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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참 따뜻했던 사람' 박종태가 원했던 것은?

그의 죽음으로 전면에 떠오른 특수고용노동자 문제

하나 같이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처음 나왔다. 그를 안 지 고작 3개월밖에 안 됐다는 사람도, 그를 5년 넘게 지켜봐 왔다는 사람도 '고인은 어떤 사람이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첫 대답은 똑같았다.

"얼굴이 일단 웃는 스타일이잖아요. 인상 쓰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어요."

저 세상으로 간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1지회장에 대해 대한통운 택배 기사 김해룡(39)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3월 대한통운과 처음 문제가 생기면서부터 그를 자주 보게 됐다니, 가까이 지낸 시간은 기껏해야 두 달 남짓이었다.

고 박종태 씨가 지난해부터 1지회장을 맡아 왔지만 광주에서는 대한통운과 그간 별다른 마찰조차 없었기에 김 씨는 "그를 잘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기억하는 박 씨는 늘 "좋은 말만 많이 해주는 정 많은 사람"이었다.

1지회의 분회장 일을 하면서 그와 함께 노조 활동을 했던 조상현(50) 씨도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그를 회고했다. 다소 거칠 법도 한 화물연대 분위기와 달리 "온순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인상 쓰는 걸 본 적이 없다"…동료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했던 사람

굳이 노조 간부라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늘 웃는 인상을 가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키란 어렵지 않다. 먹고 사는 일만도 팍팍해 나이가 들수록 웃을 일이 많지 않다는데, 더구나 그는 그 어렵다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 작업장 울타리 안에서 조합원의 대부분이 일을 하는 평범한 노조와 달리, 각자 자기 차를 가지고 도로를 달리며 일을 하는 화물 기사의 특성상 조합원들을 만나기도 쉽지가 않다. 화물연대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회사가 많아 교섭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말 그대로 '투쟁'이다.

박 씨는 "조합원들이 일 끝나는 밤늦은 시간까지 기다려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아무개가 집에 무슨 일이 있다더라, 아무개는 요새 돈을 잘 못 번다더라'는 얘기가 들리면 모른 척 하지 않았다.

가끔은 노조 활동 때문에 부인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해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제가 1지회 일을 하면서 몸도 안 좋고 일도 바쁘고 해서 참 힘들었어요. 그때 박 지회장이 우리 집 사람에게 전화해서 이런 저런 얘기도 들어주고 부탁도 했다. '남편이 요즘 일이 너무 많고 힘드니까 가정에 잘 못해도 이해를 좀 해줘라'면서. 고맙게도…."

조상현 씨의 말이었다.

▲ 하루아침에 먹고 살 길을 잃어버린 대한통운 택배 기사 76명의 처지가 얼마나 그를 짓눌렀을까? ⓒ프레시안

그랬으니, 하루아침에 먹고 살 길을 잃어버린 대한통운 택배 기사 76명의 처지가 얼마나 그를 짓눌렀을까? 본인은 대한통운 기사도 아니었지만, 지회장으로 그가 느꼈을 책임감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말을 듣다 보니 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박 씨가 광주를 떠나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천막도 치고 농성도 하고 집회도 하면서 그는 또 한편으로는 그들 가족의 다친 마음이 걱정스러워 뭐라도 하고 싶어 했다. 그의 그런 마음은 대한통운 택배 기사가 아닌 1지회 다른 조합원들에게도 전해졌고, 박 씨의 제안에 따라 그들은 조금씩 푼돈을 모았다.

"1지회 조합원들 중에 대한통운 기사 아닌 사람도 몇 백 명 되요. 그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도 돈을 모아서 계약이 해지된 사람들 집에 찾아갔었죠. 계약해지로 끝난 게 아니라 회사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는 둥 겁을 많이 줬거든요. 그 가족들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그 마음을 위로라도 해주려고…. 박 지회장이 제안한 일이었어요."

두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아빠였고 아내에게는 살뜰한 남편

▲ 박종태 씨의 아내 하수진 씨. 지난 9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의 아내 하수진 씨가 읽어 내려간 편지 글은 남편으로서의 박종태 씨가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프레시안
그의 따뜻함은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노조 활동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열 살, 일곱 살 두 아이들에게는 참 다정한 아빠였고, 아내에게는 살뜰한 남편이었다. 본인의 생업인 25톤 화물차를 운전하느라, 지난해 지회장이 되기 전에도 몇 년 간 광주지부 사무부장을 했으니 노조 활동을 하느라 참 바빴다. 그 가운데도 그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최선을 다했다.

