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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美 교육의 목적을 거꾸로 해석하나?"

[인터뷰]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가운데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면, 바로 교육 문제일 것이다. "OO는 몇 등 했다"는 식의 자랑이 오가는가 하면, 진학 문제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과 토론이 벌어지는 경우가 다반사. 인권단체에서는 명절에 청소년들에게 성적을 묻는 질문은 가급적 삼가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에는 이런 스트레스가 각 가정에 한층 더 쌓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 1년도 못 되어, 교육 문제는 전국민적인 스트레스 덩어리로 부상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영어몰입교육으로 전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부는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육 문제를 논란거리로 떠오르게 했다. 지난 4월 '학교 자율화 조치'부터 최근 '좌편향'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에 이르기까지 교육 현안은 그 어느때보다 열기가 뜨겁다.

지난 9일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한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 문제에 대한 불안을 한층 증폭시켰다. 경제 다음으로 교육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는데도, 이 대통령은 사교육비, 등록금 인상에 대해 모두 "우리가 잘하고 있다"며 안심하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는 해외로 어학연수를 많이 가는 수요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국내 지역 곳곳에 특목고, 자사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추첨제를 도입한다면 국제중을 설립해도 과외와 같은 부작용이 없을 거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정책을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만 받고도 대학에 가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의 말은 교육 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실 '대학 진학'은 이 대통령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다. 스스로도 언급했듯 이미 대학 진학률이 86%에 육박하고 있고, 대학 정원이 입학생보다 더 많다. 문제는 '어느 대학'이냐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또 국제중을 둘러싼 사교육 과열 양상은 대통령이 즐겨보는 <조선>, <중앙>, <동아>의 광고 지면만 봐도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이들 신문이 앞장서서 입시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으니. '대통령과의 대화'를 보다 못한 한 언론인은 이를 두고 "위선인가, 무식인가"라고 꼬집었다.

답답한 현실 가운데 최근 부쩍 다시 바빠진 이가 있다. 지난 1996년 2대 민선 교육감으로 당선돼 한 번의 재선을 거쳐 2004년까지 8년 간 서울시교육감을 역임한 유인종(76) 건국대 석좌교수. 한동안 언론지면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던 그가 최근 여러 언론의 교육 기사에서,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한다. 시민단체들도 자꾸 그를 부른다. 대체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슨 이야기가 그리 듣고 싶은걸까.

지난 10일, 광화문 근처 한 사무실에서 유인종 교수를 만났다. 그는 마침 특강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왜 그들을 미워하나…다만 아이들이 걱정되기 때문"

▲ 유인종 건국대 석좌교수. ⓒ프레시안

"어제 (이 대통령이) 과외 없이 대학 가게 한다고 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대체 누가 장난하는건가? 밑에서 진행되는 건 전혀 엉뚱하게 나타나는데…."


인터뷰는 역시 하루 전날 있었던 '대통령과의 대화'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유인종 교수는 "알고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고서 그렇게 말하는지 대체 모르겠다"며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허허 웃었다.

유인종 교수는 교육감 재직 시절 인성과 특기를 중시하는 교육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일제고사 폐지, 수행평가 도입, 특수 목적고·자립형 사립고·영재학교 설립 반대 등 그의 정책 기조는 마침내 보수 언론들이 비판의 날을 세우는 원인이 됐다. 그러나 그는 8년 내내 이 같은 원칙을 변함없이 유지했다.

최근 그는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며칠 앞두고 기자 간담회를 열어 '반(反)전교조'를 강조하는 당시 공정택 후보를 비판하기도 했다. 교육감 선거에 색깔론을 들고 나온 자신의 후임이자 제자를 따갑게 질책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 교수는 자신이 공 교육감을 미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서울시교육감 시절 함께 일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다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걱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정부가 교육 정책에 노력을 기울이는 건 사실이다. 최근 재선된 공정택 교육감은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여러 정책을 들고 나왔다.

유인종: 후진국에서나 경쟁을 하지, 선진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현대 교육 이론 중 그런 교육을 뒷받침하는 건 없다. 추세가 기회균등이 정신이자 이념이니까. 그걸 흔히 말해서 과거에는 능력주의지만 지금은 평등주의라고 한다. 또 'ability(능력)'가 아니라 'potentiality(가능성)'에 교육의 촛점이 맞춰진다. 개개인의 소질 적성에 맞도록 길러줘야 된다는 뜻이다. 경쟁도 좋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하라는거다. 아이들은 자라야 된다.

