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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판도라의 상자'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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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판도라의 상자' 열었다

[김종배의 it] 수능 원자료가 공개됐으니…

'조선일보'가 '큰일'을 벌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마지막 금기'로 설정했던 고교별 수능 성적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조선일보' 스스로 표현했듯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거든 사람이 있었다.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그가 앞장서서 수능 원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끝에 결국 교과부로부터 CD에 담긴 해당 자료를 넘겨받았다. 2200여개 고교의 수능 원자료가 담긴 CD였다.

하지만 반쪽짜리였다. 교과부가 넘겨준 자료는 교명 대신 코드로 처리된 자료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조선일보'가 "별도의 확인과정을 거쳐" 2200여개 고교 중 1500개 안팎의 고교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곤 보도했다. 2009학년도 수능 성적 중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의 고교별 평균점수를 분석한 결과 상위 30개 고교 중 26개교가 특목고(과학고는 수시전형 진학이 많다는 이유로 분석대상에서 제외했다)였다고, 고교별로는 대원외고가 1등, 민족사관고가 2등, 한국외대부속외고가 3등이었다고 보도했다.

짚을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과부는 해당 자료를 넘기면서 단서를 달았다. '연구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단서였다. 그런데도 조전혁 의원은 해당 자료를 언론사에 넘겼다. '연구 목적'이 아니라 '보도 목적'으로 쓰일 게 분명한데도 스스럼없이 넘겼다. 무엇이었을까? 그 의도가.

교과부는 어느 고교인지 식별이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코드를 붙였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별도의 확인과정"을 밟는 데 성공했다. 2200여개 고교 중 1500개 안팎 고교의 코드 번호가 뭔지를 밝혀냈다. 어디였을까? 그 통로가.

궁금하지만 미루자. 그보다 더 급한 게 있다.

▲ ⓒ조선일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 누가 열었는지는 둘째 문제가 된다. 급한 건 상자에서 튀어나온 질병을 퇴치하는 일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학교 서열화 심화 해결 방책을 찾는 게 무엇보다 긴요하다.

'조선일보'는 1500개 안팎의 고교 가운데 "상위 100개 학교들만 기사에 적시했다"며 "나머지 학교에 대해서는 '학교 서열화'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 공개 여부를 점차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건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르면서 뺨치는 격이다.

이치가 그렇다. 특목고와 일반고 간의 서열화 현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누구나 다 아는 공지의 사실이다.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조선일보'의 고교별 수능 점수 공개로 특목고 내, 그리고 일반고 내의 서열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됐다는 점이다. '일반고보다 나은 특목고'로도 모자라 '더 나은 특목고' '더 나은 일반고' 현상까지 빚게 됐다는 점이다. '일반고보다 나은 특목고'에 가기 위해 기를 쓰던 학생과 학부모에게 '더 나은 특목고' '더 나은 일반고'에 가기 위해 용을 써야 하는 부담을 지우게 됐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건가?

절망하지는 말자. 그래도 솟아날 구멍이 열려 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반쯤은 열여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이 입을 모았다. 지난 6일 안병만 교과부 장관을 불러 앉혀놓고 외국어고를 폐지하라고 입을 모았다. 입시기관화 된 외국어고 때문에 사교육이 창궐하니까 차라리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라고 입을 모았다.

이러면 된다. '일반고 전환'이 아닌 게 찜찜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한 번 시도할 만하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까 이렇게 가능한 것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

헌데 왜일까? 불안하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보내는 박수가 '나이롱 박수'로 끝날 것 같다는 예감에 빠져든다. 이런 점들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제동을 걸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외국어고 폐지'를 합창한 지 이틀 뒤에 사설을 실어 반대했다. 외국어고를 폐지할 게 아니라 "존재 목적을 살리는 대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들어갈 수 있도록 선발 방식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등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던 차(전인지 후인지는 알 수 없지만)에 조전혁 의원은 '조선일보'에 수능 원자료를 넘겨 고교별 수능점수 보도 길을 열어줬다. 어떤가? 이 현상이 외국어고 폐지 주장에 부합하는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드로 처리된 교명을 확인하는 과정은, 게다가 1500개 안팎의 방대한 교명을 확인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해냈다. 교과부는 '공개 절대 불가'를 외치는데도, 교과부 관계자가 아니면 쉬 접근할 수 없는 교명을 용케 확인했다. 어떤가? 이 현상이 외국어고 폐지 주장에 부합하는가?

자칫하다간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여권이 혼선을 빚으면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고, 교과부의 단속이 느슨해지면 교육 보도가 혼미해질 수 있다.

어찌어찌해서 외국어고 폐지에 성공하더라도 고교별 수능점수 공개가 관행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목고 내 서열화 현상 대신 자율형 사립고 내 서열화 현상이 빚어질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일반고도 마찬가지다. 창궐할지 모른다. 고교 선택제 시행과 함께 '더 나은 일반고' 근처에서 위장전입이 급증할지 모른다. 근거리 배정 원칙이 적용될 3단계 전형을 노린 사람들이 총리 이하 다수 장관들이 개척한 '선의의 위장전입' 관행을 좇을지 모른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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