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연못 |
옆에서 지켜 본 영화의 제작과정은 신기하고도 감동적이었다. 송강호, 문성근, 문소리, 박광정, 강신일, 이대연, 유해진, 박원상, 김뢰하, 전혜진, 이성민, 김승욱, 최종율 등 142명의 배우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나오고, 수많은 스태프들, 그리고 편집과 CG 등 후반기 작업을 담당한 분들도 자신의 시간과 기술을 아무 조건 없이 내놓았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노근리 사람들을 넘어 전쟁이란 전쟁이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죽여 버린 사람들에게 뒤늦게나마 몸뚱이로 인사를 드린 것이다. 제대로 돈 들여 만들었으면 50억은 가볍게 넘었을 제작비는 이렇게 해서 10억 아래로 떨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제작과정도 감동적이었지만, 돈을 내는 것보다 어려운 게 몸뚱이로 참여하는 일이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다시는 전쟁과 학살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을 이렇게 몸으로 표현했다.
영화를 함께 본 학생들은 학살의 느닷없음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모든 전쟁에서 학살은 필연이고, 학살은 전쟁의 다른 이름이지만,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학살은 <작은 연못>이 보여주는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렇게 느닷없는 학살은 노근리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미군에 의한 학살만 해도 60여 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접수된 민간인학살 관련 진정사건의 총 수는 8천여 건에 달한다. 천안함 희생자들처럼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학살이 일어난 동네의 이름만 기록하는 것도 숨이 가쁘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학살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끔찍한 현실의 단면을 <작은 연못>의 카메라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라울 힐베르크의 <유럽유태인의 파괴>같은 기록이나 다큐멘터리 <쇼아>처럼 영화의 가감 없는 담담하고 건조한 묘사는 불편한 진실을 더 생생하게 전해준다.
▲ 작은 연못 |
수십 만 명이 이렇게 죽어갔는데, 그걸 다룬 영화가 나오는데 전쟁이 끝나고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했다. 민주화가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학살이라는 '죽이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친일잔재청산과 민간인학살과 군사독재시기의 죽음과 고문과 용공조작을 우리 사회의 의제로 가져온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은 바위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 아니 전쟁을 못해 안달이 난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오늘, <작은 연못>은 전쟁이란 어떤 것인가를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작은 연못>은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성장한 문화역량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자들의 죽음에 바친 헌사이다. 2010년 4월, 작은 연못가에 소박한 묘비명이 처음 섰다.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묻힌 곳은 망망대해와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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