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긴박한 움직임에서 한동안 추운 겨울이 되겠구나 하는 걱정과 스산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금융권이 아무리 어렵고 건설업계가 아무리 힘들어도 막상 겨울이 오면 당장 힘든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지난 IMF때 중산층에서 추락한 사람들, 구조조정 당한 뒤 피 같은 퇴직금을 털어 영세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손들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 평생 꿈인 내 집 마련을 위해 무리인 줄 알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담보대출 받아 집을 샀다 원리금상환에 허덕이는 사람들, 실업자와 무업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일용직에라도 목을 걸고 있는 사람들, 차상위와 절대빈곤의 한계선을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 절대빈곤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엄두도 못 내고 한 끼 걱정에 하루해가 짧은 사람들…. 겨울이 오면 가장 먼저 쓰러질 수밖에 없는 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억대 연봉의 CEO들이 10% 감액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고통분담인 것처럼 발표하는 행태들이나 내년도 공무원 연봉을 동결키로 했다는 정부의 조치를 무슨 대단한 자구책이라고 내놓는 모습들을 도저히 좋은 마음으로는 봐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어쩌랴. 저들도 그 나름의 진정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
해법은 없는가. 정녕 탈출구는 없는가.
최소 1~2년 정도의 추운 겨울은 각오해야겠지만, 과연 이 겨울 너머에 봄이 기다리고 있는지, 혹 이 겨울이 기나긴 빙하기의 출발점은 아닌지, 겨울을 견뎌내야 할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겨울의 추위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겨울 너머에 봄이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우리를 죽음을 넘어서 부활의 길로 이끄는 작은 등불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미 시작된 겨울이 봄을 예비하고 있는 겨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고, 그 사실과 우리의 믿음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이것이 경제팀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불행히도 지금의 경제팀은 가장 기초적인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 일을 수행할 최소한의 자격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런 자격을 결여하고 있었는지 지금까지의 위기확대과정에서 자격을 상실해버렸는지를 따져 묻는 것은 이 시점에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뭐였든 지금의 경제팀이 국민들에게 '지금의 겨울은 봄을 예비하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없다는 점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연말연시를 기해 신발끈을 다시 묶는 연례적 개편"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 원내대표가 말한 이른바 "연례적 개편"이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대통령의 인사권에 해당되는 문제들을 직접 얘기하는 데서 오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완곡어법일 수 있겠다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식의 정치적 논의 때문에 내각 전면개편의 긴급한 필요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긴급한 전면개편의 필요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그동안의 국정운영 혼선과 난맥상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제기와 관련해 근거가 필요하다면, 지난 몇 달간10%~30%대의 바닥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통령 지지도를 살펴보면 될 것이다.
둘째는 지금의 내각이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도 기대도 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제기와 관련해서도 근거가 필요하다면, 금융대책이건 부동산대책이건 정부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주가 폭락과 환율급등으로 대답해 온 지난 몇 주간의 시장반응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유일한 해법은 지금 즉시 전면개편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설명대로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다면, 그럼에도 말 그대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면 이 방법 외에 다른 어떤 해법이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한번쯤은 우리에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기나긴 겨울계곡으로 완전히 들어서기 전에 봄을 향해 진로를 틀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미 겨울계곡의 초입에 들어서 버렸다 하더라도 최단거리로 겨울계곡을 가로질러 봄의 평원으로 나오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상유십이척 미신불사(尙有十二隻微臣不死)'. 백의종군의 자세로 거칠게 덮쳐오는 경제난국에 정면으로 맞설 '사즉생'의 리더십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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