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계약직 공무원 규정 위반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문화부는 "자체 감사 결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작년 5월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김윤수 관장이 작품 수집 및 관리 규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또 문화부는 김 관장이 관세청에 해당 작품의 반입을 신고하지 않았다며 해지 사유를 밝혔다.
미술계에서 유래가 없는 일로 여겨지는 이번 해임은 지난 3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김 전 장관을 직접 사퇴 대상으로 거명한 터라 더욱 논란이 뜨겁다. 또 문제가 된 뒤샹 작품 구입 문제는 이미 지난해 12월 문화부가 특별감사를 실시한 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관 경고 처분을 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김윤수 전 관장이 문화부 계약해지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프레시안>에 반박문을 보내왔다. 그는 이번 반박문을 각 언론사에 보내고 있다며 "그동안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공무원의 신분이라 당하고만 있었다"며 "할 말이 많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윤수 전 관장이 보낸 반박문의 전문이다. <편집자>
국립현대미술관장 계약해지의 부당함에 대한 반박문
1.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작품 구입 절차
미술관의 작품구입은 규정상 여러 단계를 거쳐서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구조상 관장이 혼자 일처리를 하거나 절차를 어길 수 없다. 그 과정은 ①관장을 포함한 학예직들이 구입할 작품을 제안하고 ②제안된 작품들을 전 학예직들로 구성된 작품수집추천회의에서 구입 추천 여부를 결정하고(여기서 학예사와 관장이 동등하게 1표씩 행사) ③추천된 작품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분과별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에서 심의하며 ④마지막으로 20여명으로 구성된 전체작품수집심의위원회 회의에서 구입 가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구입할 작품은 심도 있게 논의되고 걸러지며 가격이 조정된다. 작품수집심의위원 회의에는 회의를 진행하고 기록하는 직원만이 참석할 뿐 관장도 참석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다.
2.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가방 속의 상자> 구입 과정
①2004년 미국에서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가방 속의 상자> 판매 제안서가 왔을 때 이 미술품을 잘 아는 학예사가 없어 관장이 약6개월에 걸쳐 틈틈이 진위여부와 가치, 작품의 이력 및 이동경로, 가격 등 모든 것에 대해 조사ㆍ연구하였다.<여행가방 속의 상자>는 A-G 시리즈가 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구입한 작품은 A와 B시리즈의 중간 것으로 오직 하나뿐이며 뒤샹이 직접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② 소장자가 제안한 이 작품을 놓고 첫째, 작품의 제작시기와 작품의 진위 여부 및 에디션의 가치 확인 둘째, 제안가격 70만 달러에 대한 적정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경매기록을 조사한 바, 2000년 크리스티경매에서 A형이 최고가 120만 달러, 최하가 80만 달러에 나온 기록이 있었고, B형에서 G형까지는 에디션과 시기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런 만큼 경매가격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2004년 연말 경 영국에서 전문가들이 뒤샹의 작품 <샘>을 '21세기 최고의 미술작품'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작품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어차피 심의과정에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일단 제시된 가격대로 추천회의에 제안했다.
③ 추천회의에서 추천 결정을 하면서 자료를 더 보강해서 심의회의에 넘기라는 결정에 따라 조사하던 중 뒤샹이 <여행가방 속의 상자> 시리즈를 만들 때 그의 조수를 했던 작가 조셉 코넬(Joseph Cornell)의 그림 한 점이 경매에서 250만 달러에 팔렸던 것을 알았고(뒤샹과 코넬은 미술사적 업적이나 평가에서 천양지차가 있다) 당시 미국의 CMA미술관이 바로 이 작품을 전시해놓고 구입하려고 한다는 사실 등을 알아냈다. 그러나 하나 뿐인 이 작품은 옥션에 나온 적이 없고 유사한 것으로 B형이 있지만 이 작품과는 다르고 그밖에 참조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분과별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에 추천되었다. 이 회의에서 4가지 조건으로 통과되었는데 그 첫째가 '사진자료만 보고 믿을 수 없으니 실물을 보고 결정하자'라는 것이고, 둘째가 '가격 협상을 하여 최대한 다운시키라'는 것이었다. 세 번에 걸쳐 가격협상을 하여 70만 달러에서 67만 달러로, 다시 64만 달러로, 최종적으로 62만 3000 달러로 다운시켰고, 이 결과를 전체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에 통고했다.
④ 전체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는 두 차례 열렸는데 1차 때는 여러 문헌과 관련 자료들을 통해 심사를 했고 다음 회의에서는 "실물을 들여와 진품여부를 확인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 소장가와 협의 끝에 소장가측이 작품을 국내로 운반해왔고 두 번째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가 열려 심의위원들이 실물의 진품임을 확인하고 최종 제시가 62만 3000달러를 받아드리기로 결정하였다.
3. 문화부가 주장한 '관련법규 위반내용'에 대한 반박 요지
1) 문화부에서 "작품구입 계약 체결전 이미 작품 구입의사결정을 상대방에게 알림"이라고 하며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 결정은 05. 7. 29.에 하였고, 구입의사의 서신은 05. 5. 30.이므로 작품수집관리규정을 위반하였다"고 하였다.
2005년 5월 30일은 조각분과심의위원회의가 열려 4가지 조건을 전제로 뒤샹작품을 구입키로 결정한 날이다. 그 조건은, ①구입계약 전에 그 작품의 진품 여부를 반드시 확인할 것. ②관장은 적정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 가격협상을 할 것, ③구입 시 보험과 운송비는 소장가 측에서 부담할 것, ④계약은 반드시 법적인 근거위에서 보장할 것이라는 조건이었다. 이에 관장은 소장가가 이 4가지 조건을 이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협상하기 위해 서신으로 알렸다.
