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민심 얻지 못하면 '제2의 저항' 맞을 것"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민심 얻지 못하면 '제2의 저항' 맞을 것"

[남재희-김종인 대담①] '폭발물 제거'가 답인가?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김종인 전 의원. 세상이 어수선하고 먹고 사는 일이 팍팍해서인지 두 원로가 언론 지면에 자주 등장한다. 폭넓은 식견과 사심 없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일 테다.

40년 넘게 이어온 친분으로 두 사람은 이따금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요즘도 여전히 중진부터 소장 인사들까지 왕성하게 만나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토론하는 일이 잦다. <프레시안>은 오는 24일 창간 7주년에 즈음해 두 원로를 한자리에 모셨다. 이제 7개월을 채운 이명박 정부가 지나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다. 국정운영과 경제운용에 방점을 두고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여백을 많이 남겨뒀다. "민심을 얻기 위한 호소력 있는 조치가 미흡하다"(남재희), "우리 경제의 실상을 솔직하게 설명 안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끌고 가려고 하면 언젠가 (촛불처럼) 다시 터질 수밖에 없다"(김종인)고 경고하면서도 "아직은 두고 보자"고 입을 모았다.

관록으로 체득한 '민도'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어지간해선 상궤를 이탈할 수 없는 권력의 매커니즘을 꿰뚫고 있는 두 원로의 혜안이 돋보인다. '경고'와 '희망' 사이의 여백은 읽는 사람의 몫. 왜 이들이 호사가들과 달리 이명박 정권에 '퇴로'를 비교적 넓게 열어주는지도 권력 담당자들이 새겨볼 일이다.
▲ 대담을 나누고 있는 남재희 전 장관(왼쪽)과 김종인 전 의원.ⓒ프레시안

대담을 위해 빼곡하게 메모를 챙겨올 정도로 섬세하고 발언에 신중한 남재희 전 장관이 "촛불은 복합적 불만의 폭발로 봐야 한다. 그것은 폭발물 분해하듯 한다고 분해가 되지 않는다. 그 핵심에는 민심의 덩어리가 있기 때문이다"면서 "물리적 작업만 하고 직접 민심을 얻는 작업이 부족하면 '제2의 저항'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한 건 현재를 상당한 위기로 읽고 있다는 뜻이다.

김종인 전 의원이 "폭발물을 제거한다고 해도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을 받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한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서도 "과연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을지 의문"이라고 냉소를 보냈다. 그리곤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어떻게 발전할 수밖에 없고, 무엇을 하겠다는 걸 제시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호소했다.

이명박 정권의 '폭발물 제거 작업'의 과정도 거칠게 평가했다. 남 전 장관은 KBS 사장 교체 등 언론정책의 진통에 대해 "꼴사납게 됐다"고 혀를 찼다. "공안정국을 우려할 수 있는 면이 있다"고도 했다. 김종인 전 의원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염두에 둔 듯 "(이명박 대통령이) 본인이 선택했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그 사람을 옹호하는 자세는 안 갖는 게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비판 속에는 절박함이 담긴 당부가 담겨있었다. 김 전 의원은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도 예술가 같은 기질이 있어야 한다"며 "이론도 잘 알아야 하고 행정능력도 있어야 하고 매일매일 변하는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를 관통할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예술"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과 경제 담당자들에게 건조한 관료적 발상에서 벗어날 것을 당부한 말이다. 그는 특히 "신자유주의라는 한 가지 도그마에 빠지면 경제정책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 전 장관은 "(이 대통령이 이론가가 아닌 기업가 출신으로) 자기의 도그마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품성에서 변화의 여지를 찾는 듯 했다. 그는 "우파는 엘랑 비탈, 즉 생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꿈을 못주고 있다. 생명력과 꿈이 없으니 오로지 남는 것은 자칫 부패가 아니겠느냐"면서도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한 발짝 앞선 꿈, 야망을 보여주는 것, 그게 예술"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김종인 전 의원의 개인 사무실에서 3시간가량 진행된 대담의 전편이다. 진행은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맡았다.

"꿈, 생명력의 부재…후쿠다 전철을 밟으려나"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200일이 넘었습니다. 최근 '국민과의 대화'에서 나름의 반성과 새출발을 다짐했는데, 먼저 이명박 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 남재희 : 1934년생. 前언론인. 10~13대 국회의원, 노동부 장관(1993~1994) 등 역임 ⓒ프레시안

남재희 :
거시적으로 보면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 10년의 축적에 이어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우파가 집권했으니 우파적인 개혁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애초부터 이명박 정부에게는 동력, 다이내미즘이 약했다. 국민의 열성적인 지지로 당선된 게 아니고 반사적 지지가 강했다.

