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 두 푼 아껴가면서 빠듯이 살아가는 서민은 단돈 1000원도 아쉬워서 허리띠를 졸라맨다. 당연히 전기 요금도 쌀수록 좋을 것 같다. 반면에 싼 전기 요금으로 비싼 전기를 물 쓰듯 하니 (물도 물 쓰듯 하면 안 되지만) 요금이 좀 올라야지 효율이니 절약이니 하는 구호가 구호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사정 때문에 소비자운동을 하는 이들은 전기 요금 인상에 비판적이고,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은 발전소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를 염려하며 싼 전기 요금에 비판적이다. 그런데 지난 6월 4일 지식경제부가 "에너지 가격 기능의 회복을 통해 에너지 절약을 촉진하겠다"면서 "원가보다 낮게 책정된 에너지 가격을 적정 원가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곧이어 7일에는 주택용 누진제 폭을 완화하고 산업용과 농업용 전기 요금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론은 비판적이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원가의 절반만 내고 있는 100킬로와트시 이하의 전력량을 쓰고 있는 서민층의 전기 요금이 두 배로 오른다는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식의 '부자 감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전기 요금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기존의 전기 요금 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총괄원가가 용도별로 다른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전력체계는 원자력이든, 석탄이든, 태양에너지든 발전원에 관계없이 생산된 전기가 모두 섞여서 전국적인 송배전망에 공급되어 소비자에 전달되는 체계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전기를 쓰건 전기의 질도 평준화되어 있고 가격 차이도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이유는 전기를 쓰는 시간대와 쓰는 전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심야 시간대에는 전기가 남기 때문에 이때의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용과 가로등용 전기 요금은 저렴하다. 낮은 전압을 쓰는 주택용의 경우는 보통 345킬로볼트로 송전되는 전기를 변압소와 배전소를 거쳐 220볼트 전기로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손실되는 전기 비용이 포함되고 설비 비용도 포함되므로 원가가 비싸지는 것이다. 농사용의 경우는 낮에 주로 쓰고 전압도 낮지만 정책적 차원에서 지원해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산업용의 경우는 높은 전압의 전기를 사용하고 심야 시간대에 전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이를 예상해서 원가를 산출하므로 가장 낮다. 하지만 최근에 심야 시간대에 전력소비가 몰려서 값비싼 천연가스 발전소를 가동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총괄 원가 산정의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프레시안 |
어느 경우에도 100킬로와트시 이하로 쓸 경우는 전력량 요금이 55원~52.4원으로 위 표에서 나타난 총괄 원가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100킬로와트시를 넘어 쓸 때도 전기 요금은 원가에 채 미치지 못한다.
여기서 갑자기 우리 집은 어디에 해당되는지 궁금해졌다.
ⓒ프레시안 |
우리 집은 100킬로와트시 이상을 쓰는 집으로 820원의 기본료를 내고 100킬로와트시까지는 55.1원의 비용을 나머지 57킬로와트시는 113.8원을 적용해서 1만1996원의 요금이 나왔다. 여기에 전력기금과 부가가치세가 붙어 5월분 전기 요금은 1만4410원이 되었다.
우리 집은 2인 가구로 13평에 방 두 개 거실 하나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작은 집이다. 방마다 조명이 달려 있고 각 방에는 스탠드가 하나씩 있다. 2001년산 10킬로그램 용량의 세탁기가 있고 689리터짜리 양문형 최신식 냉장고에 189리터 김치냉장고도 계속 돌아가고 있다. 부엌에는 6인용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가 더 있다.
그리고 몇 인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큼지막한 대형 HD TV가 있다. 아침이나 휴식 때 좋은 친구가 되는 5년 된 소형 전축도 있다. 그리고 겨울에 외풍이 심해서 어머니가 사용하는 1인용 전기매트가 하나 있다. 인터넷 단말기와 인터넷 전화기도 있고 화장실에는 비데도 설치되어 있다. 가끔 주말에 일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노트북 전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우리 전에 살던 사람들은 3인 가구로 우리보다 배는 많이 썼다. 아마도 우리는 제품들이 대부분 에너지효율 1등급이거나 최저소비효율을 달성한 것이고 조명은 모두 절전형이다. 이사 오면서 최신형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전기제품에는 멀티탭이 있어서 냉장고 둘을 빼고는 늘 스위치를 끈 것도 일조했을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에 들어오는 생활이니 전기 제품을 별로 쓸 일이 없어서도 한 이유다. 집에 늘 기거하는 노인이나 아이들이 있는 집은 더 많은 전기를 쓸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한 달간 현대 문명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드는 전기 비용이 1만4000원 정도다. 1만4000원이면 후배 몇 명에게 한 끼 밥 사주는 값도 안 된다. 밤늦게까지 회식하고 택시 타고 집에 오는 비용 정도 될까. 이쯤 되니 좀 미안한 감이 든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희생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 석탄과 석유를 때면 기후변화를 가속화할 거고 발전소 주변은 오염물질로 바다와 땅과 공기가 오염된다. 원자력발전은 방사능 오염과 수십만 년간 지속되는 핵폐기물을 아이들에게 떠넘겨야 한다. 그 주변에 사는 이들은 크고 작은 사고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환경 파괴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대가로 도시민인 내가 한 달간 편히 쓰는 전기 비용이 고작 1만4000원이라니. 전기를 10% 아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기껏 아껴 봤자. 1400원의 혜택이니 유인효과도 별로 없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산업용 전력요금은 전압에 따라 갑, 을, 병이 나뉘는데 여기는 그 중간인 산업용요금 '을'의 전기 요금 체계다. 심야 시간에 쓰는 전기 요금이 36원대에 불과하다. 애초에 산업용 전기 요금의 총괄 원가가 71원대이니 절반 정도이고 '심야 시간에 쓰는 전기가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용으로 쓰는 전기가 우리나라가 전체 쓰는 전기의 상당량이다. 최근 들어 주택용과 상업용의 전기 사용이 급등하면서 제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의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이 절반가량이다(50.1%, 농업용은 산업용에 포함되고 2.1%이다.)
