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 청와대 전 홍보수석이 27일 새벽 일부 기자들을 만나 끝없이 이어진 조문 행렬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상황실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윤승용 전 홍보수석, 이정호 전 시민사회수석 등도 이구동성이었다. 봉하마을의 조문행렬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이날 밤 회사를 조퇴하고 내려왔다는 30대 직장인 하 모 씨는 "서울 분향소에 가서 조문을 했는데, 거기 가니까 봉하로 직접 내려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전했다. 밤이 깊을수록 조문행렬이 커지는 것은 이같은 현상이 한몫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저녁 7시 봉하 번개'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발인이 엄수되는 29일 새벽 5시가 지나면 봉하 조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은 날 조문 행렬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27일 김해 관광과에 따르면 26일 밤 12시를 기해 이날 하루 동안 22만 여명의 조문객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25일 자정까지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이 47만6000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7일 누적 조문객이 70만 명을 훨씬 넘길 것으로 파악된다. 평일 20여 만명의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고 있는 추세로 봐서는 28일 오전에는 100만 명도 넘을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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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여사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이로 인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내홍 아닌 내홍'이 발생하기도 했다. 밀려드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해 한꺼번에 분향하는 인원을 100여 명씩으로 늘렸다가 격론이 벌어진 것.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관계자들과 상황점검회의 격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5시간 걸려서 봉하마을까지 와서 또 세시간 기다려서 분향소에 들어오는 15초 분향하고 돌아서는 게 말이 되냐"면서 "좀 더 기다리게 하더라도 충분한 분향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역설했다.
상주 역할을 수행하던 다른 고위관계자들도 "맞다. 조문객들하고 눈이라도 맞추고 악수라도 해야되는데 너무 시간이 짧아 죄송스럽다"고 맞장구쳤다.
이같은 현상은 실의에 빠진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에게도 힘이 되고 있다. 27일 오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명숙 공동장의위원장은 "어제 권양숙 여사께서 '분향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두 손 모아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권 여사의 직접 발언이 전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7일 새벽에는 노 전 대통령의 딸인 정연 씨와 사위 곽상언 변호사도 상주 역할을 수행했다.
건호 씨가 간간이 상주 자리에 서서 문상객들을 맞이하지만 정연 씨 부부가 일반인 대상 분향소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족들은 초췌한 모습이지만 표정은 한층 밝아진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너희 아버지 잘 못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오라고 그랬다"고 말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사실 월요일이면 추모 인파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 걱정되는 측면도 있었는데 이제는 감당을 못해서 걱정이다"고 말했다.
거대한 모자이크 같은 조문행렬
폭발적 조문 행렬을 단순히 설명하긴 어려워 보인다. 장례 초반에는 장년층이 많았다. 하지만 25일 밤부터는 청장년층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조문은 주로 저녁 퇴근 시간 이후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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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이후'가 큰 과제
한 관계자는 "장례야 그렇다 치고 영결식 이후를 어떻게 감당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유고집 발간, 추모재단 설립 등을 통해 민주주의 확대, 지역주의 혁파 등 고인의 유지나 다름없는 의제들을 확산시키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정치와 떼놓을 수 없다.
거대한 추모열기가 '제2촛불'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현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편승'하려는 세력이 생길수도 있다. 노 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나 정치 이념적으로나 별다른 인연이 없던 정치인이 팔뚝에 상장(喪章)을 차고 상주자리에 서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관계자들은 "말릴 수야 있겠느냐"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초상 끝나고 나서 형제들 간에 유산 싸움하는 일이 생길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영결식 이후'는 노 전 대통령 유족이나 측근들에게만 남겨진 숙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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