정권 자체의 동력이 약하니까 우파 개혁이 미국 레이건 정부 때처럼 힘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촛불사태로 큰 저항에 부딪혔다. 그러다보니 우파 개혁이 대폭 후퇴하는 양상이 됐다. 촛불사태 때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대운하가 후퇴됐고, 민영화 문제도 전기, 수도, 가스, 건강보험 등의 분야가 후퇴했다. 인적 구성도 강부자 정부에서 대폭 후퇴했다.

나는 이걸 상태(常態)적 정치로 돌아간다고 분석한 적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우리나라에서 정책선택의 폭이 상당히 적다는 얘기도 된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요상한 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김종인 :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은 경제 살리기다. 우리 생활이 갑자기 나아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서 표가 갔다. 인수위 100일 중요했다. 대통령이나 권력을 같이 향유하는 사람들이 이 기간 동안 현실과 선거 구호를 대조해서 실현 가능한 것들을 추려내고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아직까지도 그게 안 나오고 있다. 정권이 처음 시작하는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 경제현실에 대한 엄정한 분석이 미흡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던데, 죽은 것도 아닌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 자체가 납득이 잘 안 간다.

실질적으로 현재 우리 경제에 대한 솔직한 심경토로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어떻게 발전할 수밖에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걸 제시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봤는데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한 질문과 답변의 형태를 취해 그게 과연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을지 의문이다.

남재희 :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김철 씨는 이명박의 실용주의에 대해 상당히 혹평을 했다. "실용주의는 국가의 지도강령이 아니다. 그건 한 조목일 뿐이다. 국가통치에 있어 상업주의적 차원에서 그런 얘기만 하는 것은 저차원의 실망스런 얘기"라고 비판했다. 정치도 사이클이 있는 것 같다. 이상주의적 시대와 실용주의적 시대가 사이클을 이룬다. DJ나 노무현 시대를 거친 후 지금은 실용이나 현실주의 사이클이 아닌가 싶다.

김철은 좌파는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 비판하고 우파는 무기질이라고 비판했다. 우파는 프랑스어로 말하자면 엘랑 비탈, 즉 생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꿈을 못주고 있다. 생명력과 꿈이 없으니 오로지 남는 것은 자칫 부패가 아니겠는가.

실용주의와 이상주의에서 현재는 실용주의 사이클인데, 일본의 후쿠다 총리의 실패는 너무 실용주의에 빠지고 이상주의적 힘이 없어 생긴 일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어쨌든 뭔가를 콱콱 주는데 후쿠다는 너무 점잖고 현실적이다. 꿈의 요소를 생각 안하고 너무 실용주의로 나가면 일본의 후쿠다 총리의 실패처럼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지난 10년을 좌파 정권의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뒤집는 것을 정상화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남재희 : 우리 정치에서 우파, 좌파 문제의 개념이나 용어를 한번 검토할 시기가 있어야 될 것 같다. 최근 서울고법의 부장판사 윤재윤 씨가 쓴 글의 요지는 우리나라에서 보수, 진보 개념이 잘못된 것 같다는 것이다. 윤 판사는 보수라는 것은 그냥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니까 균형론이라는 개념을 쓰고, 진보는 거기에 대비해 혁신론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우파, 좌파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이데올로기적, 전투적, 그리고 모략적 개념이다.

우리나라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좌파라 불리는 사람은 등 뒤가 낭떠러지다. 조금만 밀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공산주의자로 불린다. 뉴라이트는 그냥 좌파라고 하지 않고 '친공좌파'라고 레테르를 붙이지 않나. 좌파, 우파는 상당히 까다로운 개념이다. 우리 학계나 언론에서 이 문제를 한번 음미하고 재검토하고 넘어가야 될 거 같다.

김종인 : 지난 대선이 역대 어느 선거보다 표차가 많이 났다. 표로 나타난 것이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표율이 과거에 비해 굉장히 낮아져서 득표를 놓고 보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때 얻은 절대 숫자에는 못 미쳤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게 국민이 좌파에서 우파로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02년 선거 때 노무현을 찍은 사람은 좌파라서 찍은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좌우 논쟁은 해방 이후 벌어진 좌우 논쟁에서 변하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다.

