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가 예매한 영화 시간은 오후 4시 20분. 4시 10분이 넘자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관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불이 꺼진 뒤 들어가는 것은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미리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금세 10분이 지났지만 영화는 도통 시작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소주 광고, 휴대전화 광고, 신용카드 광고…. 쉴 새 없이 광고가 쏟아졌다. 쏟아지는 광고만큼 짜증도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영화 시작 시간은 4시 20분이었는데, 영화 상영은 계속 미뤄졌다. 결국 영화는 상영 예정 시간보다 10분이나 늦은 4시 30분에 시작됐다.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은 김 씨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쾌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도가 지나친 영화 상영 전 광고…적게는 3분, 많게는 10분까지
극장의 영화 상영 전 광고가 도를 넘었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대부분은 영화 상영에 앞서 상업 광고를 틀고 있다. 지난 10월 문화방송(MBC) <불만제로>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서울 경기 지역 44곳의 멀티플렉스 극장 중, 23곳에서 10분 이상 정시를 초과했다.
ⓒ연합뉴스 |
CJ CGV가 정시 10분 초과로 1위, 이어서 메가박스 9분 초과, 롯데시네마 7분 초과, 프리머스 3분 초과 순이었다. 영화 시작 시간 전에 나오는 광고까지 더한다면 관객이 광고에 노출되는 시간은 무려 20분이 넘는다. 영화 한 편을 보려면 대략 상업 광고 20개 정도를 봐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광고를 규제하는 법령은 없다. 영화관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광고를 극장 자율로 상영한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정당한 값을 치렀는데도, 이렇게 영화 상영 전 광고를 강요당하는 것은 얼른 생각해도 부당하다.
영화 상영 전 광고와 싸워라
실제로 미국의 경우 2003년, 시카고의 한 시민이 영화 상영 전 광고 상영이 소비자에게 불편을 주었다며 로이스(Lowes) 시네플렉스를 상대로 집단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피고소인 변호사는 "원하지 않는 상업 광고를 봐야 한다면 관객은 그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다. 2003년 양모 씨는 "영화 시작 전 20분간 광고 상영과 외부 음식물 반입 금지 규정으로 영화관이 관람객을 상대로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서울 강남의 모 영화관을 상대로 39만 원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당시 재판부는 "영화 시작 전 광고는 관람객 이동 시간에 상영된 것으로 광고를 보고 싶지 않으면 자리를 피하는 등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시청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영화관은 영화 상영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광고를 상영하지 않았다.
영업 이익률의 대부분을 부가 수입에서 얻는 멀티 영화관
이렇게 영화 상영 전 광고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소비자가 이미 요금을 지불한 상태에서 또 다시 광고에 노출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과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는 업계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부딪치고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광고를 지속적으로 상영하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다. 국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CJ CGV의 광고 한 편의 한 달 광고비는 평균 2억 6000만 원. 대략 계산해도 1년에 수백억 원 이상의 광고 수입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다 2005년부터 매년 500원 씩 상승한 팝콘 가격까지 합친다면 영화 티켓 판매 이외 부가 수입은 상당하다. 실제 2007년 CJ CGV 사업보고서를 보면 2007년 매출 중 영화 상영 수입 비중은 68퍼센트에 그쳤다. 사업 개시 후 처음으로 70퍼센트 이하로 내려간 것. 대신 매점, 광고 상영 등 부가 수입 비중은 32퍼센트까지 상승했다. 두 부분 간 비중 차이는 해마다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CGV만이 아니다. 2008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한국 영화 산업 실태 조사'를 보면 2007년 영화관은 1136억 원의 영업 이익을 남겼다. 영화관 수입 중 영화 관람료는 76.1퍼센트를 차지했다. 팝콘과 음료수를 파는 매점 매출은 11.5퍼센트, 영화에 앞서 광고를 상영하는 것으로 얻는 기타 수입은 9.5퍼센트를 차지했다. 부동산 임대 수입이 2.9퍼센트였다.
영화 관람료는 영화관과 배급사가 5:5(한국영화), 또는 4:6(외국영화)으로 나눠 갖는다. 하지만 매점 수익과 광고 수입은 온전히 영화관에서 챙긴다. 사실상 순이익의 상당 부분이 부가 수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연합뉴스 |
스크린 수 증가로 객석 점유율 떨어져 상황 어려워진 영화관
그렇다면 왜 이런 구조가 발생하고 있을까. 원인은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문어발식으로 확장을 진행한 멀티플렉스 극장에 있다.
2010년 2월 현재, 전국 극장의 78퍼센트가 멀티플렉스 극장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스크린 수 비중은 91.8퍼센트에 이른다. 이것도 전년도 88.4퍼센트에 비해 3.4퍼센트가 증가한 것. 대한민국 거의 모든 지역에 멀티플렉스가 상주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2009년도 극장을 방문한 관객은 1억5679만9904명. 전년도에 비해 4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극장 관객 수는 2006년부터 4년째 1억5000만 명 선에 머물고 있다. 스크린 수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스크린당 관람객 수는 해가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다. 1999년 7만9691명, 2002년 4만9152명, 2006년 2만6059명, 2009년 2만4936명을 기록했다. 극장 관객은 늘었으나 이젠 포화상태에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적 설비 투자 때문에 채산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센터 센터장은 "스크린이 많아져 객석 점유율이 많이 떨어졌다. 영화관의 재정 상황이 좋은 게 아니다"라며 "과거엔 80퍼센트였던 객석 점유율이 지금은 30퍼센트 대"라고 밝혔다.
"영화 상영 전 광고는 멀티 영화관의 매출 증대를 위한 노력"
류형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 연구원은 "2005년께부터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경쟁적으로 스크린 수를 늘려왔다"며 "이로 인해 관객수가 대단히 늘어났지만 오히려 극장의 이익률은 떨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류형진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현 구조상 영화 시장, 즉 관객 수가 늘지 않으면 영화관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며 "그게 아니면 자체적으로 구조 조정을 해야 하지만 기업은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매출 때문에 사업 규모를 줄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류형진 연구원은 "이에 멀티 영화관은 자구책으로 다른 방식의 매출 증대를 고민하고 현재 실행하고 있다"며 영화 전 광고 상영, 팝콘 가격 인상뿐만 아니라 입장권의 영수증 화, 무인 발급기 설치 등을 꼽았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의 '봉'으로 전락한 관객. 언제까지 극장 가서 영화 아닌 광고를 보는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할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