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대중 가수 1호인 서태지는 부모가 싫어하는 모든 음악을 전파하면서 학교, 부모 등 기성세대를 공격하고 조롱했다. 한마디로 근대 한국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까지도 재구성한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2000년 컴백하며 닉스와 단 3개월간의 광고 모델료로 8억 원, 프로스펙스와 1년간 15억 원, 그리고 KTF와 (그의 곡 음원을 포함해) 32억 원이라는 초대형 광고 계약을 맺은,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히트곡 하나 없지만 음악보다는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듯하다. 마침 요즘 그가 '실종' 됐다는 뉴스를 봤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것도 서태지는 '가출'이라 칭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의식 있는 가수'로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윤도현은 광고 모델 수입 총액에서는 서태지에 뒤질지 모르겠으나 더 다채로운(?) 회사들과 광고 계약을 맺었다. 사실 월드컵 이전엔 대중적 인기가 미약했던 그는 2002 월드컵으로 대박을 터뜨린 이후 그의 이미지가 너무 월드컵으로 굳어지자 '월드컵 가수'로 기억되는 것이 거부한다며 모든 관련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이후 방송 진행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했는데, 언론을 통해 '인권' 이야기도 하고 '미국' 이야기, '반전' 이야기도 하면서 그의 이미지를 진보로 잡았다. 그러나 매우 '상업스런' 포즈와 목소리로 진보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는 기업 광고에도 나서더니 급기야 2006 월드컵 시즌이 임박하자 다시 재벌기업의 월드컵 광고에 발빠르게 참여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기억력은 유효기간이 채 4년이 안 됐던 것이다.
연예인은 과연 '개인'일 뿐인가
아무래도 대본을 따라야 하는 배우보다 가수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가사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인기를 얻은 후에 언론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첫째, 자신의 대중적 인기가 활용(?)된, 둘째, '사회적' 발언인 경우라면 연예인 개인이 아닌 공인의 발언이 된다. 당연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는 연예인이 결혼하면서 "팬 여러분~ 저희 열심히 살게요~" 했다가 얼마 후 친구로 남기로 했다며 이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연예인도 사람이다 보니 말과 행동이 다를 수도 있고 자신의 언행이 불일치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그에 대한 '책임'까지는 따지기 애매하더라도 그로 인한 사회적 비난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업이나 아파트 광고 등 최근 연예인의 광고 출연이 문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자신의 돈 벌 권리다, 선택의 자유다, 별 걸 가지고 시비다 하면서 문제 제기 하는 이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서 억울해 하고, 분해 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광고 찍는 자유가 있는 만큼 팬과 대중도 그 광고를 보고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 연예인들은 가족끼리만 돌려 보려고 그 광고 찍었나? 우리 보라고 찍은 것 아닌가. 우리 보라고 찍은 광고를 우리가 보고 비판 하는데 그 어디에 문제가 있나. 그리고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광고 출연료는 (광고주를 한 번 거칠 뿐) 몽땅 소비자가 지불하는 것이다.
신해철의 '자가당착 퍼포먼스'
▲ 가수 신해철 씨가 최근 한 입시학원 광고 모델로 등장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프레시안 |
그런 그가 그의 별명만큼이나 매우 마왕스러운, 매우 강렬한 표정으로 특목고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 매우 '학원스러운' 문구들과 뒤범벅이 되어 특목고 가는 지름길이 바로 이 학원에 있음을 가르치려 든다. 이것이 과연 블랙코미디인가, 아니면 가상현실인가. 쇼 같기도 한데 신해철은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칭한다니 그렇다면 '퍼포먼스'인가.
광고에 등장하는 문구다. '독설보다 날카로운 신해철의 입시성공 전략.' 그가 제시하는 결론은 물론 특목고 입시 학원이다. 또 다른 문구다. '도대체 왜, 학습 목표와 학습 방법이 자녀에게 딱 맞는지 확인하지 않습니까.' 이게 대안학교 광고 문구라면 딱 어울리겠다.
