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박민영(가명·61) 씨의 손님을 붙잡는 목소리가 청계8가 인근 골목으로 울려 퍼졌다. 그의 앞에 수북이 쌓여있는 신발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60대 노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헛기침을 하며 손에 들었던 신발을 내려놓았다. 오후 2시가 되었지만 아직 개시조차 못했다.
한 이주 노동자가 박 씨의 노점을 찾았다. 2만 원인 신발을 1만5000원에 달라는 손짓을 보냈다. 박 씨가 고개를 흔들며 거부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선다. 뒤늦게 손짓 발짓을 동원해 1만3000원까지 주겠다고 말해도 이주 노동자는 '1만 원이 아니면 안 된다'며 떠났다. 이렇게 손님을 놓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박 씨는 "솔직히 1만 원에 신발을 사왔는데 남겨야 하지 않겠냐"면서 아쉬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한 켤레라도 팔아야 밥이라도 먹는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건 좋다. 이상 있는 거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행인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평일엔 5~6 켤레 팔리면 운수 좋은 날이다.
▲ 지나가는 행인이 물끄러미 신발을 바라보고 있다. ⓒ프레시안 |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왔으나 쉽지 않은 노점 생활
박 씨가 처음 노점상을 시작한 것은 16살 때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게 싫어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남대문 근처 야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었다. 1970년께 남대문 야시장이 강제로 철거되자 그는 청계천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신발, 과일, 옷, 고서적 장사부터 포장마차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일하는 만큼 돈도 벌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작은 공장을 차렸다. 거창한 건 아니었다. 작은 지하실을 빌려 빨대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
그렇게 4년을 빨대 만드는 일에 매진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어렵게 운영하던 공장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망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결국 별수 없이 다시 노점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른 일도 생각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서울 이곳저곳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 다시 청계천이었다. 박 씨는 그때를 2000년께로 기억했다. 장사가 잘 됐다. 하루에 잘 벌릴 때는 10만 원 이상도 벌었다.
하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행한다며 박 씨를 청계천에서 밀어냈다. 그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장사를 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어쩔 수 없이 2004년 초, 동료들과 청계천을 떠났다.
매상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선출된 오세훈 시장이 2008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DDP)'를 추진하면서 박 씨는 다시 쫓겨날 처지가 되었다.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에 있던 890명의 노점상 중 100여 명이 끝까지 싸웠다. 그는 마지막까지 싸운 100명 중 한 명이었다.
서울시는 '신설동에 새로 마련된 풍물시장으로 가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그곳은 너무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예 장사가 안 되는 곳이었다. 결국 박 씨는 동료 70여 명과 새 풍물시장에 들어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다시 청계8가 인근 골목으로 돌아왔다.
주말에는 20만 원 정도의 매상을 올리지만 평일에는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다. 서울시에서 단속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그날 장사는 물론 파는 물건을 빼앗기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전세 2000만 원에 월세 23만 원을 주고 마누라랑 둘이서 살고 있어. 자식은 세 명 있는데 모두 결혼했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꿈? 뭐 다른 꿈 있나. 전세 5000만 원이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기에 어서 3000만 원을 모아 월세 안 내는 게 소원이지."
갈색 빵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털 코트에 추리닝 바지를 입은 박 씨는 연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았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그의 옆에는 변변한 난로 하나 없었다.
청계천에서 동대문, 신설동으로…내몰리는 노점상
서민들에게 힘든 겨울이 다가왔다.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에겐 특히 그렇다. 이렇다 할 대책은 고사하고 '디자인 거리 조성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노점상들이 거리에서 내몰고 있다.
특히 '풍물시장'을 둘러싼 노점상 문제가 심각하다. '풍물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황학동 도깨비시장' 등 주변 노점 상가를 정리해, 2004년 초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으로 노점상을 이주시키며 조성됐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발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터에 공원을 조성하겠다며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시장을 신설동의 옛 숭인여중 터로 이전시켰다. 결국 풍물시장 노점 894개가 신설동으로 이동했고, 새 '풍물시장'은 2008년 4월 26일에 개장했다.
서울시는 이곳이 청계천과는 102미터,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으로부터는 134미터의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다며 상권의 활성화를 선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개장된 지 2년이 가까워 오지만 방문자 수는 늘지 않는 상황이다. 개장 1주년인 4월, 서울시와 상인회 등에 따르면 풍물시장의 주말 평균 유동인구는 4000명으로 개장 초기 8000명의 절반으로 줄었다.
