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 전패, 한 골을 넣었으나 12골을 실점했다. 이번 대회에 임하며 북한이 내걸었던 슬로건 '또 다시 1966년처럼, 조선아 이겨라!'의 목표는 2014 브라질 월드컵으로 넘어가게 됐다.
1960년대에 갇힌 북한, 세계 축구에 무릎꿇다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각오를 보였으나 '죽음의 조'에 속한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는 넘어서기에 너무나 큰 산이었다. 브라질전에서 놀라운 선전을 보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나 44년 만에 다시 만난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0대 7로 참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북한의 2010 남아공 월드컵 마지막 경기는 아쉬움을 남기고 끝났다. ⓒEPA=연합뉴스 |
북한은 볼점유율, 슈팅수 등에서 코트디부아르의 공격 축구에 압도당하며 전반에 두 골, 후반에 한 골을 내주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리명국 골키퍼는 90분 내내 이어진 코트디부아르의 공세를 막느라 수 차례 부상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여 약체 팀의 현주소를 상징했다.
북한은 시간의 흐름을 극복하지 못했다. 세계 축구는 지난 40여년 간 빠르게 변했으나 북한은 여전히 6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단순히 많이 뛰는 것만으로 승리를 노리기에 월등한 개인기량을 자랑하는 상대팀들의 전력이 너무 강했다. 아시아 무대 이상을 밟지 못한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세계와 고립된 북한의 오늘을 보여주는 듯했다.
변화는 가능하지만…
북한의 모습은 과거 한국의 축구와 많이 닮았다. 한국은 매번 아시아 최강을 자처했음에도 세계 무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선수들은 경직돼 있었고,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것 이상을 해내지 못했다.
1997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참여한 한국은 이관우, 박진섭 등 떠오르는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마치 로봇이 뛰는 것 같다"는 비판을 듣는데 그쳤다. 창의력이 없고 경직됐다는 노골적 지적이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브라질에 10대 3으로 대패했고, 앙리와 트레제게가 뛰던 프랑스에도 4대 2로 패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후 젊은 선수들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 클럽 제도의 확대, 해외 감독의 영입, 축구리그의 활성화 등을 추진해 세계 축구와의 간격을 좁혀나갔다.
97년 당시 한국을 대파한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한국의 클럽팀 포항 스틸러스에 부임해 이기는 축구를 가르쳤고, 포항은 선진적인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이식해 적극적인 선수 발굴과 해외 조기 유학에 나섰다. 이 토양에서 박주영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탄생했다. 변화를 일군 한국은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 최고 성적 4강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북한도 이와 같은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쓰라린 3패는 역으로 세계와의 간격을 좁힐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세계와 연결되는 문을 적어도 축구에서만이라도 열 의지가 있느냐가 문제겠지만 말이다.
▲김정훈 감독은 코트디부아르와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했으나 대패를 면하는데 만족해야했다. 북한축구는 세계 흐름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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