선거 패턴을 보면 좌라고 구분할 수 있는 계층은 6~7% 정도다. 골수 우도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사람은 자기 일상과 관련해 변화하는 투표 성향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선거는 지역 측면이 크게 작동해 좌우를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지역주의가 만연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지역만으로 힘들고 수도권 향배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대북관계, 대미관계에서 좌파적 냄새가 났는지는 모르지만 선진 사회에서 얘기하는 좌우 구분은 아니다. 좌파정당, 우파정당은 경제사회정책 측면에서 구분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뚜렷이 좌파 정권이라고 할 만한 정책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기업 프렌들리를 얘기하는데, 김대중, 노무현도 전부 기업 프렌들리 정권이었다.

우리가 후진성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데올로기를 자꾸 얘기하는데, 8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는 좌파, 우파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는다. 특히 정부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려움만 가중시킨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것도 그렇다.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5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DP)이 1만 불을 넘어섰다가 IMF로 7000불 수준으로 떨어졌다.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을 때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지만 사실 잃어버렸으면 15년을 잃어버린 것이다.

"도그마에 빠지면 제2의 저항 맞을 것"

프레시안 :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은 촛불집회였습니다. 촛불집회에 대한 정치·사회적 평가는 한줄로 꿰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합니다. 촛불이 이명박 정부에 던진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그리고 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보았는지요?

남재희 : 촛불집회와 비교되는데 요새 태국에서도 반정부 시위 사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 신문에도 보도됐지만 <뉴스위크>를 보면 데모가 반세계화까지 포함한 복합적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 촛불도 단순한 미국 쇠고기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돼서 폭발한 것이다. 복합적 불만의 폭발로 봐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

현 정권이 촛불 이후 폭발물 분해 작업을 하고 있다. 참모들은 촛불이 폭발물이라고 보고, 이를 폭발물 분해하듯이 요인을 제거하면 다 제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권으로서 초미의 관심사이자 급선무인 KBS를 우선 손댄 것이다. 권력 입장에서는 안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정연주 전 사장도 그걸 노린 것 아니었나.

하지만 정권 입장에선 꼴사납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를 다루는 데 감사원, 검찰, KBS이사회 등을 동원해 볼썽사납게 됐다. 합법, 비합법을 떠나 스타일을 구기는 식으로 KBS 폭발물을 제거했다. 그 다음은 MBC, 그 다음은 촛불 주동자 구속·수배, 그 다음은 NGO 손보기, 그리고 아직 입법화는 안 됐지만 집단손해배상소송까지 나아가 집회를 제약하려고 한다. 폭발물을 제거하면 제거될 것이라는 생각에 물리적, 기계적 방법으로 조여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촛불은 복합적 불만의 폭발이다. 그것은 폭발물 분해하듯 분해한다고 분해가 되지 않는다. 그 핵심에는 민심의 덩어리가 있다. 민심을 얻기 위한 호소력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는 신경을 안 쓰고 미흡하다. 물리적 작업만 했지 직접 민심을 얻는 작업은 부족한 것 같다.

어느 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인기가 높은 것을 참고 삼아 '박정희 정권은 쥐어짜도 결과적으로 평가가 좋더라. 막말로 쥐어 짜보자. 그래도 역사의 평가는 좋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논평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볼 때 이 대통령이 도그마를 갖고 나가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사업을 하면서 세상사에 부딪히고 닳아서 신축성 있고 실용적인 사람 같다. 공안정국까지는 안 가지 않겠냐는 희망적 관측을 해본다. 만약 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그렇게 가면 '제2의 저항'이 생긴다.

▲ 김종인 : 1940년생. 독일 뮌스터대학 경제학 박사. 11, 12, 14, 17대 국회의원. 보건사회부장관(1989).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1990-1992) ⓒ프레시안

김종인 :
우리나라에서 경제문제가 대선에서 처음 이슈화된 건 1956년 3대 대선이었다. 신익희 씨가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구호로 걸고 나왔다. 신익희 씨가 한강 백사장에서 유세를 할 때 수십만이 걸어서 갔다. 그때 사람들은 살기는 어렵고, 어디 가서 즐길 수 있는 게 없으니 속 시원한 말이라도 들어볼까 해서 간 것이다. 그런 심리가 이번 촛불집회에도 작동했다.

