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용산 학살에 대해
황규관
죽음에게는 죽음에 합당한 예가 있어야 한다
맞아 죽었건 빠져 죽었건 가장 행복하게
지난 시간을 한 번 더 꿈꾸다 죽었건
죽음에게는 죽음에 합당한
산 자의 예의가 보태져야 한다
그게 애통이든 극락왕생에 대한 기원이든
차라리 잘 가셨네, 하는 체념이든
죽음에 대한 예의가 곧 산 자의 삶이다
그런데 이제 죽음도 장사가 되고 정치가 되고
타락한 언어의 진지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것도 죽음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삶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사람들을 아예 밀어 죽이고도
태워 죽이고도 패 죽이고도 법을 말하고 사회를 말하고
국가의 안녕을 운운하는, 산 자의 안전을 들먹이는
죽어 핏기 하나 없는 웃음들이 희번득이고 있다
권력의 이름으로
법률의 이름으로
경제의 이름으로
지성의 이름으로
죽음에 합당치 못한 무례가 넘쳐나고 있다
죽음에게는 먼저 예의를 차리는
산 자의 염치와 겸손이 있어야 하는데
죽인 자의 자책과 통곡이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께 혼나는 아들의 눈물바람이 있어야 하는데
1968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철산동 우체국>(내일을여는책 펴냄), <물은 제 길을 간다>(갈무리 펴냄), <패배는 나의 힘>(창비 펴냄) 등의 시집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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