그런데 문화부는 어처구니없게도 이 조건을 고의적으로 누락시켜 '계약체결 전 이미 구입의사결정을 상대방에게 알렸다'라고 사실을 왜곡시켰다.
2) 문화부는 "작품소장자의 제안가격을 충분한 조사 없이 그대로 추천위에 상정"하였다고 하고, "작품수집 제안시 작품성, 시장가격, 진위여부, 작품이력 등을 충분히 조사하여 심도 있는 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심의자료를 제공하여야 하나 충분한 조사없이 소장가가 제안한 가격 그대로 추천위에 상정하여"라고 하며,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 및 관리규정>위반"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밝혔듯이 6개월에 걸친 조사 연구는 작품성, 시장가격, 진위여부, 작품이력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그 후에도 의문 날 때마다 자료를 추가하고 미국의 뒤샹전문가 나우만(F. Naumann) 박사에게 자문을 받았다. 이때 소장가로부터 받은 귀중한 자료들은 미술관의 중요 자산이 되어 있다.
또 문화부는 관장이 '추천시 소장가의 제안가를 그대로 적었다.'는 이유로 수집관리 규정을 어겼다고 한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 및 관리 규정>에는 소장가가 제안한 가격대로 추천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다. 그것은 설사 적정가격을 몰라서 가격을 높게 제안했다 하더라도 추천회의에서 1차적으로 가격이 조정되거나 걸러지고, 특히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에서 몇 차례 심도 있게 논의되면서 가격이 다운되거나 걸러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 및 관리 규정> 참조)
3) 문화부는 "실체가 불분명한 리치몬드(Richmond)사와 우편을 통해 구입계약 체결하였다"고 하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위반"이라고 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 및 관리 규정>에 "우편을 통해 구입계약체결"을 하면 아니 된다는 규정이 없다. 그리고 '작품수집업무지침'에 '사업자가 판매자인 작품을 개인 판매자의 작품인 것으로 제안ㆍ추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이 있다. 리치몬드사가 실체가 불분명하다면 사주 개인의 신분이라고 해서 분명하다 할 수가 있겠는가. 리치몬드사는 처음부터 오너의 이름 없이 제안서를 보냈고 이쪽에서 요청한 도서나 자료들 그리고 자문 받을 전문가를 소개해주는 등 매우 협조적이었다.
관장은 리치몬드라는 회사보다는 오히려 작품이 문제가 있을 때 변상까지 받을 수 있는 '작품거래의 법적 보증서'와 판매약정을 믿었고 뒤샹연구의 대가인 프란시스 나우만 박사의 '보증서'를 믿고 구입계약을 체결하였다.
4) 문화부는 또 "가격산정의 객관적 자료가 없이 작품 매도자인 리치몬드사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가격을 기준으로 협상"이라고 하고, "관장 개인이 서신 교환을 통해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라고 하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위반"이라고 하였다.
미술품이란 정가가 없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협상에 의해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작품이라도 원매자에 따라 혹은 옥션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더구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구입한 뒤샹의 <여행가방 속의 상자>는 A시리즈에만 있는 아주 희귀하고 특별한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고 A와 B사이의 작품으로 오로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가격비교를 할 대상이 없다. 그리하여 사전에 6개월간을 연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문화부가 주장한 바, 관장이 '개인 자격'으로 리치몬드사에 서신을 보낸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대표하는 기관장 자격으로 서신을 보냈으며, 작품구입가를 관장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 및 관리 규정>에 따라 관장이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5) 문화부는 "외국물품 반입 시 밀수된 작품을 취득"이라고 하며, 취득과정에서 관세법을 위반하였다고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건은 통관시 신고고지의무 위반으로 하여 지난해 말 이미 장관의 기관경고를 받은 만큼 이중처벌을 받을 수 없는 사안이다. 또한 관세법은 세수를 목적으로 하며 세관신고 의무는 물품을 가지고 들어온 당사자에게 있다. 그러므로 관세법에서 문제가 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가 측에 '세관신고를 하라'는 고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후라도 미술관에서 세관 신고를 못한 이유는 ①미술작품의 경우 무관세여서 미술관에서는 반입자가 당연히 세관신고를 한 줄 알았다. ② 그 작품은 작품구입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위해 반입된 것이지 구입이 결정되어 반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관신고 여부에 대해 담당 직원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③작품을 구입한 후 세관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이미 세관을 통관한 물품은 변형, 교체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후 신고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4. 결 론
국립현대미술관은 뒤샹의 작품 구입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객관적 자료들을 철저히 갖추었고 절차상에도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문화부는 관장을 표적으로 전반적인 감사를 하였으나 나온 것이 없자, 뒤샹작품 구입 한 사안에 대해 여러 차례 반복하여 감사를 하였다. 이어 3년이나 지난 사안에 대해 관세청과 검찰수사까지 받게 했는데, 이는 기소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나 불기소처분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자 문화부는 관장이 작품구입에 대해 모든 일처리를 혼자서 결정한 것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오도한 후 '미술관 규정'과 '계약에 관한 시행규칙' 그리고 '관세법'등을 위반했다며 억지로 얽어맨 후, 공무원법(성실의 의무)위반으로 '책임운영기관장 계약해지'를 단행하였다.
2008년 11월 10일
김 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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