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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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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섬이 있다

[여기가 용산이다⑤] 용산은 고유명사였다, 그러나…

용산은 고유명사였다. 그러나 2009년 1월 이후, 그것은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니다. 용산은 이제 대화와 존엄이 상실된, 무자비한 소통불능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차라리 작은 지명이었을 때가 더 행복했을 이름.

현대는 늘 공사 중이다.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 사람들이 모이고, 아파트가 재건축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단지 정문에 현수막이 걸린다.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재개발, 재건축' 이란 단어들은 그 끝이 없기 때문에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늘 공사 소음 이상으로 시끄럽기 때문에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나와 거리를 걸어보라. 끝없이 공사 중인 이 땅을, 끝없이 공사 중인 이 거리를 걸어보라. 저 골목 모퉁이에서 곧 헐릴 예정이거나 이미 헐려 있거나 헐리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이, 신문 기사가 포착하지 못한 자리에도 제2, 제3의 용산은 수두룩하다.

식당 두리반 역시 홍대 번화가 옆에서 섬처럼 버티고 있다. 원래 섬은 아니었다. 주변 길을 모두 차단해버렸기 때문에 홀로, 섬이 된 것이다. 섬 내부는 차갑고 아슬아슬하다. 잠시 잠깐, 두리반 내부를 돌아보며 느낀 것은 곧 찾아올 밤과 새벽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힘내라는 응원의 포스트잇, 그리고 담벼락에 써놓은, 절규에 가까운 활자들만이 두리반에 찾아올 밤을 가까스로 막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뉴스에서 서울 시내의 몇몇 길들이 복원될 거라고 말한다. 고전은 고전이기에 복원이 되고, 최첨단은 최첨단이기에 늘 환영받지만, 그래도 헌 건물들은 계속 늘어난다. 현대의 건물들은 몇 백 년의 역사를 담아낼 만큼 수명이 길지 않다. 위치우위의 말처럼 현대의 문명은 '편리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금방 잊혀질지도 모른다. 편리함은 새로운 편리함에 의해 대체될 수 있지만, 위대함은 후세에게 추앙받는 법이다. 그것이 어떤 건물은 복원되고, 어떤 건물은 헐리는 이유다. 그리고 헐린 건물 자리에 들어설 다른 건물 역시 수명이 길지 않을 이유다.

언젠가 청춘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참 그 단어에 대해 곱씹어보았던 적이 있다. 정의는 청춘, 청춘, 하고 재생하던 것이 멈춘 후에야 내려졌다. 청춘이란 타인에게 무관심하지 않는 것이라고. 화가 나야 하는 것이라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반응하는 감각을 갖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청춘이라는 것은, 젊다는 것은, 나이와 무관한 특권, 혹은 의무라고.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가 이 모든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재갈을 채우는 이 사회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정석으로 만들까봐 두렵다. 제2, 제3의 용산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 숫자가 무한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청춘은 더 이상 낭만의 상징이 아니다. 소통 불능으로 부러지고 쓰러지는 이 사회에서 젊기에 조금 더 유연한 사람들이 유일한 희망이다. 단지 무관심하지 않는 게 얼마나 힘이 있겠느냐고? 무관심이 끝이라면 관심은 시작이다. 가능성이다.

용산과 같은 지명이 결코 그곳만의 고유명사가 아님을, 두리반이 결코 그곳만의 고유명사가 아님을, 그러니까 그 말들은 그 자리에 어떤 무엇을 넣어도 또 성립할 수 있는 그런 단어들임을,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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