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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상위 0.1%'라면 차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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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네르바가 '상위 0.1%'라면 차라리…"

[화제의 책]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

알고 보니 '미네르바'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상위 0.1%' 엘리트도 아니었고, 이른바 명문 학벌을 지닌 사람도 아니었다. 적어도 검찰 발표만 놓고 보면, 그렇다.

이런 이력을 놓고, 어떤 이들은 실망스러워한다. 다른 어떤 이들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미네르바'와 그에게 열광한 누리꾼들을 싸잡아 조롱한다.

"미네르바, 평범해서 더 불안하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평범했기에 더 두렵다. 그가 글을 쓴 것은 우연이었을 게다. 평소 공부한 지식을 발휘하고 싶은 소박한 동기였을 게다. 그런데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리고 잡혀갔다.

차라리 과거 알려진 것처럼 '미네르바'가 대단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덜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학교를 나와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제2의 미네르바'가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혼자 공부한 지식, 인터넷에 풀어놓기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아주 평범한 누군가가 틈틈이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쓴 글이 우연히 유명해진다면? 그땐 두려워진다. 그 글에 정부를 불쾌하게 만들 내용이 담겨있다면 말이다.

평소 토목이나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지식을 쌓아왔던 누군가가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강 정비사업'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알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썼는데, 그게 정부에 비판적인 글이었다. 우연히 이 글이 유명해진다면, 그 역시 '제2의 미네르바'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지식이 사라진 인터넷에는 야한 사진만 남을 것

이렇게 되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 풀어놓으려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게 된다. 결국 온라인 공간은 선정적인 사진과 시시껄렁한 잡담으로만 채워지게 된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원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이런 분위기는 낯설지 않다. 가방끈 짧고 가난한 사람이 아는 게 너무 많으면, '빨갱이'로 몰릴까 조심해야 하던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다. 정부 정책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나 하면 안 되는 시절이다.

피붙이 가운데 월북한 사람이 있는 사람도, 공부가 너무 좋아서 정부가 읽지 말라는 책까지 챙겨 읽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들이 음담패설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정부 정책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였다.

똑똑해서 불안한 시대…1950년대 매카시 열풍

▲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
똑똑한 시민은 늘 불안에 떨어야 했던 시절은 우리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미국 사례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조셉 매카시 미국 상원의원이 '빨갱이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1950년대다.

당시를 다룬 소설이 최근 나왔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글을 꾸준히 써 왔던 작가 엘렉 레빈의 작품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이다. 제이미라는 열세 살 여자 아이가 1953년 여름과 가을 겪은 일을 다룬 소설이다.

제이미의 부모와 할머니는 차르가 통치하던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유대인인 이들 가족은 차르의 철권통치와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모두 혐오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가난한 노동자도 '세끼 식사'를 챙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인종이나 혈통 때문에 자유가 억압당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다.

"자판기 설치" 요구도 겁내는 대학생들

제이미의 아버지인 피트 모스 씨는 미국에서 수학 교사로 일한다. 그의 어머니는 라디오 방송 작가다. 아주 평범하게 지내는 가족이다. 물론, 특이한 점도 있다. 세상에 완벽하게 평범하기만 한 사람은 오히려 흔치 않은 법이다. 특이한 점을 꼽아보면 이렇다.

교사인 모스 씨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심이 남다르다는 것, 아파트 이웃집에 흑인 가족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 그리고 이런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서명을 조직했다는 것, 신문을 꼼꼼하게 읽는다는 것,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등.

평범하면서도 화목하게 지내던 이들 가족이 폭풍에 휘말린 것은 1953년 여름 어느 날 집으로 배달된 <뉴욕타임스>를 펼치면서부터다.

소련을 위해 간첩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로젠버그 부부가 전기의자에서 처형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다. 이 무렵, 매카시 의원의 '빨갱이 사냥'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자연과학 연구실에 음료수 자판기를 설치해달라는 청원서에도 서명하길 꺼렸다. 집단적인 요구에 대해 서명하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우연히 가입한 모임에 '빨갱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별 생각 없이 고른 책이 '불온서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던 시절이다.

'빨갱이 사냥'…해임된 교사, 왕따 당한 아이들

이런 분위기가 팽팽하던 여름날, <뉴욕타임스> 1면에 "좌익 교사 적발…위원회 대변인 발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런 내용이다.

"교육위원회 대변인에 따르면 익명의 제보자가 교육위원회에 출두해 피트 모스와 몰리 피시바인이 공산당원이라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모스 씨는 41세로 남부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대변인은 '모스 씨가 20년 가까이 그 학교에서 성실히 근무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좌익 교사에 대한 관대한 처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가 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신문에 "좌익 교사 해임"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또 얼마 뒤에는 "매카시, 공산주의자 색출 교사 청문회 임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던 제이미는 편집부에서 쫓겨났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제이미의 어머니 역시 광고주의 압박 때문에 방송국에서 해고됐다. 이웃들도 이들 가족에게 등을 돌렸다.

물론, 모스 씨 가족만 이런 곤경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제이미의 친구인 해리엇은 교수였던 아버지가 해고되면서 이사를 가야 했다. 진보 성향 신문을 갖고 있던 친구 브라이언 역시 다른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 신문사의 담당 교사도 아이들에게 한 이야기가 빌미가 돼 학교를 떠났다.

"처음엔 정치 이야기, 얼마 뒤엔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 조셉 매카시. ⓒU.S. Senate Historical Office
이 소설에는 열세 살 제이미의 눈에 비친 당시 상황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모스 씨는 실제로 공산당원 이었을까. 제이미의 외삼촌인 모리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제이미, 네가 태어나기 전인 1939년에 스탈린과 히틀러가 전쟁 협정에 서명했어. 네 아빠는 어떤 경우에도 히틀러와 한패가 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었지. 그래서 공산당을 떠난 거야."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모리 씨는 정의감에 충실했던 시민이었을 뿐이다. 하긴, 정의감이 유난스럽지 않더라도 유대인인 그가 히틀러를 증오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치를 떨던 수학 교사는 히틀러와 싸웠던 미국에서 '빨갱이'로 몰렸다. 그리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 소설을 쓴 엘렉 레빈은 매카시가 활개 치던 무렵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 없이 일자리와 가정을 잃었던" 당시에 대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또 "어떤 일에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애국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매도되었다"라고도 했다.

평범한 시민이 똑똑하면 위험한 시대, 언제쯤 끝날까

하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입을 꿰맸던 매카시의 시대는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군대와 정부까지 좌익으로 몰았던 그의 극단적 성향에 넌더리를 낸 미국 상원이 1954년 말 비난 결의를 했고 그는 곧 실각했다. 그리고 3년 뒤 죽었다.

'미네르바'가 잡혀가면서, 평범한 시민이 똑똑하면 위태로워지는 시대가 열렸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대가 5년 안에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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