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총리실 행정정책과장은 27일 용산 유가족 다섯 명과 대화를 가졌다. 공식 면담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정부 측 관계자와 첫 대화였다. 하지만 총리실 관계자를 만나는 길을 멀고도 험했다.
용산 범대위 대변인 2명 포함 8명 연행…우여곡절 후 유가족과 정부 '대화'
추석날 총리가 용산을 방문한 뒤로 유가족은 참사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나서 줄 것으로 기대했다. 총리는 당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며 유가족을 총리실로 초대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러한 발언은 결국 '립 서비스'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유가족은 지속해서 총리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총리와의 면담을 촉구했다. 유족은 전날 총리실에 면담을 요청해 둔 상태였다.
▲ 정운찬 총리와의 면담을 촉구하고 있는 유가족. ⓒ프레시안 |
하지만 총리를 면담하는 일은 어렵기만 했다. 면담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 대변인 2명과 철거민 6명을 연행한 것. 불법 농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노상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유가족은 총리실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총리실 관계자는 유가족의 '총리실 방문' 요구에 "총리에게 보고한 후 답변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반복했다. 이재영 총리실 행정 정책과장은 이날 "총리실은 유족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그것을 들어주고 관계 기관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며 "지금은 당사자 간(서울시 등과 유족) 협상이 없는 상태에서 총리실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중단된 교섭…유가족 "보상이 아닌 정부 사과가 먼저 이뤄져야"
실제로 서울시와 유가족간 협상은 현재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총리가 "진전이 없다"고 말한 부분도 이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용산범대위와 유가족은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 사과 △용산 4구역 세입자에 대한 대책 마련 △유가족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운찬 교수가 총리로 임명되기 전 서울시와 유가족 간 벌인 4차례 실무 협상을 통해 보상과 관련된 논의는 진전된 상태다. 재개발 조합이 사망자 5명 유족에게 각각 보상금 3억 원과 향후 상가 분양권을 주기로 했다. 또 보상을 거부한 용산4구역 세입자 23가구에게 기존보다 50% 많은 150%의 영업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체납된 장례비 5억 원은 한국교회봉사단이 제공하고 삼성물산을 비롯한 시공사가 건설 공사 현장의 '함바 식당' 운영권 2개를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러한 안을 받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부 측 사과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용산 범대위 관계자는 "정부는 참사의 본질은 건드리지도 않으며 돈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며 "보상안 이전에 정부의 사과 등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교섭이 무산된 이유이자 재개되지 않는 이유다. 물론 정부 측에서도 이를 두고 '절대 불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 지난 3일 용산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운찬 총리. ⓒ노동과세계 |
"결국 정 총리의 조문은 말로 끝나는 정치쇼"
이렇게 '정부 사과'를 두고 용산 참사 문제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는 와중에 정운찬 총리가 총리 임명 직후 용산을 방문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유가족에게 약속했다. 그렇기에 유가족은 총리를 통해 교섭에 대한 물꼬가 트일 것으로 예상했다. 총리가 정부의 사과를 위해 노력할 거라고 판단한 것.
하지만 지금까지 정운찬 총리의 행보는 이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총리는 9개월 동안 용산 범대위에서 요구해온 '정부의 사과'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19일 브리핑을 통해 "용산 대책위가 사건 해결에 진정성이 없는 것 같다"며 "범대위 등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범대위의 '정부의 사과' 등 무리한 요구로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다는 이야기.
총리실은 "정운찬 총리가 취임 이후 사건 실체와 범대위 요구사항 등을 보고 받고는 범대위 등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며 유가족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용산 범대위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부터 '정부의 사과'를 촉구해왔기 때문에 "총리가 취임 전엔 이것을 정말 몰랐는가"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용산 범대위는 결국 '정치쇼'라고 판단한다. 이들은 "공직자로서 무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을 믿고 총리실의 반응을 기다려 왔지만 결국 정 총리의 조문은 말로 끝나는 정치쇼가 됐다"며 "차라리 눈물이나 보이지 말고 약속이나 하지 말지 왜 그랬는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래저래 정운찬 총리를 믿은 유가족의 가슴만 타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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