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철거민 희생자의 시신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서울 순천향대병원의 냉동고에 있다. 유족, 철거민, 이들을 돕는 시민은 날마다 참사 현장 앞에서, 그리고 수시로 유관기관을 방문해 사과와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지만 정부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행세만 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서 용산의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는 하루속히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태세다. 문정현 신부 등 참사 현장을 지키는 철거민과 시민들은 날마다 용역업체 직원의 시비를 상대해야 한다. 다섯 달 전과 비교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문화예술인이 이 같은 용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연재를 시작한다. 6·9 작가선언 모임을 비롯해 작가, 미술가, 만화가, 사진가 등으로 구성된 '용산참사와 함께 하는 예술가들'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용산 참사에 대한 자신의 에세이를 풀어낼 예정이다. <편집자>
무겁고 어두운 장미들보다는,
눈먼 자의 손의 열망은,
스치면서, 찔레나무를 택한다
─ 르네 샤르
이곳은 찔레나무의 고장, 흐르는 물이 찔레나무를 돕는다. 가끔 구름이 장미와 뒤섞인다. 우리는 구름에서 채취한 꿀의 문장을 가다듬는다. 우리의 서류는 찔레나무 속에 들어있다. 우리들 각자가 싸인한 서류만이 꽃을 피운다. 가시는 훨씬 왕성해지면서.
당신이 왜 내 서류에 싸인을 하는 거요!
우리는 각자의 페이지를 가지고 있소.
하나는 삶이라는 서류요.
또 하나는 분노라는 서류요.
다른 하나는 별빛이 담긴 자루라는 서류요.
또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서류요.
잉걸불이라는 서류, 샘에 심지를 내린 촛불의 서류.
그런데 당신이 왜 내 서류에 싸인을 하는 거요!
정치학의 호적부에 등재되어 있는 물대포로, 인두로, 재로,
이곳은 금온(禁溫)의 고장, 입술과 입술을 포갤 수 없고 손이 다른 손을 잡으려면 신고해야한다. 찔레나무에서 철사꽃이 핀다. 그것을 따서 우리는 손바닥으로 비빈다. 우리의 피가 잉걸불이라는 걸 알기에 사람들은 찔레나무가시가 자라는 것을 지켜본다.
Ⅰ. 한유은지
목격자 :
모래의 날들이 계속된다,
꿀의 망루를 지켜라.
삶을 망치로 두드리는 자가 나타날지니.
한유은지 :
내 소망은 저 자극적인 정치가(政治家),
저 신경질적인 자두에 보라색을 바르는 일.
Ⅱ. 정잎새
감염자 :
어떠한 밤도 속일 수 없다.
어둠을 발견하고 쓰는 것은 시인이지만,
사랑은, 거대한 사랑은
실천하는 자들의 것이니까.
정잎새 :
찔레나무가시가 번지는 것을 바라볼 것.
그리고 어깨를 받칠 것.
격려 받은 자들의 출혈이 얼음의 형상을 드러낸다.
▲ ⓒ노순택 |
Ⅲ. 김종삼
전도사 :
기도하시지요.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는 분이랍니다.
김종삼 :
하나님은 어느 누구의 기도도 듣지 않는다한다.
죽은 이들의 기도만 듣는다한다.
Ⅳ. 최슬
엠비 :
나는 일한다.
4대강을 위해, 재개발을 위해.
최슬 :
너에겐 일이겠지만 우리에겐 슬픔이다.
Ⅴ. 함민복
작명가:
당신의 이니셜은 MB, 기분 나쁘지 않소?
당신은 가난한 시인,
무료로 작명을 해줄 터이니 이름을 갈아보지 않겠소?
함민복 :
누군가는 내 이름에서
(백성 민民 엎드릴 복伏)
엎드린 백성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어느 날의 촛불집회, 엎드려 불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을 때
경찰의 헬멧이 내 콧잔등을, 경찰의 방패가 내 머리통을
가격했다. 내 시에 어혈이 생겼다.
어쨌든 내 시는 돌멩이에 작은 혈관을 내준다.
Ⅵ. 김엘레나
오이풀은 김엘레나의 입을 통하여 말한다.
수박냄새 나라 수박냄새.
참외냄새 나라 참외냄새.
미쳐가는 여자 김엘레나가 청계에서 신발짝을 두드리며,
제발, 사람냄새 나라 사람냄새.
Ⅶ. 강니은
일터에서 늘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강니은씨는 알고 있다. 택시들이 줄지어 늘어선 정류장에서 이명박적 충고를 크게 틀어놓은 모범택시가 내뱉는 침에 가난한 사람들이 곧잘 미끄러진다는 것을.
이 세상에 돈 없는 것들은 모범이 아니야! 퉤.
Ⅷ. 천태호
천태호 :
쥐와 혼례 하는 자들이 늘어난다.
당신은 그걸 믿을 수 있소?
냉동고에 영혼을 집어넣고 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우글거린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그걸 믿겠소?
나 :
용산에 간다. 내 시는 아직 승인되지 않는다.
시작메모
우리가 그들을 부르지 않으면 그들은 마침내 죽는다. 호명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들이 산다. 비참한 악습을 몰아낼 새로운 눈물은 우리에게 그득하고, 넘쳐난다. 찔레나무여, 찔레나무여 바야흐로 살인자를 얼음 속에 산채로 집어넣을 시간이 됐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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