한낱(?) 광고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도 오랜만인 듯하다. 그래도 신해철 정도(?)면 뭔가 있지 않을까? 혹시 우리가 쉽게 알아 챌 수 없는, 그렇지만 결국엔 우리 가슴을 뻥 뚤리게 하는 통렬한 풍자가 숨어 있지나 않을까? 아니었다. 비틀어도 보고, 뒤집어도 봤지만 신해철이 평소 주장했던 주장과 그의 광고 출연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맺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광고 논란이 일자 지난 주 진중권 교수가 알듯 모를듯 신해철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어느 게시판에 남기더니 월요일엔 개그맨 박준형이 "광고는 광고일 뿐, 신해철에게 왜 투정하나?"라는 글로 신해철 비판을 나무란다. 그간 꽤 존경해 왔던 진 교수에겐 살짝 실망감이, 박준형에겐 답답함이 느껴진다.
신해철이 권하는 성공 전략은 특목고?
신해철의 특목고 입시 전문 학원 광고 출연은 자기모순이자 경거망동이다. 사실 완전한 헛발질이었다. 자기 꾀에 넘어간 듯하다. 그는 자신의 판단과 소신을 맹신했고 과신했다. '마왕'의 추종자들만큼은 '그 역설적이고 동시에 통렬한 풍자'에 탄복하며 따를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논란이 시작되자 그는 정면으로 맞불을 놓는다. 그 스스로 논란을 키울 정도로 그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광고대박 감사합니다"라는 참으로 얄미운 제목의 글에서 "예상대로 반응이 불을 뿜는다"며 "명박 형님께서 사교육 시장에 에너지를 팍팍 넣어주신 결과, 엉뚱하게도 제가 득템~~~ 각하께서 주신 용돈 잘 쓰겠습니다"라고 썼다.
학원 광고를 찍기로 한 자신의 상업적 판단을 '명박 형님' 탓에 마치 '본의 아니게' 얻게 된 것처럼 포장하는 용감함도 대단하지만 아마도 수억 원에 이를 광고 출연료를 '용돈'이라 칭하는 그의 배포는 참으로 어이없다. 또 나아가 "이번 광고 출연은 평소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의 연장이며, 평소의 내 교육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없다"고 해명했는데 이는 그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자만을 넘어 오만으로, 그리고 자가당착을 넘어 횡설수설로 연결됐음을 보여준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광고에 출연해서가 아니다. 박준형처럼 그를 옹호하려는 이들도 잘 알아뒀으면 한다. 신해철 같은 연예인이 광고 출연하는 것은 가수가 콘서트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가 라면 광고, 아이스크림 광고에 나왔다면 누가 뭐랬을까. 장갑 광고, 샴푸 광고, 선글라스 광고, 화장품 광고 아니면 남성용 블라우스(?) 광고도 어울릴 것이다. 광고 마다할 것 없다.
교육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가
문제는 그가 이제까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했다는 점인데 특히 그의 발언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교(敎)와 육(育), 즉 '교육'에 관한 것들이었다. 특히 자신이 DJ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교육'에 대한 일관되고도 격한 발언들을 해왔음에도 광고 한방으로 자신의 이제까지의 발언과 주장들을 우스개로 만들어 버렸다. 신해철은 교육 가지고 그렇게 장난 쳐도 되나. 나아가 그의 광고 행위는 이제까지 신해철의 발언에 동의와 지지를 보낸 대중, 그리고 그를 열렬하게 응원한 청소년들에 대한 배신이다, 배신.
무엇보다 그는 상업자본주의, 특히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의 미래를 담보로 가장 저급하고도 비열하게 돈벌이를 하는 입시 학원 상업주의의 품에 안겼다. 그 뿐 아니라 청소년 학대와 소외, 그리고 계급 차별을 조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병적인 분야의 광고 모델로 등장해서 스스로 학력 차별을 선동한 꼴이다.
신해철은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고생한다는 것만 알았지 그 이상의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싶다. 아니라면 그 자신 명문대를 나온 탓에 세상을 아직 반쪽 밖에 모르는 것일까. 그는 그 학원의 학원비가 얼만지나 알고 광고 찍었을까. 그는 그 학원 건물이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있는 집 자식'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몰랐었나. 평소 입시 교육을 그렇게 비판하면서도 특목고 입시 학원이 우리 사회 계급 재생산과 사회 양극화의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나.