박정희가 쥐어짜긴 했어도 훗날 평가가 좋더라는 얘기는 다른 게 아니라 경제다. 박정희가 1963년 처음 민선대통령이 될 때는 윤보선과 13만 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67년에는 차이가 100만 표가 넘었다. 다른 게 아니라 그 시기 1차 경제개발계획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3선 개헌해서 1971년 김대중과 맞붙었을 때는 90만표 차로 이겼다. 그 때도 국민들이 박정희에게 끌렸던 것은 경제가 발전하고 일반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진 게 있어서였다.

그런 것을 놓고 보면 이명박 정부도 속으로 굉장히 답답할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구조나 규모에서 작은 경제가 아니다. 경제규모로 따지면 세계에서 13번째다. 인구 5000만에 GNI가 2만불 된 나라로는 우리가 7번째다. 그런데 자꾸 경제를 살린다는 얘기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실상을 솔직하게 설명 안 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끌고 가려고 하면 언젠가 다시 터질 수밖에 없다. 폭발물을 제거한다고 해도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프레시안 : 폭발물 해체작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언론과 사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어서 공안정국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분열과 대결 상태가 강화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남재희 : 통치의 원리나 권력의 역할로 볼 때 권력은 좀 조이는 맛이 있어야 한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여야 한다. 원심력이 너무 강하면 아노미가 온다. 그러면 장면 정권처럼 된다. 구심력을 너무 강화시키면 공안정국이 된다. 권위주의로 회귀하게 된다. 원심력과 구심력을 조정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폭발물 해체작업을 보면 일부에서 공안정국을 우려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권위주의 회귀, 공안정국이 오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낙관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캐릭터로 볼 때, 또 국민의 저항까지 생각할 경우 그렇게 비관적은 아니라고 본다. 이 대통령이 다행히 도그마티스트는 아니라고 본다. 이론가로서 자기의 도그마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학자 출신으로 도그마를 내세우면 그럴 가능성이 있는데 기업가로서 상당히 유연한 측면이 있다.

김종인 : 최고통치자가 언론에 관심을 너무 많이 갖는 것 같다. 그것은 스스로 힘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언론에 나타나는 것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니다. 내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도 신문을 보고 기분이 나빠질 거면 신문을 보지 말고 나오라고 했다. 언론은 자기 나름의 생리가 있어서 그렇게 쓰는 것인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금 교육수준이 높고 모든 면에서 언론보다 판단능력이 강하다. 언론이 아무리 쓸데없는 짓을 해도 국민이 현명해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본다.

남재희 : 그래도 언론은 무섭다. 기본적으로 언론이 보수화되고 있다. 언론이 대기업의 영향으로 점차 더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는 기업 프렌들리 정부는 언론에 대해 큰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김종인 : 물론 언론이 무섭지 않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 모든 신경을 쓰면 아무것도 정부가 못한다는 얘기다.

남재희 : 언론매체가 거의 다 대기업 밑에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 신문과 방송 겸업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했다. 신문과 방송을 트면 점차 대기업 영향 하로 더 들어간다.

프레시안 : 진보진영과 언론계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남재희 : 일전에 KBS가 이탈리아 얘기를 특집으로 내보냈다가 일부 보수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처럼 상업방송 사장이 공영방송까지 장악하는 것인데, 우리도 그렇게 비슷한 상황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김종인 :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은 언론을 다 장악했어도 한국 민주주의는 발전했다. 한 기간 동안 언론장악을 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남재희 : 언론 장악은 심각한 문제지만 민심이 돌아가면 아무리 언론을 장악해도 소용이 없다.

"일방통행하면 민심에서 더 멀어져"

프레시안 : 사회적 갈등 양상은 종교 문제에서도 불거졌습니다. 이 정권이 불교계의 오해를 살만한 행동들을 한 게 사실이고, 사태가 악화된 뒤에도 갈등을 해소해가는 데 너무 미숙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 ⓒ프레시안

남재희 :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다종교사회로 세계에 유례가 몇 개 없는 나라라고 했다. 개신교가 좀 강하지만 가톨릭, 불교, 유교 등이 비교적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로서 세계적으로 드문 사회다. 레바논, 인도 등 다른 나라는 종교전쟁도 있는데 우리는 다종교 사회로서는 이상적으로 조화롭게 나갔다. 20여년 전에 학교에서 대종교가 관련되는 단군상의 목이 잘려나간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종교적으로 분쟁이 나겠다 싶었다. 그때 서울대 윤이흠 종교학 교수가 종교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종교는 충돌코스로 가고 있으니 안심하지 말라고 논문을 썼다.

