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허정무 감독은 김재성을 오른쪽 날개에 전격 선발출장 시키는 4-2-3-1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굉장히 좋은 전술이었다.
다만 이번에도 선제골을 너무 쉽게, 이른 시간에 실점해 경기를 끌려갔다. 박주영의 좋은 프리킥이 들어갔다면 경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단판 승부로 끝나는 토너먼트전은 선제골이 매우 중요하다.
실점 장면을 보면 근본적으로는 측면에서 침투하는 포를란을 막지 못해 크로스를 쉽게 내준 게 문제였다. 이후 수비수들이 공에만 시선이 뺏겨 뒤에서 들어오는 수아레스를 자유롭게 놔준 것도 아쉬웠다. 정성룡을 책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볼이 빨랐고 수비수들이 제 역할을 못한 게 더 안타까운 점이었다.
▲한국 축구는 성공적인 세대 교체를 이뤘다. 세계 무대의 중앙에 당당히 진입했다. ⓒ뉴시스 |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매우 좋은 경기를 펼쳐 16강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입증했다. 우루과이가 수세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공격을 강화했다. 오늘 경기로 우리의 기동력과 압박은 이제 세계 어느 나라와 맞붙어도 뒤지지 않음을 입증했다.
활약한 김재성을 뺀 게 아쉽지만 이동국을 이른 시간에 투입시켜 공중볼을 노리는 전술 교체도 좋았다. 이동국이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한 걸 두고 '어떻게 공격수가 저런 걸 놓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동국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이동국은 경기 감각이 떨어진 상태였다. 빠르게 선수들이 움직이는 축구 경기에서는 경기에 적응하는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어이없는 실수를 남발하는 것을 우리 모두 보지 않았나.
염기훈의 투입 시간은 지나치게 늦었다. 염기훈을 더 이른 시간에 투입해 전방을 더 일찍 보강하는 게 좋지 않았나 싶다. 동점 상황에서 선수가 교체되는 것과 지는 상황에서 교체되는 건 다르다.
우리가 골을 많이 넣지 못한 게 안타깝다. 우루과이가 측면을 강화해 우리의 장기인 돌파를 사전 차단했고, 이 때문에 경기를 완벽히 지배하지 못했다. 특히 후반전 들면서는 비까지 와 이동국의 머리를 겨냥한 롱패스 경기가 우리 선수들의 체력을 빨리 소진시켰다. 가정은 불필요하지만, 우리가 동점골을 넣은 후 더 밀어붙이지 못하고 오히려 밀리면서 결승골을 헌납했다. 경기 운용 능력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우리의 2010 월드컵 도전은 끝났다. 첫 경기를 굉장히 잘했으나 무기력하게 패하기도 했고, 천운도 따라 우리는 16강전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제 이번 월드컵 전반을 돌아봐야 할 때다. 우리의 축구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왔음을 과시했지만 아직도 개인기가 부족하고 패스 연결이 세밀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번 월드컵 내내 많이 뛰는데도 불구,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경기를 해야 했다.
이 문제들을 다듬어야 세계의 진정한 강호로 올라설 수 있다. 우리가 우루과이에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뒤진 이유는 찬스에서의 해결 능력이 부족해서였고, 이는 결국 오랜 시간 동안 가다듬어진 개인 기량의 차이다.
▲축구는 4년에 한번 열리는 경기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서포터인 한국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을 방법을 축구계가 고민해야 할 이유다. ⓒ뉴시스 |
뜬금없지만 일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본도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16강전에 올랐다. 솔직히 샘나지만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한국이 언제까지나 아시아를 대표하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은 한국보다 축구 기초가 더 탄탄하다. 프로축구는 완벽히 자리를 잡아 우라와 레즈 같은 명문 구단은 매년 수백억 원의 흑자를 낸다. 미래가 없는 우리 프로축구와 다르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길 바란다. 초등학생부터 합숙을 시키며 이기기 위한 경기만 해서는 우리 축구의 미래가 없다. 스타 선수들이 초등학교부터 내려가 체계적으로 아이들의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정비되길 바란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16강전에 진출한 것도 대단하다.
대표팀만 화려한 빛을 받고, 나머지 모든 선수는 음지에 머무는 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비를 맞아가며 대표팀을 응원하는 세계 최고의 서포터를 갖고 있다. 이제 이들 서포터들이 단발성으로 4년에 한 번 씩만 끝내지 말고 프로축구, 아마추어 축구도 애정을 갖고 지켜보면서 우리 축구의 뿌리를 더 단단히 다져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강남 서울 유나이티드 감독. ⓒ프레시안 |
그러나 허 감독은 홈 어드벤티지를 입었던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축구를 세계 16강에 올려놓았다.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허 감독의 지도력에 힘입어 이제 유능한 지도자를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 역시 갖춰주길 하는 바람 간절하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우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정말 어떤 대회보다, 어떤 시합보다 최선을 다 해 이번 무대에서 뛰었다. 후회없는 경기를 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포지션에서 최고의 역할을 다 했다.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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