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모든 게 이명박 대통령 때문인 것 같다. 역전된 환율과 주가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몰락도, 10년 전으로 돌아간 남북관계도, 검찰과 경찰이 표독하게 공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국회에서 벌어진 혹은 앞으로 벌어질 활극도, 인터넷에 글을 쓰면서 자기검열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심지어 기승을 부리는 추위까지도.
불과 1년전까지 널리 유통됐던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는 국민정서가 고스란히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전된 느낌이다. 마치 노무현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대안이 이명박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몹시 역설적이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파탄과 경제위기에 있어 어떤 부분은 전적인, 또 다른 부분은 많은 책임이 있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강력한 대통령제를 정부형태로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국정파탄과 경제위기의 최대, 그리고 최종 책임자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규정된 조건이다.
그러나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는 과점신문들이 창안한 것으로 보이는 프레임에 갇힌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이 이명박 대통령으로 귀결됐듯이, 그래서 한국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의 헌법적 제 권리들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사회적 처지가 더 곤궁하게 된 것처럼,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라는 주술은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 현재 혹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거나 벌어질 모든 불행의 원인과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촛불 정국 이후에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에서 비롯된 문제 뿐 아니라 개인들의 일상사에서 흔히 벌어지는 비련애사조차도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이중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대통령 개인의 권한과 책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대통령만 바꾸면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 것으로 국민들이 오판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히틀러가 없었다고 나치가 집권하지 못하거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모든 게 이명박 탓"이 바람직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야당과 시민사회가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국가발전 및 사회개혁 철학과 정책의 생산을 등한히 하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기대 훗날을 도모하려는 생각을 굳힐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가벼이 취급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준열하게 비판하고 추궁해야 한다. 다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결코 안된다는 말이다. 단언컨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기대 정치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생각은 사행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사회 주류(main stream)의 적자(嫡子)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매우 협소하고 위태롭게 부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매우 독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퍼스낼리티의 소유자인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다보면 자칫 한국사회 전 부면을 장악하고 있는 재벌-과점신문-한나라당-고위관료-종교권력의 '신성동맹'의 존재와 힘을 간과하기 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성동맹'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영구집권을 위해 주판알을 열심히 튕기고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라진다고 해도 '신성동맹'은 건재하며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을 어렵지 않게 간택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라지고 난 후 사람들의 눈 앞에는 '신성동맹'이 쌓은 견고한 성이 펼쳐질 것이다.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는 진지전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람시의 진단처럼 한국사회에서도 기동전의 시대는 적어도 당분간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정당과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호흡을 길게 하면서 묵묵히 각자의 영역에서 진지를 쌓아야 한다. 이들이 구축한 진지의 높이와 길이와 견고함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라는 말은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겠다. 말로 진지를 쌓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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