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아니고선 조세회피 못 막아
헌재가 세대별 합산과세에 대해 위헌을 결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결정요약문 인용)
"개정 종부세법에 의해 혼인한 부부 또는 가족과 함께 세대를 구성한 자에게 더 많은 조세를 부과하는 것이 혼인과 가족생활을 특별히 더 보호하도록 한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문제이다. 따라서 특정 조세 법률조항이 혼인이나 가족생활을 근거로 부부 등 가족이 있는 자를 혼인하지 않은 자보다 차별취급하는 것이 비례의 원칙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이 사건 세대별 합산규정은 생활실태에 부합하는 과세를 실현하고 조세회피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수긍할 수 있으나 가족 간 증여를 통해 재산 소유 형태를 형성했다고 해서 모두 조세회피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또 정당한 증여의 의사에 따라 가족 간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도 국민 권리에 속하는 것이며 민법은 부부별산제를 채택하고 있고 배우자를 제외한 가족의 재산까지 공유한다고 추정할 근거 규정이 없으며, 공유재산이라 해서 세대별로 합산해 과세할 당위성도 없다.
아울러 부동산 가격 앙등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오직 세제 미비로 발생하는 것만이 아니고, 이미 헌재는 자산 소득에 대해 부부간 합산과세에 위헌 선언한 바 있다. 또 부동산실명법 규정에 의해 조세회피 방지라는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어 필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세대별 합산 규정으로 인한 조세부담 증가라는 불이익은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조세회피 방지 등 공익에 비해 훨씬 크고 조세회피의 방지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공익은 입법정책상의 법익인데 반해 혼인과 가족생활 보호는 헌법적 가치란 것을 고려할 때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하기 힘들다.
따라서 세대별 합산 규정은 혼인한 자 또는 가족과 함께 세대를 구성한 자를 비례의 원칙에 반해 개인별로 과세되는 독신자, 사실혼 관계의 부부, 세대원이 아닌 주택 등의 소유자에 비해 불리하게 차별 취급하고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헌재는 세대별 합산규정이 지닌 입법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하나 방법이 적절하지 않고 이를 통해 달성되는 공익보다 침해되는 사익이 더 크다는 이유를 들어 세대별 합산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세대별 합산이 아니고는 조세회피를 막을 길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헌재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아마 헌재는 부부 또는 세대원 간의 인위적인 명의 분산 같은 가장행위 등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증여의제·증여추정 등을 통하여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과세의 실효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부부 간·세대 간 합산과세의 현실적인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부부 간 증여의 경우 6억 원의 공제가 인정되고 증여세가 단계별 누진세율을 채택해 과세표준이 5억 원 이하인 경우 세율이 20%에 불과해 장기간의 높은 종합부동산세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증여세 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지난 9월 1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현재 과세표준별로 10~50%인 세율이 내년에는 7~34%로, 내후년에는 다시 6~33%로 인하된다. 한편 현행 과표 1억 원 이하 10%, 5억 원 이하 20%인 세율을 5억 원 이하의 경우 오는 2010년부터 일률적으로 6%를 적용함으로써 과표가 5억 원인 경우 세금 부담이 9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무려 67%나 줄어들게 된다.
또 종부세 논의가 본격화되던 2003년 이후 증여가 폭주해 증여세징수액이 급증한 점까지 감안할 때 기존의 제도로는 부부 또는 세대원 간의 인위적인 명의 분산과 같은 가장행위 등을 막을 수 없다.
한편 헌재는 "부동산실명법 규정에 의해 조세회피 방지라는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설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그릇된 판단이다. 이자소득·배당소득·부동산임대소득과 같은 자산소득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부나 직계존비속 간에 부동산을 분산 소유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특히 부부 상호 간에는 명의신탁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현행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8조는 부부 간에 이루어지는 명의신탁행위의 법률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이 규정은 부부 간 명의신탁행위를 통해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오랜 관행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조세포탈이나 강행법규의 회피 등의 목적이 없다면 적법한 것으로 보고 그에 따르는 법적 효과를 부여하겠다는 취지를 갖는다.
그런데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은 조세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부부 간에 이루어지는 명의신탁의 법적 효력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과세관청이 입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즉,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가지고는 부부 또는 세대원 간의 인위적인 명의분산과 같은 가장행위 등을 방지하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는 셈이다.
금융 소득-부동산 소득 구분해야
또한 헌재는 "부동산 가격 앙등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오직 세제의 미비로 발생하는 것만이 아니고, 이미 헌재는 자산 소득에 대해 부부간 합산과세에 위헌 선언한 바 있다"고 설시했다. 헌재는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다. 누구도 부동산 가격 앙등이 오직 세제의 미비로 발생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대한민국의 경우 낮은 보유세가 부동산 투기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금융 소득과 부동산을 구별하지 못하는 헌재의 단견도 근심스럽다. 토지는 예금이나 주식과는 다른 성격의 재화로 생산이나 대체가 불가능하며 공급이 제한되어 있고 모든 국민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으로서 공동체의 이익이 보다 강하게 관철되어야 한다. 게다가 주택 역시 토지의 공급제약 및 효율적인 도시계획 등의 제한으로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토지 및 주택에 있어 수요공급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인해 가격의 상승과 투기현상이 예금이나 주식 등 다른 재산권에 비해 현저하다는 점, 대한민국 헌법이 토지재산권에 대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 소득세에 있어서 부부 자산소득합산과세의 입법취지는 인위적인 소득분산에 의한 조세회피방지행위를 방지하는데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면 종부세 세대별 합산과세의 취지는 단순히 조세회피방지라는 기술적·행정적 목적이 아니라 투기목적의 주택보유를 막고 실거주 목적의 주택보유를 유도·형성하기 위한 정책유도적 목적을 가진다는 점과 이러한 목적이 일련의 헌법규정에 의하여 뒷받침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헌재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라고?
