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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맨'이 되고팠던 그가 다시 이랜드와 싸움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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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맨'이 되고팠던 그가 다시 이랜드와 싸움을 시작하다

510일 파업 후 다시 "反노조 이랜드"에 맞서는 해고자들

'이랜드맨' 18년차인 그는 진짜로 한때 '진정한 박성수맨'이 되고 싶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자기였단다.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에 대한 투철한 존경심으로 입사 6년 동안 일만 했다"고 했다.

1993년 만들어진 노조가 4년 동안이나 회사와 단체협약조차 체결하지 못해 끝내 1997년 파업을 준비할 때도, 그는 비록 노조 대의원이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파업을 반대한 2명 가운데 하나"였다.

▲ "억울합니다. 현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7일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다시 서울 신촌 이랜드 그룹 본사 앞에 섰다. ⓒ프레시안

그랬던 그가 199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무려 830일 동안 파업을 했다. 그의 세 번째 파업은 지난해 여름 거리로 쫓겨나는 '아줌마 비정규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의 마지막 파업에서 그는 해고됐다.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 농성 이후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이유였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아줌마 비정규직'은 지난해 삼성테스코와의 협상 타결로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7일 그는 다시 서울 신촌 이랜드 그룹 본사 앞에 섰다. 자신과 함께 해고된 6명의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한 싸움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다.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3년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830일을 싸우고 다시 이랜드 그룹에 맞서 1000일의 싸움을 시작하는 표면적 이유는 7명의 해고자의 복직이다. 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면 "노동조합을 사탄으로 여기는 이랜드로부터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눈물겨운 510일 파업"의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시간, 다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거리로 나온 그의 곁에는 이제는 홈플러스테스코노동조합 소속이 된 옛 '동지'들이 다른 조끼를 입고 같이 섰다.

▲ "눈물겨운 510일 파업"의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시간, 다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거리로 나온 그의 곁에는 이제는 홈플러스테스코노동조합 소속이 된 옛 '동지'들이 다른 조끼를 입고 같이 섰다.ⓒ프레시안

"이랜드 투쟁이 끝났다고? 아직 아니다"

많은 이들이 "다 끝났다"고 알고 있는 이랜드 투쟁은 사실 절반만 끝난 것이었다. 2001아울렛, 홈에버 등 이랜드 그룹이 소유하던 대형 유통업체 가운데 삼성테스코에 매각된 홈에버만 타결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랜드일반노조의 조합원은 47명이다. 이 가운데 무려 7명이 해고자다. 6명은 지난해 6월 시작한 파업으로 해고됐고, 또 다른 1명도 노동조합 활동 과정에서 회사 측과의 마찰을 이유로 2006년 해고됐다.

홈플러스노조는 사측과의 합의를 통해 '노조 간부 12명의 퇴사'라는 희생으로 조합원의 현장 복귀를 얻어냈지만, 노조가 분리되기 전 수석부위원장이었던 그와 홍윤경 사무국장 등 7명의 해고자는 회사 교섭대표 얼굴을 본 날이 까마득하다.

이날 '이랜드일반노조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만든 이들이 "이랜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다. 그리고 다시 이랜드 그룹을 향해 "비정규직 고용보장과 차별시정 요구를 내걸고 싸운 정당한 투쟁을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이들을 복직시켜라"고 촉구했다.

"쉬고 싶었다"던 그가 다시 신발 끈을 묶어 맨 이유는?

▲ 이랜드노조는 "창립 이래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고단한 역사"를 보냈다. 그 중 첫 파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단체협약조차 체결하지 못해 시작한 것이었고, 간신히 얻어낸 단체협약은 지난 2006년 9월 회사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지된 이후 아직도 '백지 상태'다.ⓒ프레시안
"사실 저는 안 싸우고 싶었어요. 조금 쉬고 싶기도 하고 다른 일도 하고 싶었고요. 아내도 이제는 돈 좀 벌어오라고 하고."


이남신 직무대행은 솔직했다.

"우리가 정당했다"지만 510일의 파업은 너무 길고 힘겨웠다. "노동조합은 사탄"이라고 여기는 이랜드 그룹과 대화로 복직이 될 가능성도 사실 거의 없다. 결국 해고무효소송으로 가야하는데 대법원까지 확정되려면 최소 3년이나 걸린다. 그동안 생계비도 대책이 없다. 게다가 그와 홍윤경 사무국장은 파업 과정에서 실형을 선고 받아 대법원에서도 승소할 확률이 낮다.

그런데 그가 다시 신발 끈을 묶어 맨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노조가 너무 어렵다.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 낸 노조를 이렇게 무너뜨릴 순 없다."

홈플러스노조와 분리한 이후 이랜드노조는 위원장조차 뽑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물론 해고자들이 있지만 "현장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한 해고자들이 지도부를 맡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조합원의 고충조차 제때 들을 수 없는 지도부가 무슨 힘이 있냐"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노동조합의 존폐 여부 자체가 위태로운 것이다.

더욱이 이랜드 그룹의 노사관계는 오래 전부터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지난 2007년 파업 이전에도 2000년에는 무려 265일, 1997년에는 57일의 파업을 했던 이랜드노조는 "창립 이래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고단한 역사"를 보냈다.

그 중 첫 파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단체협약조차 체결하지 못해 시작한 것이었고, 간신히 얻어낸 단체협약은 지난 2006년 9월 회사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지된 이후 아직도 '백지 상태'다. 지난해 '이랜드 사태'가 터진 이후 노동조합을 사탄에 비유해 물의를 빚기도 했던 박성수 회장의 "시대착오적인 노사관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파행의 책임은 한쪽에만 있지 않다"…남은 것은 다시 이랜드 그룹의 선택

▲ 이들은 "15년 동안 파행으로 시종했던 노사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남은 것은 다시 이랜드 그룹의 선택이다. ⓒ프레시안
게다가 올해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가운데서 이랜드 노동자의 생존권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미 지난 외환위기 때 1800여 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나앉은 경험은 이런 불안감을 더한다.

"외환위기 때 바로 여기 본사 5층 노조 사무실에서 상근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참 많은 직원들이 노조를 찾아 왔다. '우리 좀 살려 달라'면서…. 그런데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조합원의 고용만 지켜냈다. 그때 참 마음이 아팠다."

10년 전보다 더하다는 이번 경제 위기, 노조가 없으면 대체 이랜드 그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복직 투쟁이 곧 "민주노조 사수 투쟁"이면서 동시에 "이랜드 노동자의 고용안정 투쟁"이라고 했다.

이들은 "15년 동안 파행으로 시종했던 노사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파행이 한쪽에만 책임이 있을 수는 없다. 노조는 파행의 한 당사자인 만큼 책임지는 모습으로 노사관계를 반드시 정상화할 것이다."

남은 것은 다시 이랜드 그룹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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