만 늦추면 매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가용자금이 생긴다. 중앙정부의 교부금을 포기하더라도 지역의 토목사업을 축소하면 지방정부의 대응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연말에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예산을 초등학생들의 무상 준비물 예산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떤지? 학부모들의 의견을 물어 보는 것이 좋다. 호화 청사 건립에 소요될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포기하고서라도 그에 대한 분담금으로 들어갈 시의 예산을 2011년부터 태어날 아이들에게 아동수당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과 폭넓게 논의해 보아야 한다. 4차선 도로를 내지 않아 발생하는 5분간의 지체 시간을 용납해 준다면, 관내 모든 신생아 출산 가정에 산모 도우미를 보내는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도로시설물 및 전기시설물 설치를 위한 예산을 꼭 필요한 곳으로 한정한다면 '방과 후 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의 숫자를 확대할 수 있다.
그리고 예산에 대한 효과 평가를 사업 추진율, 도로 포장율, 건물 완공 여부 등 토건사업에 대한 평가 지표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예산 투입으로 인해 주민들이 지출하던 비용의 경감 정도, 가구당 가처분 소득의 증가 정도, 실질적인 지역 주민의 일자리 창출 개수 등으로 평가하도록 하자. 공무원들은 평가제도에 따라 인사고과가 좌우되므로 목청을 높여 이들과 싸우기 보다는 평가 기준을 제대로 정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새로이 출범한 민선 5기 지방정부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성공은 보편적 복지 정책의 추진과 성공 여부로 판가름 날 것이며, 국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튼튼한 기초가 될 것이다. 특히, 이번에 새로 당선되어 임기를 시작한 젊고 진보적인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들의 성공이 우리나라 정치의 세대교체를 만들어 내고, 지역구도와 낡은 정치를 근본적으로 깨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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