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나라를 망친 친노 좌파에 대한 심판'을 외쳤지만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복귀했다. 한나라당이 가장 중요한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둘 다 근소한 차이를 보였을 뿐이다. 특히 서울시는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부자 3구'의 강력한 '부자 계급 투표'의 결과로 오세훈 시장이 재선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2010년 지방선거의 민심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이명박 정부가 임기 중반으로 접어든 상황에서도 '전 정권 심판론'이라는 비상식적 구도를 형성해서 선거를 치렀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현 정권 심판론'이라는 당연한 구도를 형성한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0년 지방선거의 바탕에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대단히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진정한 발전은 물론이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민심을 올바로 읽고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며칠 전에 '소신공양'을 한 문수 스님의 짧은 유서에 그 핵심이 잘 담겨 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그 실체가 '4대강 죽이기'인 '4대강 살리기'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4대강 살리기'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생명의 강을 서울 한강과 같은 콘크리트 인공 수로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의 1단계에 해당된다. 그러나 운하는 경운기보다 느리기 때문에 어떤 경제성도 가질 수 없으며, 생명의 강을 인공 수로로 만들기 때문에 엄청난 생태적 재앙을 낳을 수 있다.
70퍼센트에 이르는 국민들이 '4대강 살리기'에 대한 반대의 뜻을 밝혔고, 수많은 전문가들과 성직자들이 '4대강 살리기'의 중단과 올바른 강 살리기를 요구하고 있다. '4대강 살리기'를 계속 강행하는 것은 민심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면서 강 죽이기를 넘어서 경제 죽이기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둘째,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력에 비해 부패가 여전히 심각한 나라이다. 한국의 부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토건업 또는 건설업이다. 이 점에서도 '4대강 살리기'의 강행은 또 다른 커다란 우려를 낳게 된다. '4대강 살리기'는 막대한 혈세가 불필요한 대규모 토건 사업에 투여되면서 거대한 부패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토건국가의 극단화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패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극심한 교육 부패이다. 교육 부패는 교육 행정 부패와 사학재단 부패로 크게 나뉜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라면, 후자를 대표하는 것은 조선대와 상지대의 '구재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문제가 불거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 부패의 척결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후자의 복귀가 착착 진행되었다. 부패의 척결은 사실 선진화에 앞서는 정상화의 과제이다. 토건 부패와 교육 부패의 만연은 한국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이다.
셋째,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서민은 중하층 이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서민은 전체 인구의 6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서민을 위한 정책은 무엇보다 복지의 강화로 나타나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복지 예산을 크게 늘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연 증가분도 충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통계청의 통계는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의 우려를 사실로 확인해주었다.
서민의 고용을 위해서 불필요한 토건 사업에 막대한 혈세를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 교육, 문화 등 '3대 두뇌 산업'에 혈세를 투여해야 한다. 서민이 원하는 것은 흔히 '삽질'로 표현되는 비정규 단순노무직이 아니다. 두뇌 산업의 성장이야말로 한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길이며, 서민의 고용도 그것을 통해서만 진정한 안정을 이룰 수 있다.
문수 스님의 짧은 유서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잘 보여주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을 한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보아서는 안 된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문수 스님의 짧은 유서를 잊지 말고 잘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민심은 사실 문수 스님의 짧은 유서보다 더 많은 것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시민의 표심은 귀를 열고 민심의 뜻을 따르라는 이명박 정부를 향한 엄중한 경고다. ⓒ뉴시스 |
첫째,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한반도는 한 민족이 둘로 분단되어 대립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이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밖에 없다. 우리의 군사적 대응력을 강화하고 북한의 도발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기저는 어디까지나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전쟁 위기를 부추기고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극히 잘못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비판 세력을 무조건 '좌파'로 규정하고 격렬히 공격하는 반인권적 행태를 일신해야 한다. 사실 이런 행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이런 행태로 권력을 장악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선진국에서 볼 수 있듯이, 좌와 우의 정치적 공존과 정책 대결을 추구해야 한다.
둘째,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 세종시가 아무런 정략적 목표도 없이 추진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망국적인 서울/수도권 과밀의 해소와 지방의 발전이라는 국가발전 전략의 성격을 더 강하게 갖고 있다. 안보의 면에서도 서울/수도권 과밀은 이미 너무나 심각한 상태에 있다. 요컨대 전체 인구의 절반과 전체 경제력의 80퍼센트 정도가 북한의 근접 공격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다시 '주적'으로 규정한다면서 서울/수도권 과밀을 강행하는 것은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세종시는 충청권을 비롯한 지방의 발전을 위한 요구일 뿐만 아니라 서울/수도권의 발전을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거듭 약속했던 것을 지킨다는 차원을 넘어서 서울/수도권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세종시는 원안대로 잘 건설될 필요가 있다.
셋째, 오만과 독선의 산물인 '불통'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사실상 모든 언론을 장악하고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이용마저 강력히 규제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일방적인 홍보에만 매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최근에 유엔의 특별 보고관과 국제앰네스티는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통제와 규제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왜곡되고 호도되지 않는다. '불통'은 다만 '불신'을 낳을 뿐이다. '천안함 사고'에 관한 이명박 정보의 조사 결과를 둘러싼 논란은 그 좋은 예이다. '불통'은 많은 전문가와 성직자의 저항을 야기했고, 급기야 한 스님의 '소신공양'까지 이루어지고 말았다. 국가적인 대사라고 하면서 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소통하고 설득하지 않는가? '불통'은 그 자체로 '불만'의 원천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4대강 살리기'에 대한 거대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구를 분지가 아니라 항구로 생각하라거나 아예 서울을 '항구 도시'로 규정하는 식의 황당한 행보로 일관했다. 이와 함께 '천안함 사고'를 계기로 강력한 전쟁 위기를 유발하면서 사실상 국민들의 복종을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민심을 억압하고 호도할 수 있는 시대에서 살고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민심에 귀를 열어야 한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시대의 덫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선진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 이번의 지방선거에서 방어한 것에 자족하며 계속 후진적인 오만과 독선의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과 성직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매일 외쳐대고 있는데,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민심의 소리를 듣지 못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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