역시 일을 하는 아내가 퇴근이 늦어질 때면, 저녁 무렵 아이들을 노조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해 진 뒤 집에 아이들만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주 보는 아빠의 '동지'들을 잘 따랐다. 조 씨는 "아이들도 아빠를 닮아 참 온순하고 착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광주지부 조합원은 "밖에서 보기에도 아내와도 관계가 참 애틋했다"고 말했다. 일찍 집에 들어가지는 못해도 아내와 서로 작은 쪽지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다정하게 지냈다는 것. 지난 9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의 아내 하수진 씨가 읽어 내려간 편지 글은 남편으로서의 박종태 씨가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한수진 씨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글 전문 보기)

매번 투쟁이다 회의다 늦게 들어오던 남편이 아무 상의도 없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 미운 마음이 가득할 법도 한 데도, 한 씨는 그의 죽음 직후 "그래도 남편이 추억을 남기고 가 줘서 고맙다"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이런 그의 자상함은 다른 노조 간부들에게도 전해졌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다른 간부들의 식구들과 다 같이 소풍을 가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소풍을 가면서도 박종태 지회장은 꼭 무슨 유적지에 가자고 그랬었어요. 동학농민항쟁 유적지 그런데 있잖아요? 사실 화물 기사들이 휴일도 일정하지 않고 그래도 시간만 나면 아이들 데리고 같이 다니면서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죠."

"자기 일도 아닌데 정말 왜 그랬을까…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 운송료 30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76명에 대한 집단 계약 해지가 박 지회장에게 엄청난 무게가 됐으리라는 얘기였다. 더구나 대한통운과의 싸움을 본인이 이끌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프레시안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참 긍정적인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1지회의 한 조합원은 "사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면서도 "그래도 대한통운과 싸움을 하면서 본 박종태는 늘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했던 그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체 왜일까? 5년 동안 대한통운과 계약을 맺고 일했던 김해룡 씨는 그의 죽음을 두고 "정말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자기 일도 아니잖아요. 자기 일이라고 해도 나라면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지만, 우리끼리도 '지회장이 왜 그랬을까' 얘기를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자기 일도 아닌데….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요."

조상현 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봤다. 조 씨는 "화물 기사에게 계약해지란 밥줄이 끊기는 거니까"라고 답했다. "화물연대는 원래 누구 하나라도 계약이 해지되거나 해서 생계가 막막해지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편"이라는 말도 뒤따랐다.

운송료 30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76명에 대한 집단 계약 해지가 박 지회장에게 엄청난 무게가 됐으리라는 얘기였다. 더구나 대한통운과의 싸움을 본인이 이끌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또 누군가가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특수고용 노동자가 처한 구조적 문제도 그의 선택에 또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프레시안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는 사실 '특별하게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이런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특수고용 노동자가 처한 구조적 문제도 그의 선택에 또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 개인 사업자라는 명분으로 4대 보험과 같은 사회적 보호마저 누릴 수 없는 이들. 오랜 시간 그들의 문제가 노동계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지며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세상의 변화는 너무 더뎠다.

오히려 현 정부 들어서서는 그간 자유롭게 활동했던 화물연대마저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며 압박해 왔다. 그의 말대로, 76명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지만 법적으로는 '해고'가 아니라 단지 '계약이 해지된 것'일 뿐이었다.

게다가 세상은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익숙하지 않은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개인 사업자와 노동자가 뭐가 다른지, 평범한 사람은 쉽게 알기 어려운 노동 교육의 부재 탓인지도 몰랐다.

그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김해룡 씨는 "사실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은 투쟁의 '투'자로 잘 몰랐다"며 "우리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질지도 몰랐고, 이렇게까지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종태 씨의 죽음으로 대한통운 문제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문제가 다시 노동계의 중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뒤늦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11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등을 보장하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입법 발의했다. 화물연대는 오는 16일 총파업과 관련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김 씨는 "화물연대 총파업 전에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총파업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또 희생되는 거잖아요. 집회에 나오는 것도 화물 기사들은 자기 일 못하고 나오는 건데. 또 누군가가 우리 문제로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을 들으며 박종태 씨가 남긴 유서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습니다."

▲ 뒤늦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11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등을 보장하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입법 발의했다. 화물연대는 오는 16일 총파업과 관련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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