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자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낙하산 부대?"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개혁 작업을 놓고 나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추진했던 공기업 민영화 및 통폐합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인력 감축에 전념하고 있다. 인건비를 줄여서 당장 눈에 띄는 재무적 지표를 개선해보겠다는 것. 정부로서는 가장 손 쉬운 수단을 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높은 도덕성이 필수적이다. 멀쩡한 밥줄을 잘라내면서 납득할 만한 원칙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승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만한 게 '감원'?…잘린 직원 자리는 'MB낙하산'이 차지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개혁 작업에서 부족한 대목 역시 이 부분이다. 인원 감축 목표치를 정해놓고, 일단 자르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감원'이 횡행한다.
잘려나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도왔던 '선거 공신'들이다. '효율', '선진화' 모두로부터 거리가 먼 행태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2차관은 9일 SBS 라디오 '김민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공기업) 경영 효율화는 예산, 조직, 인력 등 전 분야에 걸쳐 10% 효율을 올려 공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인력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자연퇴직, 희망퇴직이 아닌 인력 강제 감축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 차관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정부는 10% 내외 인력 감축 등의 내용이 담긴 공공기관 경영효율화 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목표치를 정해놓고 사람을 자르는 작업에는 예외가 없다. 연구기관처럼 미래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곳도, 당장의 수익성을 이유로 인원이 잘려나갈 전망이다.
공기업 민영화ㆍ통폐합 논의는 지지부진
반면, 현 정부가 내세웠던 공기업 민영화ㆍ통폐합의 추진 동력은 눈에 띄게 둔화됐다.
경제 침체가 주요 원인이다. 주가가 떨어진 상태에서 섣불리 민영화를 시도했다가는, 국가 인프라를 운영하는 공기업을 '헐값 매각'할 위험이 크다. 또, 기업 활동이 침체되면서 산업 후방 지원을 맡고 있는 공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공기업을 매각하면, 민간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치를 비용이 커지게 된다. 현 정부가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와도 배치되는 셈.
공기업 통폐합도 쉽지 않다.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통폐합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세부안을 놓고 이견이 팽팽한 상태다.
공기업 비효율 주범인 낙하산 인사는 더 심해져
정작 공기업 비효율의 핵심으로 꼽혀온 낙하산 인사 문제는 오히려 심화됐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 낙하산 인사의 온상인 공기업 상임감사 자리를 없애야 한다는 정부 용역보고서 결과가 나왔었지만 한 해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런 주장은 정부 주변에서 설 자리가 없다.
한국전력은 지난 8일 강승철 서울미래경제포럼 대표를 상임감사로 선임했다. 강 대표는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을 지냈다. 대한석탄공사 감사로 임명된 이광영 씨 역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과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단장을 지냈다.
지난달 25일 공개질의서를 통해 강승철 대표가 한전 감사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던 경제개혁연대는 8일 논평을 통해 "강승철 씨의 경력은 (한전 감사) 후보자 공모 당시 제1 자격요건이었던 '전력 및 관련 산업 또는 감사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고통 분담, 뒤로는 자기 사람 심기"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특히 한전 역시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2000여 명을 감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미 김쌍수 사장을 제외한 상임이사 5명 가운데 4명의 사표가 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지적한 뒤, "공기업의 개혁을 위해 인원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추진하면서 현 대통령의 대선캠프와 인수위에 참여했던 인사를 상임감사위원에 낙하산으로 선임하는 것이 과연 공기업 개혁에 부합하는 조치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경제개혁연대는 "앞에서는 고통분담의 필요성을 주창하면서 뒤로는 자기 사람 심기에 열심인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가 과연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과 근심만 깊어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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