▲ 한산한 신설동 '풍물시장' ⓒ프레시안 |
신설동 풍물시장에서 만난 김금자(가명·68) 씨는 "매번 장소를 옮길 때마다 매상이 줄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이곳 풍물시장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장사를 하고 싶어도 어디 갈 곳이 없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김 씨는 "예전 풍물시장은 동대문운동장 밖에도 수많은 노점상이 있어서 다양한 물건을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여기는 밖에 있던 상인은 고사하고 동대문운동장 안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상당수가 들어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외곽에 있으니 더하지 않겠어? 사람이 안 와. 그런데 서울시는 외국인을 유치한다고 상인들에게 지금 파는 상품 말고 골동품 등을 팔라고 강요하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 장사가 잘 될 수 있겠어?"
"합의해서 옮기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철거라니…"
김 씨의 말처럼 동대문 풍물시장에서 모든 상인이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이전한 건 아니다. 박민영 씨를 포함한 70명 정도는 훈련공원 주변, 옛 전매청 자리 주변 등으로 이전했다. 나머지 120여 명은 한양공고 뒷길로 이전했다.
30년 가까이 노점상을 한 이영호(75) 씨도 한양공고 뒷길로 이전한 120명 중 한 명이다. 그가 이곳으로 이전한 이유는 서울시에서 한양공고 뒷길로 이전하면 '중구 노점 특화 거리'에서 5~10년 동안 장사를 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시와 노점 상인들은 부스 제작을 위해 절반씩 비용도 부담했다. 올 봄에는 전기 시설도 설치했다. 하지만 합의가 무색하게도 9월 11일 행정대집행 계고장이 노점에 부착됐다. 이유는 2011년 개장을 앞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DDP)'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김 씨가 노점을 하는 한양공고 뒷길에 공원 조성의 일환으로 박물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그는 "합의하고 옮기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떠나라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프레시안 |
김 씨는 '그래도 DDP가 개장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제까지 버텼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서울시에게 항의하며 현재 DDP 공사 현장 앞에서 노점을 하고 있다. 매일 철거용역과 싸우는 게 그의 일이다.
김 씨는 아들이 둘 있다. 하지만 그가 기대기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자식들이다. 큰 아들은 형무소에 있다. 작은 아들은 신용불량자다. 김씨는 "의지하기는커녕 어디 가서 창피해 말도 못 꺼내는 자식들"이라며 한 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겨울이 유난히 두렵다.
ⓒ서울시 |
특정 지역으로 옮긴다는 이유로 뒷길로 내몰리는 노점상
'풍물시장' 이전에서 드러나는 노점상 문제는 서울시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시는 현재 시내 거리에서 노점의 외관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특정 지역으로 옮기는 '걷고 싶은 거리' 사업을 25개 구청과 함께 추진 중이다. 이로 인해 노점은 뒷길로 내몰리고 있다.
실례로 2009년 노점 분야 서울시 자치구 인센티브 사업 평가 결과 최우수구로 선정된 종로구의 경우, 종로4가 대로변, 세운상가 주변, 종묘 앞 등에 있던 노점 150개소가 종로4가 창경궁로 특화 거리(종로4가~원남동교차로)로 이전됐다. 종로구는 12월 초께 종로3가 먹을거리 노점은 관수동 국일관 주변과 낙원동 낙원상가 주변의 특화 거리 조성 공사가 끝나는 대로 이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종로5가~6가에 위치한 노점은 양사길로 이전 배치할 계획이다. 결국 종로 대로변에서 노점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뒷길로 내몰릴 전망이다. 창경궁로 특화 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이상호(가명·45) 씨는 "종로 대로에서 이곳으로 이동한 이후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며 "내년에도 지금과 같으면 노점을 그만두고 막노동판이라도 나가야 할 판"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시는 노점 규격화 방침에 따라 300만 원의 새 리어카를 이전하는 노점상에게 구매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구청에서 100만 원을 지원하지만 200만 원도 이들에겐 부담스럽다. 또 노점을 양성화한다는 취지로 2010년 3월부터 공시지가에 따라 도로 점유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이래저래 올 겨울이 추운 노점상들이다.
"노점 합법화, 필요하다" 홍기돈 민주노동당 정책부장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노점상의 문제를 두고 "서울시는 기본적으로 노점상이 사라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 정책부장은 "노점상의 생존권 자체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점상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라며 "하지만 서울시는 노점상의 생존권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적으로 서울시는 신규 노점의 진입을 막고 기존 노점을 줄여나가겠다는 생각"이라며 "서울시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분란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정책부장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점을 합법화하고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며 "반대하는 이도 있겠지만 합법적인 공간에서 노점을 허용한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시가 노점을 인정한 뒤 서로 협의하며 디자인 거리, 노점 특화 거리 등을 진행하면 된다"며 서울시의 기조 변화를 촉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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