세대별 합산규정이 협의의 비례원칙에 어긋난다는 헌재의 결정을 보노라면 말문이 막힐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부동산의 소유 편중 현상이 극심하다. 2006년 10월 정부에서 발표한 "2005년 토지소유 현황 통계"를 보면 2005년 말 기준 우리나라 땅 부자 가운데 상위 10%(약 500만 명)가 차지하고 있는 토지 면적은 전체 개인 소유 토지의 98.3%이며, 상위 1%(50만 명) 소유의 땅은 57%에 이른다. 주택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가구의 1.7%인 29만 세대가 집을 5~20채씩 차지하고 있다.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 중 다주택자의 분포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면 부동산 소유 편중도의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종부세 대상자 중 '다주택 보유자'는 23만2000세대로, 개인 주택분 37만9000세대의 61.3%를 차지하며 세액 점유율은 71.6%에 해당한다. 또한 다주택자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수는 97만8000호로, 전체 종부세 과세대상 주택 112만5000호의 86.9%에 이른다.
종부세는 극소수의 부동산 과다 보유자들만 납부한다. 2007년 행자부 통계를 보면 종합부동산세의 납부 인원(그동안은 신고납부였으므로, 정확히는 신고대상 인원)은 2007년 기준으로 48만6000명이며, 주택분은 38만3000명이다. 주택분에서 법인을 제외하면 세대로는 37만9000세대로 주민등록상 전체세대의 2.0%('06년은 1.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를 다시 주택을 소유한 세대와 비교하면 3.9%('06년은 2.4%) 수준이다.
또한 이들이 부담하는 보유세도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2007년 통계 기준으로 보면 공시가격이 6억 원일 경우 실효세율(부동산 가격 대비 보유세)은 0.26%, 7억은 0.34%, 10억은 0.52%, 25억은 1%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종부세는 공공재산적 성격이 강한 부동산을 과다보유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이기 때문에 설령 세대별 합산으로 인한 차별취급이 발생한다 해도 이로 인해 달성되는 공공복리,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부동산 가격 안정을 통한 지방재정의 균형발전,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 등의 공익이 그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이 협의의 비례원칙을 충족시킨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끝으로 헌재는 '조세회피의 방지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공익은 입법정책상의 법익인데 반해 혼인과 가족생활 보호는 헌법적 가치란 것을 고려할 때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하기 힘들다"라고 설시했는데 이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
조세회피방지는 헌법 제11조의 실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점, 종부세법이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헌법 117조 및 119조의 근본취지와 부합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재는 헌법현실과 헌법규범 사이의 거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 문헌에만 기계적으로 매몰됐다 할 것이다.
1주택자 종부세 과세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지닌 맹점들
헌재는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과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요약문을 보자.
"그러나 주택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개인의 주거로, 쾌적한 주거생활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실현할 장소로 필수 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주택공급 정책의 수단을 통해서도 국민 주거생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택가격 기준으로 고액의 주택 보유자를 정책 집행 대상으로 삼아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수단의 선택은 엄격한 헌법적 심사 기준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주택분 종부세를 규정한 구 종부세는 주택 보유의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른 일반 주택 보유자와 동일하게 취급해 일률적으로 또는 무차별적으로 재산세보다 상대적으로 고율인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므로 입법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정책 수단의 범위를 넘어 과도하게 주택 보유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어긋난다."
헌재결정은 주거 목적으로 한 채의 주택만 장기보유한 자나, 주택 외에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어 납세 능력이 낮은 경우에는 종부세 납세의무의 예외를 두거나 감면해줘야 함에도 무차별적으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게 재산권을 제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헌재의 판단은 매우 잘못됐다. 헌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까닭은 보유세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유세는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대가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주거목적의 고가 1주택자라고 해서 보유세를 감면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정 담세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대상으로 종부세 납부유예제를 시행하면 될 일이다.
아울러 고가 1주택자에 대한 감세 혹은 면세 혜택은 저가의 주택을 다수 보유한 사람과 형평성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 끝으로 고가 1주택자에 대한 면세 및 감세혜택은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를 폭증시켜 자산 배분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헌재, 커밍아웃을 하다
위에서 자세히 살핀 것처럼 헌재의 결정은 상위 2% 강부자들을 위해 헌법의 정신과 본령을 정면으로 어긴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이미 헌재는 기획재정부와의 부적절한 만남으로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마당이다. 이번 결정으로 헌재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폭로한 결과를 낳았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은 헌재가 부동산문제 해결의 핵심장치인 종부세를 사실상 끝장냈다는 사실, 헌재가 수호하고자 하는 헌법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아니라 강부자들만을 위한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됐다. 물론 세대별 합산 및 1주택자 종부세 부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조대현 재판관과 김종대 재판관은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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