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차기 의장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대륙별 순환 원칙에 따라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출마만 하면 당선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인권위, '제2의 후보' 접고 출마 포기 결정
인권위는 30일 상임위를 열고 다음달 3일부터 요르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 포럼(APF)'에서 결정되는 ICC 차기 의장 후보 선출과 관련,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날 결정은 상임위원 3명과 위원장의 만장일치 합의로 이뤄졌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ICC 의장으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었다. 민법 전공자로서 인권 현안에 문외한이라는 점, 영어 실력이 부족해 국제기구 의장으로 활동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인권위 역시 이런 지적을 의식해, 현 위원장이 아닌 '제2의 후보'를 내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 왔으나 결국 후보 출마 포기 결정을 내렸다.
당선 보장된 의장직 포기해야 할 만큼 열악한 인권 현실
이를 놓고 인권위 안팎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국내 인권 현실과 인권위 역량이 급격히 열악해졌다는 점을 확인해준 사례라는 설명이 나온다. 대륙별 순환 원칙에 따라 2010년부터 3년 임기의 차기 ICC 의장국은 아태지역에서 맡기로 돼 있다. 아시아에서 ICC 의장국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쟁국가도 없다. 한국측 인사가 출마만 하면, 의장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떼어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는 의장직을 스스로 포기해야 할 만큼 인권 현실이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국제 사회에서 인권 모범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함에 따라, '인권 외교' 역시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과거에 비해 안 좋은 조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싸늘한 시선도 한 이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현 정부 들어 인권위 조직이 강제 축소돼 국제적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이유로 꼽혔다.
이어 그는 "(차기 ICC 의장국을 포기하는 대신) 국내 인권 현안을 해결하는 데 힘을 쏟겠다"라고 덧붙였다.
"ICC 항의 무시한 한국 정부, 의장국 포기는 당연한 일"
한편, 이날 결정에 대해 인권 활동가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배여진 활동가는 "인권 문외한인 현 위원장이 ICC 의장을 맡으면 국가 망신만 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는 "ICC 의장 출마를 놓고 인권위가 보인 모습은 끝까지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현 위원장이 ICC 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제2의 후보'를 내려하는 등 '꼼수'에만 골몰했다는 지적이다. 그 원인으로 배 활동가는 "인권위가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 조직 보호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 인권 상황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당장 겪게 될 망신을 피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설명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현 위원장이 ICC 의장을 맡아서 한국이 ICC 의장국이 된다는 것은 한국의 인권위가 모범적인 활동을 했다고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다는 뜻인데, 현실은 다르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며 인권위 강제 축소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그는 "인권위 위상을 떨어뜨리고, 독립성을 훼손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 ICC가 강력히 항의했다. 그런데 한국이 ICC 의장국이 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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