이번에 불교문제를 바로 결부시키기는 뭐하지만 종교문제는 불안정하다. 기본적으로는 개신교가 너무 급팽창했다. 막강한 정치력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펀더멘털리스트들이 오만해졌다. 어느 큰 단체에서 종교차별 금지 입법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건 굉장히 오만한 것이다. 개신교 펀더멘털리스트들이 윤 교수가 말하는 충돌코스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종교 편향 문제에 대해 조금 보다 성의 있게 얘기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불교도들이 봤을 때는 성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개신교의 큰 교단의 장로입장에서 자세를 아주 낮춰서 사과하기엔 다른 압력이 있었으리라는 추정이다. 기본적으로 종교문제에 대해 성의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남아 걱정이다.

그렇다고 어청수 청장 해임문제를 바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장관, 청장을 그때그때 바로 바꾸기 어렵다. 권력의 논리로서는 책임자를 바꾸는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시간을 두고 체면도 세우면서 적당한 때 바꾸는 거면 몰라도….

김종인 : 종교문제를 지금 수습 못하면 다음 선거 때마다 종교가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면 한국 사회에 크나큰 장애요인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대통령 입장에서 빠른 시일 내에 이걸 매듭지어야 한다. 이걸 끌고 간다는 건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다.

프레시안 : 권력을 장악했고 거대 여당의 뒷받침이 든든하니 향후에도 더욱 좌고우면 없이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려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큽니다.

김종인 : 1990년 초에 3당 합당해서 탄생한 민자당이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갖고 있었다. 의석이 잔뜩 많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쉽게 이뤄지기는 힘들다. 우리가 지금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은 5년 단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임기가 굉장히 긴 것 같지만 그 세월은 내 맘대로 다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남재희 : 의석 많다고 밀어붙일 수는 없다. 국민여론이 중요하다. 국민여론도 의석이다. 그렇지만 의석이 많으면 유혹을 받는다. 지금 내 걱정은 야당 의석이 적다는 것보다 야당에 뚜렷한 리더십이 없는 게 걱정이다.

훌륭한 야당리더가 있으면 의석 적은 것을 커버한다. 자유당 시절 민주당도 의석이 많은 게 아니었다. 신익희, 조병옥 등 국민이 믿는 리더가 있으니까 힘을 받았다. 지금 야당은 그런 리더들이 안 보인다. 다음 대통령 감이라도 보여야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

김종인 : 과거 자유당, 공화당, 민자당을 경험해봤고, 노무현 정권 때 열린우리당도 경험했지만 결국 여당이 숫자가 많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대가 지났다. 숫자가 많다고 일방통행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민심이 더 멀어질 것이라고 본다.

남재희 : 남은 4년 반 동안 여권의 자기분열도 내다봐야 한다. 덩치가 크면 자기분열 현상도 불가피한 게 아닌가.

"국정 운영은 예술과 같아"

프레시안 : 200일을 지난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딛고 새출발을 하기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프레시안

김종인
: 본인이 선택했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그 사람을 옹호하는 자세는 안 갖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경제정책 하는 사람도 예술가 같은 기질이 있어야 한다. 이론도 잘 알아야 하고 행정능력도 있어야 하고 매일매일 변하는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를 관통할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창작 예술 하는 사람이나 비슷한 것이다.

좌냐 우냐 같은 도그마에 사로잡혀서는 경제정책을 못한다. 경제정책 이론이 엄청나게 많다. 신자유주의라는 한가지 도그마에 빠지면 경제정책이 안 된다. 모든 이론을 조합해서 현 문제를 타결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영국의 노동당, 보수당도 정책이 별 차이가 없다. 선택지가 많지 않다. 현실 문제를 타개하려고 하니까 그런 것이다. 거기다가 좌, 우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남재희 : 무리한 짓은 안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높으니까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예술가적으로 한 발짝 앞선 꿈을 갖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한 발짝 앞선 꿈, 야망을 보여주는 것, 그게 예술이다.

김종인 : 다음 대선 때가 되면 45세 이하의 유권자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된다는 걸 인식해야만 한다. 예전처럼 일반적인 마케팅을 했다가는 물건이 안 나간다. 이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기분이 나쁘면 확 돌아서는 사람들이다.

7·4·7을 얘기하는데 4만 불 소득이 되려면 우리나라 환율이 자꾸 평가절상이 돼야 한다. 이게 우리나라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의 바이탈리티가 높아져야지만 생산성이 높아진다. 우리도 물량을 키워서 소득을 늘리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다. 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켜서 평가절상이 돼야 4만불 소득까지 간다.

<2편에서 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