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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의 마음 얻기 포기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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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의 마음 얻기 포기한 게 아닐까"

[현장] 광장 막은 경찰, 추모 열기만 키웠다

대체 정부와 경찰이 막은 것은 '무엇'일까.

27일 저녁,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분향소 주변은 닷새째 붐볐다. 특히 이날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종단으로 구성된 시민추모위원회가 주최하는 추모제가 있는 날이었다.

애초 추모위원회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행사를 주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날 오후까지 오세훈 서울시장은 비정치적이고 평화적인 추모제를 위해 서울시청 앞 광장을 사용하는 데에는 막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끝내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별다른 이유 없이 '불허'를 통보했다. 결국 4000여 평의 서울시청 앞 광장은 경찰버스로 칭칭 둘러싸인 채 남았고, 추모행사는 서울시립미술관 앞 정동길에서 열렸다.

그러나 경찰은 이곳으로 오려 하는 두 대의 방송 차량마저도 시청 앞 광장에서 막았고, 결국 주최 측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두 대의 멀티비전 차량을 동원해 행사를 치뤄야 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1만여 명의 시민들은 멀티비전을 중심으로 앉거나 서서 경건한 분위기 가운데 행사를 지켜봤다.

분향을 기다리면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서대문역 근처까지 서 있던 수백~수천 명의 시민 역시 추모제를 지켜보며 공감대를 이뤘다. 봉하마을에 보내는 종이학 접기, '근조 민주주의' 분향,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 동영상 상영, 시민악대 공연 등 정동길 곳곳에서 식지 않는 시민들의 '추모 열기'가 이어졌다.

오후 8시경 시작된 추모제는 10시가 넘은 시각에 끝났지만 자발적인 정동길 추모제는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또 서울시청 앞 광장 사용 '불허' 방침에 분개한 시민들은 시청역 1번 출구 근처에서 거리 시위를 시도했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이 차도 진출을 봉쇄하며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당연히 자기들이 찔리는게 있으니까 막겠죠"

"이대로 계속된다면 광우병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다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보다 인간 됨됨이에 대해 욕하고 있지 않나."

이날 오후 덕수궁 앞에서 만난 이종현(29) 씨와 정성원(37) 씨의 표정은 심각했다. 진보 단체가 주장하는 구호나 촛불 집회에 적극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은 용산 참사를 두고도 "인간으로서, 한 사람이 죽었는데 사과 한 마디도, 설명도 없다"며 "국민을 현대 직원으로 아는 것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두 자녀와 함께 분향소를 찾아왔다는 정효수(45) 씨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없는 사람이 너무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의 딸 이민지(가명·14) 학생은 "서민이 아닌 상위 1%를 위한 대통령, 있어봤자 뭐하겠나"라며 "돈 없는 애들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가 더 이상 아니다. 그냥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고 강조했다.

나란히 촛불을 들고 있던 강 모 학생(15)과 김 모 학생(15) 두 여학생의 표정에는 '어이없음'이라는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들은 "추모하기 위한 건데 경찰이 이렇게 하니까 반항심이 생긴다"며 "당연히 자기들이 찔리는게 있으니까 막겠죠"라며 웃었다.

▲ "이대로 계속된다면 광우병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다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보다 인간 됨됨이에 대해 욕하고 있지 않나." ⓒ프레시안

"아직도 국민의 힘을 두려워만 하고 있으니…"

촛불을 들고 추모제를 지켜보던 성 모(37)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며 이승만과 김구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는 "이승만은 분명 김구의 서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지금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데, 국민 마음을 헤아리고 과오를 인정하고 미안한 마음을 알려야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 씨는 "그런데 아직도 국민의 힘을 두려워만 하고 있으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동철(38) 씨 또한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을 포기하고, 정치적 반대를 막는데에만 주력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촛불을 들고 있던 시민 가운데에는 지난해 촛불 집회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들도 많았다.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봉하마을로 보내는 종이학을 열심히 접고 있던 남진우(가명·40) 씨는 "많은 사람이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그동안 잊고 있던 민주주의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남 씨는 "그런데 정작 지금 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20~30년 역사가 일궈온 상식과 원칙에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시 지난해 촛불 집회에 참가한 적이 없다고 밝힌 심성희(34) 씨도 "정부가 국민을 자꾸 무시하는 것 같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강남 상위 10%를 위한 정책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같이 사는 같은 나라 국민을 그냥 무서워만 하는 것 같다"며 "시청광장에서 하는 줄 알고 왔는데 이게 뭔가. 작년처럼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 이날 만난 몇몇 시민들은 영결식과 노제가 열리는 오는 29일이 집회가 계속 이어질지 여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레시안
이날 만난 몇몇 시민들은 영결식과 노제가 열리는 오는 29일이 추모 집회가 이어지거나 혹은 촛불 집회가 다시 점화될지 여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까지 정부가 서울시청 앞 광장 출입을 통제하거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열기를 억누르려 한다면 저항을 부를 것이라는 뜻. 추모에 나선 시민들이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빈번히 외치는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런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것 역시 거리 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도 사람인데…." 분향소 앞에서 만난 일흔여덟의 한 노인이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던진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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