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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은 간데 없고 이념만 나부끼는구나"

[노동과 세계] 국민을 원숭이로 아는 노동부 장관

"고용 형태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참으로 희한한 주장이다. 노동 문제에서 "결사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고용형태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금시초문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노동부 장관이 2007년 7월 시행된 비정규직 관련법 때문에 사용 기간이 2년으로 돼 있는 비정규직들이 2009년 7월에 가면 해고 위기에 처할 테니 이를 막기 위해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3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다가 나온 말이다. (☞관련 기사 : 이영희 "비정규직 사용 기간 늘려야")

입법 취지도 모르는 노동부 장관…차라리 사용기간을 아예 없애지?
▲ 법 제정 2년도 채 못 돼 '비정규직 남용 억제와 차별 금지'라는 입법 취지를 무시하는 발언을 당당하게 하는 이가 바로 지금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다. 더구나 그 논리가 '비정규직 사용 기간 2년이 끝나면 해고되니 그 사용 기간을 3년으로 늘려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생떼'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뉴시스

2006년 비정규직 관련법을 만들 때의 입법 취지는 "2년 이상 써야할 정도로 상시적인 성격을 요구하는 비정규직이라면 2년이 지난 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노동계의 요구는 1년이었다.

비정규직이 정부 추산으로 전체 노동자의 30%를 훨씬 넘고, 노동계 추산으로 60%에 육박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지자 나온 보호 대책이 바로 비정규직 관련법이었다. 세부적인 법 조항에서는 이견이 있었지만, 당시 여야는 "비정규직 남용을 막고 차별을 해소한다"는 법의 목적에는 토를 달지 않았다. 2006년 법 제정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은 지금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홍준표 의원이었다.

그런데 2년도 채 못 돼 '비정규직 남용 억제와 차별 금지'라는 입법 취지를 무시하는 발언을 당당하게 하는 이가 바로 지금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다. 더구나 그 논리가 '비정규직 사용 기간 2년이 끝나면 해고되니 그 사용 기간을 3년으로 늘려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생떼'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게다가 이 장관은 노동법학자 출신이 아닌가!

2년이라는 사용 기간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가 발생한다면, 사용 기간을 늘린다한들, 그 3년이 차면 어떻게 할 것이며 4년이 차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때마다 비정규직 대량해고라는 미명 하에 사용 기간을 늘리자고 할 것인가.

그런 식의 논리 비약이라면 사용기간을 아예 없애 비정규직을 무기한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오히려 대량해고를 막는 유일한 길이지 않겠는가.

'고용형태의 자유' 보장한 나라 어디에도 없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나라라면 어디서나 법이나 단체협약으로 고용형태를 규제하지 자유방임 상태로 놔두지 않는다. 고용형태의 '방임'은 물론 근로조건의 '방임'까지도 추진했던 호주에서는 보수/자유 연립정부가 몰락하고 노동당 정부로 교체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선진화'된 나라 가운데 '고용 형태의 자유', 실은 '고용 형태의 방임'을 허용한 나라가 어디 있나?

미국발 경제 격변기를 맞이하여 모든 선진국들은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는 기본이고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로 정책 방향을 틀고 있는데, 일국의 노동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 미국식 자유방임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고용형태의 자유" 운운하는 꼴을 보니 실용을 내세운 정부에서 "실용은 간 데 없고 이념만 나부끼는" 것 같아 우습기 짝이 없다.

말장난에 능한 '조삼모사' 정권

하기야 국민을 조삼모사의 원숭이로 아는 이가 이영희 장관 뿐이랴.

'경제대통령', 'CEO대통령'이라며 온갖 폼을 다 잡다가 나라 경제를 나락으로 몰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또 어떤가.

얼마 전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치는 데 한국은 안 그렇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은 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칠까. 공산당 일당 지배 국가라서 국민적 단결이 잘 이뤄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최근 들어 중국 정부는 고용형태를 비롯한 각종 노동조건을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고 노동권을 대폭 신장시켜 기업 경영에 대한 노동조합의 발언권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런 데서도 중국 국민의 단결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관련 기사 : "MB 노동정책, 공산당만큼만 해라")

"결사의 자유"나 보장하라

따지고 보면 이영희 장관은 '조삼모사 정권'의 장관 답긴 하다. 서민들은 집값을 충당하지 못해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데, 강남 부자들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그 인하분을 일반 국민의 재산세를 올려 충당하려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 아닌가.

비정규직 고용 안정을 빌미로 내세우며 노동 시장에 대한 자유방임주의 이념을 실천하려 하고 있는 이영희 장관이야말로 이 정권에 딱 맞는 사람이다.

노동부 장관이 "고용 형태의 자유" 운운하며 말장난 하는 오늘 이 시간에도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ILO협약 제87호와 제98호를 비준하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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