▲ "신해철이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는 뉴스 말이다. 그것도 특목고 전문 학원 광고 모델이었다. 평소 한국 사회의 입시 정책과 사교육을 가장 격렬하게, 물불과 장소 안 가리고 공격했던 신해철이었다." ⓒMBC |
계급 재생산과 사회 양극화의 선봉에 선 신해철
하나 더.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고교 계급의 지각 변동에 신해철은 확실하게 기여했다. 지금은 이른바 명문고교의 전교 1등도 원하는 대학과 학과 입학을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명문대 진학을 보장하는 것은 이제 특목고 뿐이다. 신해철은 이제 명문고 위에 특목고 있다는 사실과 특목고만이 성공의 열쇠라는 공식을 자신의 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신해철은 결국 차별 사회를 조장하는 교육 계급화, 입시 계급화, 학원 서열화의 선봉에 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신해철이 비난 받아 마땅한 이유 말이다. 박준형은 조선일보사가 만든다는 대중문화 웹진에 기고한 칼럼에서 "개그는 개그일 뿐인 것처럼 광고는 광고일 뿐"이라며 "투사도, 정치인도, 논객도 아닌 뮤지션 신해철에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했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입시 학원은 왜 신해철을 광고 모델로 낙점해 단발광고도 아니고 아마도 수억 원의 거액이 들어갈 1년 계약을 맺었을까. 신해철이 히트곡 제조기라서? 인기 최고의 가수라서? 한류열풍의 주인공이라서?
아니다. 그 학원은 흘러간 대학생밴드 '무한궤도'에서 활동하던 신해철이나, 요즘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대중적인 히트곡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중·고생들은 전혀 열광하지 않는 '넥스트'에서 음악 하던 신해철을 원한 게 아니다. 지금 신해철을 비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신해철의 노래 중 히트곡이 뭔지도 모른다.
결국 교육 장사 하려고 교육 비판 했나
신해철이 거액의 광고 모델이 된 이유는 그가 가수라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그가 내뱉었던 사회적 발언들, 특히 우리 사회 왜곡된 입시 교육을 맹공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그 입시 학원은 가수 신해철이 아니라 사회적 발언을 했던 신해철의 정체성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다. 이걸 뒤집어서 이야기해 보겠다. 신해철은 자신의 이제까지의 사회적 발언을 통해 돈을 번 것이다. '교육 팔아' 돈을 번 것이다. 결국은 '교육 장사' 한 것이다.
박준형은 "신해철에게 왜 투정하나"라며 신해철 비판자들을 비판했는데 그게 '투정'으로 비쳤다면 박준형은 자신의 눈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신해철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예민한 쟁점인 교육 문제 가지고 자신의 이미지를 쌓으며 몸값을 올리다가 이를 일거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 그의 말마따나 '광고 대박'의 행운을 챙겼다. 이는 교육을 자신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비판 뿐 아니라 비난도 마땅하다.
신해철이 얄미운 이유 또 하나가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시끄럽게 그러느냐 하는데 신해철은 그의 홈페이지 글에 "예상대로 반응이 불을 뿜는다"고 스스로 썼듯 그의 광고가 시끄러워질 줄, 광고 대박으로 연결될 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학원 관계자도 "어느 정도 논란은 예상했지만…"이라고 했다. 학원 측은 학생 수가 늘지도 않았고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죽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결론은? 광고 중단? 천만에! 광고는 계속 나간단다. 그들은 신해철의 자기모순과 언행 불일치로 인해 일어날 논란까지 모두 계산한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지금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신해철은 그 학원 홈페이지에서 "특목고에서 명문대까지 합격의 맞춤전략을 제시한다"며 '2009년 특목고 총 980명 합격'을 손수 내걸고 잔뜩 연출된 표정과 격렬한 몸짓으로 광고에 전력하고 있다.
청소년과 미래와 희망을 배신한 사람
그는 논란이 되자 개인 홈페이지에 "CF 역시 아티스트에겐 표현의 일종"이라면서 "착각하시는 분들은 다음 글을 읽어보세요. 며칠 내로 시간 나면 올리죠"라며 후속 해명글을 예고했다. 그러나 열흘이 넘도록 시간이 나질 않는지 그의 글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사실 그가 같은 글에 "길게 쓰긴 귀찮고…"라고 쓴 것을 보면 할 이야기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좀 귀찮더라도 한번 써 보기 바란다. 길게. 도대체 '아티스트'로서 뭘 '표현' 하려 했는지 말이다.
그는 팬과 대중과 청소년과 희망을 배신했다. 이제 우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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