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더욱 살벌하게 바뀐 교실 풍경이다. 이런 가운데 교육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어느새 MB와 反MB로 나뉘었다. 그러나 망가질 대로 망가진 현장이 현 정부 정책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평준화, 수월성, 다양화 등 해묵은 논쟁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자기 자식만은 잘 되길 바라는 학부모들은 계속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간다.
최근, 교육 정책을 둘러싼 논쟁에 새로운 불씨를 지펴줄 책이 나왔다. 교육평론가 이범이 펴낸 <이범의 교육특강>(다산에듀 펴냄)이 그것이다.
그가 대표적인 학원 강사로서 이름을 날리다가 돌연 억대의 수입을 포기하고 무료 인터넷 강의와 교육평론에 나선 것은 이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는 이번 책을 두고 "교육평론가로서 첫 번째로 내놓은 본격적인 교육비평서"라고 밝혔다.
여러 매체에서 그의 글은 늘 '좌파'와 '우파', 또는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의 논쟁을 불렀다. 이번 책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어려운 이론을 앞세우는 대신 우리나라의 적나라한 교육 현실에 발을 디딘 그의 주장은 탄탄하다. 몇 가지를 들여다보자.
"입학사정관제는 실패한다"
▲ <이범의 교육특강>(이범 지음, 다산에듀 펴냄)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년에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목도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 또한 그 임기 말년에 대입을 둘러싸고 대단한 혼란과 파국적 결말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우선 현 정부가 제시한 대입 제도가 현재로서는 100%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올 들어 정부가 대대적으로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교육 풍토를 바꾸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무리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운영된다고 해도 한국에 들어오면 귤이 탱자로 변신하는 것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가 지목한 핵심 원인 중 하나는 대학의 서열경쟁이다. 입학생들의 수능 커트라인이 어느 학교에서 더 높았는지, 최상위 명문고생을 누가 더 많이 유치했는지를 놓고 대학들이 벌이는 경쟁이 끊임없이 학생선발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대학 서열화와 고교 서열화가 이미 맞물려 가는 현실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며 분석했다.
"경쟁 완화해도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경쟁을 경감하면 공교육이 자동으로 '정상화'될 것이라는 식의 믿음은 경쟁을 시키면 자동으로 공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만큼이나 안이한 것이다. 교육현장의 새로운 리더십과 교사집단의 문화적 혁신 없이는, 절대로 공교육은 자동으로 정상화되지 않을 것이다."
이어 저자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인 사교육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그가 분석한 사교육의 발생 원인은 두 가지, '선발경쟁'과 '학교관료화'였다.
확고한 대학의 서열 구조 속에서 '명문' 대학의 '프리미엄'이 보장된 상황은 선발경쟁을 끝낼 수 없게 만든다. 이에 더해 수십 년간 윗사람의 요구에 맞춰 교육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해온 학교는 일관되게 교육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은 필연적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때문에 그는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우파의 주장도, 대학을 평준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선발경쟁을 줄이자는 좌파의 주장도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 논리는 '사교육 없는 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추진하는 현 정부 정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교육 없는 학교'의 첫 번째 한계는, 선발경쟁으로 인한 사교육은 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선발 경쟁은 엄밀하게 볼 때 '점수경쟁'이 아니라 '등수경쟁'임에 유의해야 한다.
두 번째 한계는 뭔가 '투입'을 늘림으로써 성과를 보려는 마인드가 깔려있다는 점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아닌가? 바로 이명박 정부 특유의 '건설업'적인 마인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이미 학생들이 과다한 학습시간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의 요소 투입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조직과 소프트웨어를 개혁하여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교사 해방운동이 필요하다"
선발경쟁과 학교관료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입시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것. 죽음의 트라이앵글에서 보듯, 입시가 다각화될 수록 학생의 부담이 늘고, 사교육 시장은 팽창한다는 것은 사교육업자들 사이에서는 통설이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1년새 입시 컨설팅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운 것과 같은 이치다.
또 하나는 '학원 강사보다 못한 교사'를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외면할 수 없는 이 사실이 단순히 교사 개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달린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가 관료의 지배로부터 교사를 해방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학교 교사가 학원강사보다 못한 점은 양쪽의 일상적인 활동을 비교해 보면 드러난다. 학원 강사는 어떤 교재로 어떻게 수업할지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또 학원 강사는 공강이나 쉬는 시간을 주로 학생과 수업을 위해 할애한다. 그러나 학교 교사는 정규수업 이외 시간을 최우선적으로 행정업무를 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
교육관료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학교를 지배한다. 하나는 교육과정 편성권이고, 또하나는 승진제도이다. 교육과정 편성권을 현장 교사들에게 상당부분 이양하고 승진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교육 현장이 재활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교사 해방운동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한국 교육의 재활이 불가능한 것이다."
"중-고 통합 무학년 학점제가 대안"
학생과 교사의 자율권을 늘릴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특히 '중-고 통합 무학년 학점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또 국정·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해체하고 자유발행교과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또한 그는 입시 명문고가 되어버린 외국어고를 폐지하거나 일반고로 전환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목고의 존재 근거는 현행 일반고의 결함과 한계에 있기 때문에, 특목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특목고가 아니라 일반고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다양한 교육이 가능해지면 수월성은 물론 본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교육까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에는 저자의 오랜 경험과 풍부한 외국 사례를 토대로 한 한국 교육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에 대한 일련의 강의가 수록돼 있다.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물음표가 생기는 부분도 없지 않다. 저자는 마지막장의 제목을 "교육 정치, 좌파와 우파가 대화해야 한다"라고 적은 것처럼, 이번 책이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바람은 책에도 그대로 나와 있다. 책을 읽고 저자와 직접 토론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홈페이지 주소는 물론 그의 휴대폰 번호까지 친절하게 안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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