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유명 MC가 재계약할 시점이 되면, 주로 출연료 인상 문제로 방송사와 소속 기획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이번 유재석의 방송 하차 논란의 중심에는 단순한 출연료가 아닌 소속 연예기획사의 외주제작 요구가 있다. 단순히 출연료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을 통째로 넘기라는 소속사의 요구를 생각해보면, 연예제작 시스템에서 방송사인 갑과 기획사인 을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항간에는 유재석의 소속사인 'De Chocolate E&TF'가 <무한도전>의 외주제작을 MBC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유재석을 하차시키겠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할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유재석의 소속사인 'De Chocolate E&TF'는 어떤 회사이며, 이 회사는 왜 외주제작을 하려할까?
'De Chocolate E&TF'는 연예오락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보유하고 있던 'DY 엔터테인먼트'와 '팬텀엔터테인먼트'가 합쳐쳐 만든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이다. 알다시피 'DY 엔터테인먼트'는 개그맨 신동엽이 대표로 있었고, 유재석, 김용만, 노홍철, 지석진 등 유명 예능 MC들을 보유한 최고의 예능 연예기획사이다. 한편으로 '팬텀엔터테인먼트'는 개그맨 강호동, 박경림, 윤종신, 지상렬 등을 보유한 MC 기획사의 양대 산맥이다. '팬텀엔터테인먼트'는 자회사인 '도너츠미디어'(팝콘필름)를 통해 'DY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여 2009년 초에 "De Chocolate E&TF"사를 통합 출범시켰다. 2000년에 코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는 연예매니지먼트, 방송외주제작, 영화투자제작, 커피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연예계의 상징적 가치를 주식자본으로 전환하려는 "연예-금융" 커넥션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De Chocolate E&TF"사는 영화배우 고현정, 김태우, 개그맨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가수 윤종신 등 종합 연예매니지먼트 회사로 성장했다. 현재 이 회사는 MBC <황금어장>, SBS <패밀리가 떴다>, <요절복통 유치장>, KBS <소녀시대의 헬로 베이비>를 외주제작하고 있고, 얼마 전까지는 <스타킹>, <야심만만>를 외주제작 했다. 이밖에 영화 <연애소설>, <령>, <므이>를 기획·제작하는 등 종합편성채널 시대를 대비해 새로운 콘텐츠 제작 독점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 De Chocolate E&TF사 개요. |
이상야릇한 것은 표에서 알 수 있듯이, "De Chocolate E&TF" 소속 연예인들은 주로 자신의 소속사에서 외주 제작한 프로그램에 MC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특정한 연예제작사가 특정 프로그램을 외주제작하고,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을 자신의 소속 연예인을 캐스팅 것이다. 소위 "꿩 먹고 알 먹는" 식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시청율이 높은 <무한도전>을 "De Chocolate E&TF"가 직접 제작하여 현재 방송사가 전부 보유하고 있는 저작권을 양도받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데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독점적인 연예제작사의 등장은 방송콘텐츠 제공과 예능프로그램 출연진의 수급에 있어 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방송사 예능국과 일정한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연예기획사와 방송사의 암묵적 공생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력을 보유하고 있는 독점 기획사가 인기 연예인을 볼모로 외주제작을 요구하는 단계로 이르게 되면, 연예기획사와 방송사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된다.
그런데 "De Chocolate E&TF"는 외주제작을 통한 수익극대화가 최종 목표일까? 내가 보기에 그건 아닌 것 같다. 2000년 들어서 연예기획사는 연예제작의 상징적 부가가치를 이용하여 그 힘으로 코스닥에 직접 상장을 하거나 아니면 우량 중소제조기업과 합병하여 우회 상장을 노리고 있다. 지상파방송 예능프로그램의 주요 진행자들이 기업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세워, 방송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코스닥상장을 위해 제조업 중소기업체와 전략적 합병을 한 후 자본력과 섭외력을 내세워 예능프로그램의 외주제작한 후에 그 프로그램에 소속 연예인을 출연시킨다. "제작-배급-출연"의 배타적 독점관계는 2000년대 들어 새로운 형태의 매니지먼트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독점적인 연예제작사 그룹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은 연예산업의 투자 위험도를 최소화해서 주식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 개그맨 유재석이 자신의 출세작이자 오락프로그램의 지존, <무한도전>에서 하차한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유재석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무한도전'을 왜 하차하려할까? ⓒMBC |
한국의 연예 문화자본은 금융자본과 밀접한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 연예매니지먼트의 구조상 이러한 금융 커넥션은 연예기획사 간의 치열한 주도권 전쟁을 낳으면서 기획 사간의 전략적 인수합병, 소속사 이적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주식 가를 높이기 위한 연예 프로모션의 부적절한 관계가 형성된다. 일례로 2002년 가요계 피알(PR)비 사건은 부적절한 연예프로모션 방식에서 연예기획사와 방송사 간의 새로운 커넥션을 보여주었다.
피알비 사건을 통해서 연예기획사는 주식상장을 목표로 소속연예인들의 집중적인 방송 노출을 요청하면서 방송 PD들에게 현금이나 차량을 제공하던 과거의 방식과는 다르게 상장을 전제로 한 주식공여 혹은 상장된 주식 거래를 제공한다. 주식을 보유한 방송 PD들은 자신의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해 거래한 기획사의 연예인들의 지명도를 높이려 하고, 또 자신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에 독점 출연시킨다. 이 과정에서 연예자본과 방송제작진 사이에 돈독한 공생관계가 유지된다.
드라마제작의 경우 최근 대형 외주 제작사들이 생겨나면서 방송 콘텐츠를 매개로 직접 혹은 우회 상장을 하고 있는데, 전직 드라마 PD출신들이 외주제작사의 대표나 이사로 이동하면서 방송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이러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2009년 초 지상파 방송사 예능국의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금품수수로 검찰에 구속되었는데, 이들 일부가 코스닥에 상장된 연예기획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번 개그맨 유재석의 <무한도전> 하차 논란이 우려되는 것은 방송콘텐츠에 직접 관여하려는 외주제작사의 이해관계가 방송 생태계를 교란시킬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기획사가 연예오락프로그램의 주요 MC를 독점하고, 다시 그들의 인지도를 이용하여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외주 제작하는 일이 허용된다면, 비록 연예오락프로그램이지만, 방송이 완전히 문화자본에 종속당하는 사태가 일반화될 것이다.
또한 현재 연예오락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스타급 PD들이 혹여나 외주제작사의 주식 유혹을 받아 방송사를 떠나 드라마 외주제작사처럼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대한민국의 상당수의 연예오락프로그램은 독점적인 문화자본을 보유한 특정 기획사에 의해 장악될 소지가 다분하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을 재미있게만 해주면 되지, 소유나 지배관계가 무슨 대수냐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재미와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오락프로그램조차도, 이러한 독점적인 연예제작시스템의 먹이사슬에 빠지게 되면, 언젠가는 그 독점적인 횡포 때문에 식상함의 감옥에 빠질 것이다.
방송은 이제 공공재가 아니라 문화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사적 이익의 터미널이 뿐이다. 그리고 간혹 <무한도전>처럼 오락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사회비판과 세태풍자의 카타르시스도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러니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제작진들은 굳건히 <무한도전>을 지켜주기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