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부 아래서 경제적인 삶이 그전보다 더 팍팍해진 유권자들이 참여정부 시절 숱하게 치러진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참여정부에 엄중한 경고를 했고,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최종심판을 내렸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유권자들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선출했던 MB정부는 경제적 풍요는 고사하고 어렵사리 이룬 민주주의마저 송두리째 훼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고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유권자들에게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경제적 풍요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교훈이다.
대한민국 구성원들의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경제적 풍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양극화의 핵심이라 할 가계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중에서도 자산의 양극화 해소가 소득 불평등 개선보다 훨씬 중대한 과제다. 가계의 빈부 격차를 늘리는데 자산의 양극화 현상이 소득의 양극화 현상 보다 미치는 영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도를 심화시킨 주범은 부동산
가계의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을 크게 앞서고 이는 자산이 많은 가계와 그렇지 않은 가계의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작년 9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NABO)에 의뢰해 발표한 '가계자산에 대한 지니계수 추정과 소득지니계수와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주택, 토지, 금융자산)에 대한 지니계수는 0.7069(2007년 기준)로 소득 지니계수 0.3579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익히 알다시피 부의 불평등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0-1)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우리나라 가계의 총자산 지니계수가 0.7이 넘는 것은 부의 불균형이 극도로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소득불균형은 OECD 국가 중 7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열악한데 가계 자산의 불평등도는 그런 소득불평등도의 2배에 해당할 정도로 극악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가계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킨 주범은 누구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부동산이다. 2008년 남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제9회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가계자산 분포와 불평등도의 요인별 분석'이라는 자료를 보면 1999년부터 2006년 까지 대한민국 가계의 순자산(부동산+금융자산)집중도는 꾸준히 상승했다. 2006년 우리나라 자산 상위 1% 계층이 전체 순자산의 16.7%를 차지해 1999년 9.7%에 비해 무려 7%p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자산 상위 5%와 10%가 전체 자산 중 차지하는 비율 역시 1999년 각 30.9%, 46.2%에서 2006년 각 39.8%, 54.3%로 집중도가 크게 높아졌다. 특기할 것은 자산 불평등을 구성하는 요소 중 부동산이 약 93%, 금융자산은 약 12% 가량 불평등도를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산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인 부동산, 그 중에서도 토지불로소득의 규모를 한 번 살펴보자. 아래의 <표 1>을 보면 1998년 이후 최근 10년간(1998년~2007년) 발생한 토지불로소득의 규모가 무려 총 2002조 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조세 및 부담금을 통한 환수규모는 총 116조 원에 불과하여 환수비율이 5.8% 수준에 불과하다.
<표 1> 지가총액 및 불로소득 규모 추이 (단위: 10억 원)
주) * 불로소득과 불로소득 전체 징수액의 누계 ** 불로소득 전체 징수액은 <취득과세+보유과세+이전과세+개발부담금>으로 구했음. 자료: 변창흠·안규오(2009) <표 5>와 <표 8>을 재구성함. ⓒ프레시안 |
위의 가계자산에 대한 지니계수가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천문학적인 규모의 토지불로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는 게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2007년 10월 당시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2006년 토지소유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토지소유자중 상위 1%(50만 명)가 민유지의 57%, 상위 10%(약 500만 명)가 민유지의 98.4%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쯤 되면 대한민국에 두 번째 토지개혁이 요구된다고 말해도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소득불평등도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남 연구위원에 따르면 소득 집중도는 2006년 상위 1%, 5%, 10% 계층이 각 9.0%, 21.4%, 32.0%를 차지, 자산집중도 보다는 낮았으나 1999년 이후 증가세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득불평등도가 높아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한 계층이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계층에게 임대료 등을 지불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는 저소득층의 소득이 임대료 등의 형식으로 고소득층에게 이전됨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는 셈이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현안이라 할 가계 양극화의 근본원인은 자산양극화임이 분명하며 그 중에서도 단연 부동산이 문제라 할 것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도입하자
가계 자산양극화의 원흉이라 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묘방이 바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은 토지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필요하다고 해서 양을 늘릴 수도 없으며 인간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재화이므로 공공성이 강하게 관철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수단 중 장기정책으로 패키지형 세제개혁과 토지공공임대제가 있다. 패키지형 세제개혁은 '조세이동(tax shift)'를 의미한다. 즉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환수비율을 토지보유세 등을 통해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높이고, 생산·유통에 부과하는 세금은 그만큼 낮추자는 것이 골자다. 토지공공임대제는 토지의 국 · 공유 비율을 높여서 국 · 공유 토지를 사용료를 받고 민간에게 임대해주는 제도이다. 토지공공임대제는 택지만이 아니라 산업단지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선진국들이 토지공공임대제를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실현하기 위한 단기정책으로 미시적 금융대책이 있다. 미시적 금융대책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Loan To Value ratio)과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 To Income ratio)의 적절한 관리가 꼽힌다. 부동산 가격은 경제 변수 중 금리와 통화량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데다 위에서 열거한 패키지형 세제개혁과 토지공공임대제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국지적 투기수요가 엄존하는 까닭에 시중의 과잉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을 방화벽이 필요하다. LTV와 DTI가 그 방화벽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것이다.
끝으로 주거복지 및 주택공급정책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 환매조건부 주택, 토지 임대부 주택 등을 국민들의 소득 수준에 맞게 공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위와 같은 정책패키지로 구성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 구현될 때 부동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고 이는 자산양극화 해소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다. 대다수 한국사회 구성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자산양극화라고 할 때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해법이라 할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존재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선거승리를 노리는 정당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일 야권이 반MB연대를 넘어서는 선거연합의 공통분모를 찾고 있다면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 그 공통분모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