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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으로 교사·학생 때려잡는다? 오바마가 안다면…"

[인터뷰]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

다시 교육이 화제의 중심이다.

지난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지역별 성적이 16년 만에 최초로 공개됐다. 비록 시·군·구 지역으로 범위가 한정됐지만 파장의 수준은 공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조차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 당국은 공개 확대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 사실상 고교 평준화 해체의 길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편, 꼭 1년 전인 지난해 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그간 일선 학교에 내려졌던 각종 지침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학교 자율화 조치'였다.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 금지 조항이 폐기됐고, 사설 모의고사와 수준별 이동 수업 편성이 대폭 허용됐다.

1년을 주기로 교육 지형을 흔들 조치가 속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지난해 일제고사 부활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표방한 자율과 다양성이라는 구호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원칙은 이미 온데간데 없어 보인다. 이러다간 학업에 치여 '50년은 더 산 것 같다'는 말을 남긴채 몸을 던지는 초등학생이 또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8일 주민 직선으로 치러진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MB식 교육 반대'를 내건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현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내건 교육감 후보로서는 최초다. 교육계에서는 비록 1년2개월이라는 짧은 임기이지만, 지역 차원에서 변화의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한 계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 걱정과 기대감을 함께 가지고 바라보는 이가 있다. 바로 유인종 건국대 석좌교수(77·전 서울시교육감)다. 유인종 교수는 공정택 현 서울시교육감에 앞서 8년 동안 교육감을 역임했다. 최근 공정택 교육감과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논란의 도마에 오르면서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반대하고 수행평가를 강조했던 그의 교육 정책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인종 교수는 최근 두 달여 간 미국에 다녀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 사회와 미국 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평생 교육학자와 교육 공무원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지금 미국에서 생기고 있는 변화는 놓칠 수 없는 '연구 주제'였다.

지난 13일, 서울 을지로의 한 사무실에서 약 1주일 전 귀국해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유인종 교수를 만났다. 하루 7~8시간씩 차를 타야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노교수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그 동안 두 가지에서 교육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하나는 경기도교육감 선거, 다른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그가 제시하는 교육 정책이었다.

▲ 유인종 건국대 석좌교수(전 서울시교육감)은 두 가지에서 교육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하나는 경기도교육감 선거, 다른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그가 제시하는 교육 정책이었다. ⓒ프레시안

"자치에 뿌리 둔 미국 교육…연방정부가 준다는 돈도 싫다고 거절"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잘 아는 것 같지만 너무 모른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다양한 사회인데, 특히 학교 제도와 교육은 주 마다 다르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도자층에 있는 이들도 한쪽에 가서 공부하고, 아주 부분만 보고 와서 이게 미국이라고 오해를 한다. 언론도 엉터리로 쓴다."

유인종 교수의 전공은 비교교육학이다. 그가 한국 교육을 비평할 때 종종 풍부한 외국의 사례를 들어 비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 "한국에서 많이 아는 척 하면서도 모르는 게 미국"이라며 한국에서 늘 '선진 사례'로 이야기하는 미국 교육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교육부터 자치를 시작했다. 교육의 책임이 기본적으로 각 주 정부에 있고, 교육 예산도 연방정부 배당이 아닌 주에서 걷는 재산세로 상당 부분 운영된다. 미국 연방정부에 교육부가 생긴 게 1979년이 되어서다. 그렇지만 여전히 중앙 정부는 교육 정책에 책임이 없다. 교육부가 하는 일은 통계와 지원, 그리고 연구뿐이다."

강한 자치 문화에 뿌리를 둔 미국 교육은 오바마 정부에서도 여전하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부양책에 배정한 예산 8000억 달러 중 1000억 달러를 교육 안정 기금으로 배정했다. 전년도 교육 예산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유인종 교수는 "그런데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텍사스 주에서는 이 기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며 "이들 주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논란이 계속되는 일제고사를 실시하는 근거 중 하나로 미국을 들고 있다. 지난 3월 청와대가 특별 제작해 배포한 책자에는 미국의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NCLB) 정책을 예로 들며 미국 역시 매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고사를 실시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 교수는 또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꾸 NCLB를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면 다 밀어붙이는 줄 아는데, 일제고사 실시 여부는 주에 따라 다 다르다.

게다가 조건이 있다. 우선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성적을 공개하는 담당 직원은 형사 처벌을 받는다. 어디까지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체검사나 아이큐검사 하지 않겠다는 것은 학부모의 권한이다. 그걸 일률적으로 하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다르다."

"오바마가 한국 사교육을 칭찬했다? 요지는 반대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교육을 한국처럼 해야 한다"고 했던 내용을 보수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유 교수는 "이것 역시 한국에서 미국을 얼마나 모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때 교육에 대해서 강조한 첫 번째는 교육의 격차 해소였다. 미국은 빈부 격차도 있지만 소수 민족이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너무 교육 중퇴자가 많다며 세계에서 대학 졸업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다. 바로 그때 이 문제에는 학부모와 학생 본인 책임도 크다며 대학 진학 비율이 높은 한국의 예를 든 것이다. 사교육을 말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것을 자꾸 악용을 하더라.

