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차 접대에 술 시중 교직원…"우리가 다방 레지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차 접대에 술 시중 교직원…"우리가 다방 레지냐"

[벼랑 끝에 선 여성 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

김미정(가명·34) 씨는 17년째 중학교 교무과에서 사무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른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다.

사무직이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없다. 대신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자신의 인사권을 쥔 교장, 교감 눈치 보기의 정도가 심하다. 그의 본 업무는 교무실 사무. 그러나 실제 업무는 교장, 교감의 개인 비서다. 우편 수발은 기본이고 은행 업무, 종교 활동까지 챙겨야 한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교감이 속한 모임에서 산행이 예정돼 있었다. 교감은 소속 회원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을 김 씨에게 시켰다.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잘 못 보이면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20대를 고스란히 보낸 직장을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결국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몇 차례 거부도 했다. 그래도 교장, 교감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김 씨는 "다시는 교장, 교감의 개인 일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교감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졌다.

ⓒ미행

'여자가 따르는 술이 맛있다' 등 수차례 성희롱 당해도 거부 못해

곧바로 보복이 시작되었다. 앙심을 품은 교장, 교감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사건건 김 씨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17년째 똑같이 해온 일을 놓고 "제대로 못한다", 이렇게 생트집을 잡는 것은 기본이었다. 많은 교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똑바로 일하지 않으면 자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한 김 씨는 자신의 책상이 사라진 걸 확인했다. 교감이 전날 밤 김 씨 몰래 책상을 치워버린 것이다. 교감은 대놓고 "책상이 있으면 뭐하냐.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 그래서 없앴다"고 말했다. 다른 교사, 직원 중 어느 한 명 옹호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교감이 자신에게 퍼붓는 말이 서러웠고, 이런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다.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고 나서야, 교사들 몇몇이 "교감 선생님이 너무했다"며 다시 책상을 가져왔다. 물론 그 일이 끝난 후에도 교장, 교감의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고등학교에서 행정 보조로 일하는 이상미(가명·47) 씨도 비슷한 경우다. 그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은 차 심부름이다. 싫다고 안할 수도 없다. 학교에서는 업무 규정에도 없는 차 심부름을 '내빈 접대'라는 용어로 규정에 집어넣었다. 만만한 게 비정규직이라고 정규직 행정원은 차 심부름도 면제다.

김 씨나 이 씨의 경우는 박민서(가명·30) 씨에 비하면 그래도 낫다. 박 씨는 자신의 인사권을 쥔 행정실장에게 반복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실장이 주도하는 회식 자리에서는 "나랑 사귀어 볼래?", "여자가 따르는 술이 맛있다" 등의 발언이 늘 쏟아져 나왔다. 노래방 등에서는 노골적인 신체 접촉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완강히 거부할 순 없었다.

그러다 지속적인 성희롱에 지친 박 씨가 행정실장에게 하지 말아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후가 문제였다. 박 씨를 괘씸하게 여긴 행정실장은 그가 휴가를 간 사이, 학교 상임위원회를 열고 그를 해고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자, 그의 호봉을 동결시키는 것으로 앙갚음을 했다.

"서럽지만 일을 그만 둘 수 없어"

김미정 씨가 학교 사무보조로 취업을 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의 "힘들다"는 말에 돈을 벌기 위해 취직했다. 당시 월세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취업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할 줄 몰랐다. 집안 형편이 나아지면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의 꿈은 특수 분장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됐을 때, 잠시 메이크업 학원도 다녔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수백만 원이나 되는 수업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그 자리 그대로 눌러 앉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후론 다른 일을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 돌보랴, 집안 일 하랴, 학교 일 하랴…. 정신이 없다. 특수 분장사의 꿈은 잊은 지 오래다. 그렇게 18년 동안 온갖 설움을 견디며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오고 있었다.

김미정 씨가 현재 학교에서 받는 돈은 130만 원. 그나마 2004년 이전부터 일을 했기 때문에 호봉제를 적용받아 이만큼이라도 받고 있다.

2004년 이후 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연봉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들의 월급은 9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연봉 계약직의 경우 근무일수를 차등 적용받기 때문에 저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교무실 등에서 일하는 교육 보조사의 경우 근무일수가 1년에 275일로 정해져 있다. 275일 동안 일을 하고 열두 달에 나눠 월급을 받는 것.

박봉에 온갖 수모를 받으면서, 게다가 고용까지 불안한 상황이기에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미정 씨는 8살과 6살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전세에 살고 있는 그는 올해 학부형이 되고 나서, 더욱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됐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드는 비용이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미 씨도 비슷했다. 대학교 2학년과 3학년을 둔 그는 남편 월급으론 등록금 내는 것은 고사하고 생활하기도 어렵다. 그가 벌지만 아이들 등록금은 학자금 융자를 받아 겨우 해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그만두기란 어렵다. 나이도 있어 다른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식당이나 청소 일 말곤 없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앞으로가 더 걱정

이처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박봉을 받고 일하지만, 늘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행정 보조, 사무 보조, 전산 보조, 과학 보조, 영양사, 사서 등을 비롯해 과학실험 보조, 전산 보조, 특수 보조 등 총 46개 직종을 통칭한다. 전국적으로 15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2004년에 발표된 '공공 부문 비정규직 종합 대책'을 계기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년 단위로 매번 계약을 갱신하게 됐다. 이후 2006년에 발표된 '공공 부문 비정규직 종합 대책 추진 계획'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4만1277명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무기 계약 인사 관리 규정에는 무기 계약 전환자라 하더라도 학교장이 임의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규정을 보면, '학교 통폐합, 학생수 감소, 3회 불량 평가 결과' 시 학교장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장, 교감, 행정실장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진행 중인 '학급 총량제'로 2012년까지 서울에서만 2만5000여 개의 학급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무기 계약 인사 관리 규정에는 학급 수가 축소될 경우,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에 2년 뒤엔 대량 해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 2009년 10월 정영희 의원(친박연대)이 발의한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학교에서는 행정 관련 5개 직종(행정, 교무, 전산, 과학, 사서)을 별도 직군화된 학교 행정 전문 요원으로 배치하고 이들을 1년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전문 요원의 모든 업무는 수치로 계량화, 전산화해 학교장이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결국 학교 행정 업무를 표준화하고 그 업무 진행에 대한 평가 점수에 맞춰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것이 구조 조정에 사용될 거라고 믿는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떨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