게다가 산업용 전력 요금의 절반가량은 경부하 요금, 즉 심야 요금으로 전기를 쓰고 있다 보니 원가에 한참 모자라는 전기 요금으로 산업계, 특히 에너지 다소비 업종들은 특혜를 받고 한국전력은 상당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특혜를 받는 산업계의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어서는 것 같다. 전기를 많이 쓰는 특정 업체, 석유, 화학, 철강 업계 중 일부는 노동자들을 밤에 출근시켜서 값싼 심야전력으로 공장을 가동한다. 어떤 업체는 낮에는 자가 발전소를 돌리고 밤에는 심야전력을 쓰던 것에서 더 나아가 자가 발전소로 발전한 전기는 비싸게 팔고 공장 가동은 심야전력으로 사용하겠다고 해서 논란 중이다. 심야전력을 많이 쓰니 밤에 남던 전기가 이제는 오히려 모자라게 되어 장기 계약한 천연가스 분량 외의 추가물량으로 급히 비싸게 사 와서 발전소를 가동하게 되다보니 적자 폭이 더 늘었다. 이제는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어서 충당하자고 한다.
ⓒ프레시안 |
결국, 한국전력은 2008년에 2조 9,52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전체 매출액이 33조 가량인데 매출액의 10%가 적자인 셈이다. 2007년에도 적자가 발생해서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더 큰 적자가 발생했고 마찬가지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이므로 전기 요금을 제대로 책정하지 못했고 공기업이라서 적자를 보더라도 세금으로 메운다. 뭐가 좀 잘 못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 보자. 전기 요금은 싼 게 나을까. 비싼 게 나을까. 필자 생각은 원가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싸게 써서 발생한 적자를 다시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으로 메운다. 이런 조삼모사는 눈가림 정책이다. 단, 경영 효율화로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핵폐기물과 원자로 폐로 비용과 같이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비용은 우리가 지금 제대로 부담해야하므로 과소책정된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1980년대 발전설비가 63% 가량 과잉 공급되었고 9차례에 걸쳐 전기 요금을 인하했다. 심야 요금제도도 이때 탄생한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로 전기사용은 급증했고 이제는 GDP가 우리보다 두 세배 높은 독일과 일본 같은 나라보다 1인당 전력소비량이 많다. 최첨단 신형 아파트들은 난방과 취사도 전기로 하는 등 전기 소비를 더 늘리는 생활 양식을 부추기고 있다. 저렴한 전기 요금이 우리 경제와 사회가 에너지를 낭비하는 구조로 악화시킨 것은 아닐지, 전기를 너무 쉽게 낭비하는 생활태도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 지 되돌아 볼 때다.
산업용 심야전력요금은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고 산업용 요금도 원가 수준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CEO들이 국민 세금으로 메워 주는 값싼 전기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쓸까 신경 쓰기보다 전력소비효율과 절약하는 방법을 짜 내는 데 지혜를 모을 것 같다.
서민이라는 통칭에 가려진 진짜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국가의 정책적 보조는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게 아니라 별도의 복지 정책과 예산을 통해 강화해야 한다. 최근에 전기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오지 마을에 지원된 태양광 발전기가 눈에 띈다. 한편, 건물 단열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에너지이용합리화 기금에서 저리 융자 해주던 제도가 재작년에 폐지된 것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지식경제부 발표대로 100킬로와트시 이하의 주택용 전기 요금을 원가에 맞게 두 배로 올리는 등 원가대로 책정하면 우리 집도 6100원을 더 내야 한다. 더 아껴 써야겠다. 동시에, 이 정부가 혹시나 기업 프렌들리 정책 기조라면서 서민들 전기 요금만 올리고 산업계 부담은 피해가려는 건 아닌지 똑똑히 지켜볼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