또 학교에서 방과후 활동을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부모의 일을 도우라는 뜻으로 고등학생을 가장 일찍 하교시킨다. 그들에게 각종 활동(activity) 수업의 기회를 더 주라는 뜻이다. 우리처럼 방과후 학교를 입시 공부로 변형해 실시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유 교수는 최근 미국의 입학사정관 회의의 결과를 인용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국내에서 얼마나 왜곡됐는지 한번 더 지적했다. 그는 "몇달 전 미국의 전국입학사정관회의에서 SAT(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를 많이 반영하지 말라는 권고가 나왔다"며 "자꾸 학생들이 과외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특히 동양계 학생들 가운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며 "미국 유수 대학을 다니던 우리나라 학생 44%가 중퇴하는 현상 등이 입학사정관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를 적이 아닌 우군으로 봐야 공교육이 산다"

유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가운데 무엇보다도 경기부양 예산 중 1000억 달러를 교육 안정 기금으로 지정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지원을 통한 격차 해소다. 유사한 사례를 영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에서 IMF를 맞았던 당시 교원 봉급을 우선적으로 올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 정부 경기부양책에 교육 예산이 배정돼 있나. 오히려 교육세를 폐지한다고 하고, 예산을 동결하면서 상담 교사, 사서 교사 예산도 깎고 있지 않나."

유 교수는 특히 오바마의 교육 정책이 교원을 '적'이 아닌 '우군'으로 보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이는 부시 행정부의 NCLB 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하다. 교육의 안정과 발전은 교사의 협력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교원의 관료주의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를 지원을 통해 해결하느냐, 적대시하느냐의 차이다. 핵심은 교원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아이를 다룰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시험으로 교원과 학생을 때려잡는 것은 정말 비교육적인 정책이다. 자꾸 꼴지를 만들면 안 된다. 어느 나라든 교육에서 경쟁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학 이상에서 한다. 초중등학교 평가를 선다형에서 에세이로 바꾸고, 학생의 평가권을 교사에게 전적으로 줘야 한다. 그래야 창의력이 나오고 표현력이 나온다."


유 교수의 지적을 최근 일제고사 사태에 대입해 보면 한국의 현실은 '교육의 발전'과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일제고사에서 1만6000건의 성적 오류가 발견되자 교과부는 초등학생까지 OMR카드로 시험을 보게 하고, 채점은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사들이 손으로 채점한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자꾸 교원의 입지가 없어지니까 사교육으로 빠지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외국에서 교원에 대한 대우가 좋고, 권위가 있는 이유는 바로 시험에서 선다형을 없앴기 때문"이라며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등은 전부 국가의 대학 입학 시험이지만 학교와 교사에 권한을 일임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고사에서 임실 사례가 나왔지만 그것은 정말 새발의 피"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간 문제는 계속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 "시험으로 교원과 학생을 때려잡는 것은 정말 비교육적인 정책이다. 자꾸 꼴지를 만들면 안 된다." 유인종 교수의 지적과는 달리 한국 교육은 선다형 시험을 더 강조하고 교사의 채점권을 빼앗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3월 일제고사(기초 학력 진단평가)를 치르고 있는 초등학생들. ⓒ뉴시스

"경기도교육감 선거는 '사필귀정'…소통과 정도가 핵심"

미국에서도 한국의 뉴스를 꼼꼼히 챙겨봤다는 유인종 교수. 경기도교육감 선거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즉시 "사필귀정"이라고 답했다.

"비록 투표율은 12%가 나왔지만 민의가 어느 정도는 반영됐다고 본다. 사람들도 교육 현실을 조금 더 경험을 더 하지 않았나. 시험을 여러 번 치고. 여러가지로 판단해야 겠지만 아이들을 구한다는 입장에서는 필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는 김상곤 후보의 당선이 지역 교육감의 지형에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대 출신이 담합해서 교육감을 미는 구조 속에서 다들 관료주의적 행태로 위의 지시가 내려오면 한술 더 뜬다"며 "그런 의미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당선은 어떤 의미에서든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년2개월이라는 임기가 새 교육감이 변화를 이루기에는 짧지 않을까? 교육계에 만연한 관료주의 극복도 만만찮은 과제다. 그러나 유 교수는 "소통을 해가면서 하면 된다"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나도 대학교수 출신이어서 초·중등 교육을 모른다고 걱정들 했다. 그렇지만 안 망하고 잘 되지 않았나. 나도 전교조와 많이 싸웠지만 그러면서도 소통을 했다. 이제 그 친구들이 내게 할아버지, 할아버지 한다.

공무원들과 싸운 것? 말할 것도 없다. 고등학교 연합고시 없앨 때의 일인데, 전 교육감이 그렇게 결정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다 이뤄진 상태였는데, 다음해 대선이 있다면서 '1년만 참아달라'고 중앙 정부에서 사정을 하더라. 나중에는 압력으로 왔다.

청와대와 교육부에서 그러니까 처음에는 담당 국장이 좀 들어주자고 하고, 장학관, 담당 과장이 줄줄이 들어주자고 하더라. 정치적 압력을 이겨내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 정책을 장기적으로 봐야지, 대체 1년만 참아달라는게 말이 되나. 결국 나 혼자 결정하겠다고 하고 추진했다. 소문이 '늙은이가 제일 리버럴하다'고 나더라. 나는 정도(正道)를 간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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