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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할 말과 해선 안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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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할 말과 해선 안 되는 말

[이정전 칼럼] '빨리빨리'가 아닌, '차근차근'의 시대

결과적으로 보면, 지난 금요일(11월 27일) 세종시에 대한 대통령과의 방송 대담은 잘못된 것이었다. 국민을 향한 진솔한 사과와 읍소로 일관하든가 아니면 반대여론에 대한 철저한 반박으로 일관하든가, 둘 중의 한 가지 형식을 취했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닌 대담이다 보니 세종시와 4대강을 둘러싼 논쟁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격화되는 양상이다.

여권 인사들은 그만하면 대통령이 진지하게 사과한 것 아니냐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사과란 그저 "잘못했다, 부끄럽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집안에서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도 그렇다. 그냥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대게는 "네가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 말해봐"라고 채근하면서 구체적으로 반성할 것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구체적이고 진지한 반성이 없는 사과는 형식일 뿐이다. 방송대담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을 왜 수정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구차한 변명을 하기보다는 대통령으로서 말을 바꾸는 것이 왜 어떻게 나쁜 일인지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나서 사과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철저한 반성이 없는 사과는 하지 않음만도 못하다.

국민과의 '대담'인가, 선전전인가

아마도 지난 금요일 방송대담은 사과보다는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을 완화하려는데 주안점을 두었던 것 같다. 만일 정말 그랬었다면,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전문가들이 토론에 참석했어야 했다. 더욱이나, 반대진영에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수두룩하게 포진되어 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듯이 이명박 대통령도 계급장을 떼고 그런 최고 전문가들과 맞장을 떠야 했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은 그럴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대담이 진지한 대화가 아니라 사실상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일방적 브리핑으로 흘러가 버렸다.

또 그러다 보니 그날 대담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 중에서 어느 것 하나 과학적·통계적 근거를 확고하게 가진 것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대담이 나가기 무섭게 대통령의 발언을 공격하는 글들이 일간신문에 뜨기 시작하였다. 이 대통령은 원안대로 세종시에 9개 행정부처가 옮겨가더라도 공무원이 내려가 살지 않기 때문에 공동화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전으로 내려간 중앙부처 공무원의 90% 이상이 대전에 살고 있다는 통계자료가 신문에 발표되었다.

대통령이 로봇 피쉬 모형까지 들고 나와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다고는 하지만, 방송대담 다음날부터 여러 일간신문들이 깜짝 쇼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로봇 피쉬는 아직 실용화되어 있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가격도 한 개당 수천만 원이나 될 정도로 고가여서 예산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더욱이나 수많은 로봇 피쉬를 강에 풀어놓을 경우 훔쳐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터인데 이것을 막는 일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4대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천의 수질오염부터 잘 처리하면 4대강이 훨씬 더 깨끗해질 터인데 굳이 로봇 피쉬까지 동원해야할 정도로 4대강을 홀딱 뒤집어놓을 필요가 무엇이냐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지난달 27일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대통령과의 대화'는 무엇을 남겼나. ⓒ연합뉴스

경제학자의 입장

4, 5조 원의 돈을 들여서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더라도 다른 지역에는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통령이 방송대담에서 장담하였고 다수의 여권 인사들도 맞장구쳤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경제학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후진국과 같이 유휴자원이 널려있는 나라에서나 통할 수 있는 소리다. 우리나라가 자원빈국임은 국민 누구나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땅도 부족하고, 에너지 자원도 부족하고, 광물 자원도 부족하고, 목재도 부족하고…. 심지어 인력도 부족해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하나 남아돌아가는 것이 없는 나라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모든 자원이 거의 완전고용상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세종시에 4, 5조 원의 돈을 퍼다 부으면 다른 곳에서 이에 버금가는 만큼 펑크가 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지역에서 4,5조 원어치에 상응하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명언 중의 하나는 "이 세상에 공짜 점심 도시락은 없다"라는 말이다. 다른 지역에 피해를 주지 않고 세종시를 명품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정운찬 총리는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이 말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 터이다. 대통령의 말을 듣기만 하는 총리가 아니라면 세종시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이 옳지 않음을 지적했어야 했다.

사실, 말이 그렇지 대통령이 전문가들과 격론을 벌인다는 것은 이상하다. 엄밀히 말하면 세종시 원안이 비효율적인지 아닌지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자신 있게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문제 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다. 4대강 사업이 수질오염을 개선하는지 아닌지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자신 있게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다. 4대강 사업이 홍수방지에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자신 있게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 그것도 방재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다. 4대강 사업이 생태계를 보전하는지 아닌지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자신 있게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 그것도 생태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다. 로봇 피쉬 모형을 들고 나와 설명하는 것도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국장이나 과장이 할 일이다.

한국 대통령이 해야 할 일

물론, 지금 이런 모든 문제에 관해서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확고한 대답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철저한 기초연구가 아직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주 기초적인 자료조차 축적되어 있지 못하다.

지난번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 때를 되돌아보자. 한쪽에서는 대운하를 건설하더라도 수질오염문제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 측에서는 대단히 심각할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대운하 건설이 어느 정도의 수질오염을 초래할지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엄밀한 대답을 기대하기에는 우리나라에 축적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많은 환경전문가들이 한탄하였다. 수질오염을 예측하는 모형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지만, 그 모형에 집어넣을 기초적 자료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한심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초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먼저 떠든다면 자연히 전문가들도 논쟁에 휘말려들게 된다.

지난번 대운하 건설을 둘러싼 논쟁 때에도 여러 차례의 찬반토론은 감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로 얼룩졌을뿐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별로 없었던 소모전이었다. 일방적 주장 그리고 "좀 더 잘 알고 나서 얘기해라"라든가 심지어 "미국에 가서 공부 좀 더해라" 등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묵살하는 언사가 난무하였다. 그렇게 상대방을 묵살할 수 있을 정도로 대운하에 대한 주장이 과학적 사실에 확고하게 정초하고 있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에 대하여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이 논쟁이 잘 마무리되도록 중립적 입장에 서서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전문가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다.

"시간이 없다"는 대통령 말의 허구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적대적 논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상처만 남길 뿐이다. 몇 년 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는 카네만 교수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 적이 있다. "나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볼 때 논쟁은 시간낭비이다. 논쟁에서 상대방에게 승복하거나 논쟁을 통해서 상대방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화를 내면서 학문을 하는 것은 비참한 경험이다." 그는 현행 과학논쟁의 한 형태인 비판-대응-재대응의 틀 대신에 적대적 공동연구(adversarial collaboration)를 시도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토로하였다. 말 그대로 적대적 공동연구란 큰 견해차이로 적대관계에 있는 전문가들이 신의성실의 원칙 아래 공동연구 사업을 수행하는 것인데, 제3의 중립적 인사가 자료수집과 연구수행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말한다.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우리 학계에서도 카네만 교수가 말하는 적대적 공동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의 경우에도 관련 전문가들이 소모적 논쟁을 하는 대신 적대적 공동연구를 통해서 쟁점을 잘 정리하고 공동으로 조사하고 자료를 발굴하며 그 위에 이론을 잘 적용한다면, 견해의 차이를 크게 좁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적지 않은 소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대통령도 좀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관련 전문가들이 1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에 대하여 적대적 공동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싶다.

방송대담 때도 대통령은 자꾸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세종시 사업과 4대강 사업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시대착오적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빨리빨리'가 주효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지났다. '빨리빨리'는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빨리 갈 수 없고, 빨리 가서도 안 되는 '차근차근'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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