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답답함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자리가 잇따라 마련됐다. 지난 5일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국교수노조 등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 회관에서 '끝나지 않은 용산 참사, 원인과 해법' 토론회를 열었다. 6일에는 민주당 용산 참사 대책위원회가 6일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주최한 '대한민국법, 정의의 상실, 용산 참사 판결 토론회'가 있었다. 두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쟁점별로 정리했다.
▲ 5일 가톨릭 회관에서 열린 '용산 참사 원인과 해법'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프레시안 |
1. 이중잣대 판결
6일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용산 참사 재판 판결문에서 드러난 재판부의 편향된 인식을 차근차근 지적했다. 법원은 범죄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사회 심리적 경험법칙을 이용, 철거민이 화염병을 던져 화재가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사회 심리적 경험법칙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명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오로지 국민의 건전한 상식 및 양심적 판단에 부합할 때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판결이 상식에 부합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가 꼽은 또 다른 문제는 '법원의 편협한 시각'이다. 법원은 경찰특공대원의 엇갈리는 진술을 놓고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농성자에 대해서는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웠다"며 이로 인해 화염병을 던졌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교수는 "철거민들에 대한 무한한 불신과는 정반대로 공무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즉 편협한 시각이 법원의 경험법칙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에 "법원이 사회적 지위나 계층, 계급 별로 편향적인 그들 나름의 경험법칙을 구축하고 있음이 이번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주장했다.
2. 공개되지 않은 수사 기록 3000쪽
재판이 끝날 때가지 검찰의 수사 기록 3000쪽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단골로 꼽히는 문제다. 5일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한택근 민변 사무총장은 "법원이 무기력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검사가 열람·등사를 거부한 수사 기록 3000쪽에 대해 지난 4월 17일 변호인단은 '압수·수색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4월 22일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은 압수·수색을 신청할 권한이 없으므로 법원으로서는 압수·수색신청에 대해 별도로 결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총장은 "검찰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10월 5일자 의견서를 보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 사건 피고인들이 제기한 헌법 소원 사건에 대한 의견서다. 이 의견서에서 검찰은 "법원이 필요하다면 직권으로 압수·수색을 하여 강제적으로 그 기록을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만약 그 압수·수색을 거부하거나 방해한다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법원이 직권으로 조사를 요구했다면, 검찰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 총장은 "검찰이 지속해서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이를 이행할 때까지 공판 기일을 연기하는 방법도 있었다"며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진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검사에 대해 열람·등사 결정을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피고인 변론을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 등이 9월 1일 사퇴하고 새 변호사가 선임됐다.
그는 "결국 1심 재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배제한 채, 불리한 증거만 가지고 재판이 진행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수사 기록 3000쪽에는 피고인 측 주장에 결정적으로 부합하는 증거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3. 눈치보기 재판
'정치 판사'가 재판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7일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김형태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평범한 사람에게 그 재판 과정을 지켜보게 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라고 반문했다. 피고인 측 변호를 맡았던 그는 "재판부가 정치권와 재벌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의 독립성이 당장 얻어질 리가 없다. 김 변호사가 "항소심 재판부가 제대로 판결한다면 철거민은 무죄"라면서도 "하지만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결국, 해법은 법원 바깥에 있다. 김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용산 문제가 합의된 뒤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며 "그래야만 재판부가 사회적 갈등이 낳은 압박에서 벗어나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정치권의 몫도 있다. 그는 "정운찬 총리는 이미 포기했으니 여권 실세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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