프레시안: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된 이유는 뭘까.

유인종: 내가 보기에도 촛불 집회도 있었고, 젊은이들도 많이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책임이 없었던 것 같다. 결과를 봐라. 부자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투표했다. 말과 행동이 맞지 않았다. 설령 투표한 날이 평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떠들던 열의와 결과는 달랐다.

"어른들이 행복하면 아이들은 불행하다"

그는 한국의 교육이 올바른 해법을 찾으려면 세 가지 면에서 진단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는 해외 전문가들이 우리 교육 정책을 보는 눈, 또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교육 정책, 그리고 비교교육학적 측면이었다.

"얼마 전 워싱턴 DC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한 외국학자가 '한국의 교육 정책은 5년도 못 가서 바뀌어진다'고 지적하면서, 한 나라의 교육 정책은 '적어도 한 세대', 즉 30년을 내다보면서 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빨리 변화되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못 받는다고 했다. 또 한국 교육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학벌주의, 일등주의, 차별주의 같은 말이 나온다고 했다.

또 '경쟁'은 대학 이후에 해야 하는데 한국은 초등학교부터 경쟁을 한다며,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다고 강조하더라. 일반적으로 대학 이상에서 해야 될 일을 초중등학교에서 미리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또 필연적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교육을 한다는 것. 어찌나 정확하던지."


또 유 교수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학대당하는 교육'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촛불 집회에 나온 학생들이 '미친 교육'이라고 얘기했다. 그네들이 보기에도 '1년도 못 되는데 대입 제도가 바뀌네'라는 거다. 올해에도 영어몰입교육이 나오고, 바로 4.15 학교 자율화 조치가 나왔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미쳤다'는 말이 나오는거다. 정책이 좋냐 나쁘냐를 떠난 문제다."

그는 "외국 전문가나 우리 아이들이 보는 눈은 이른바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르다"며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교육은 '어른들이 행복한 교육'이지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른들이 행복하면 아이들은 불행하다"고 덧붙였다.

"왜 미국 교육의 목적을 거꾸로 해석하나"
▲ "역대 정부는 특목고 등으로 고3병을 다시 밑으로 내렸다. 중3병이 살아났다. 이번에 공 교육감은 초6병을 다시 도지게 하는 국제중을 만드려고 한다. 자꾸 역행한다는 뜻이다." ⓒ뉴시스

유인종 교수는 비교교육학적 관점으로 한 국가의 교육의 질을 평가할 때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세계적 추세, 두 번째는 현대 교육의 이론, 세 번째는 사회 현상에 관한 극복이었다.

"세계적 추세는 물어볼 필요 없이 '기회 균등'이다. 지금 미국의 방향은 잘못 해석된다. 그들의 정책은 'NCLB(No Child Left Behind·낙제학생방지법)'다. 즉 '기회균등'이 어떻게 실현되는가가 하나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 신문은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서 상위층만 가지고 얘기한다.

기회균등이 실현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게 교육의 보편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1등이다. 그러면 그 토대 위에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을 거꾸로 돌릴 순 없지 않나."

프레시안: 그런데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교육감은 미국 워싱턴CD의 한국계 교육감인 미셸 리를 극찬했다.

유인종: 그건 NCLB를 했다는 뜻이지 상위층을 위한 교육을 한 게 아니다. 왜 거꾸로들 해석하나. 워싱턴이 흑인가로 얼마나 유명한가. 그 아이들을 끌어올리겠다는 뜻이었다. 미국의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우리나라 교육 정책의 목적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나.

유인종: 사교육비 줄이기, 입시몰입교육 해방, 학벌 사회 타파는 우리나라 사회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교육의 핵심 문제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국6병(초6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1956년에 중학교 무시험 진학을 했다. 그 다음 중3병이 나와서 1974년에 평준화 했다. 그러다 자꾸 고3병이 문제가 되니까 입시제도를 15번을 바꿨다. 최소한 국6병, 중3병, 고3병 없애자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였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특목고 등으로 고3병을 다시 밑으로 내렸다. 중3병이 살아났다. 이번에 공 교육감은 초6병을 다시 도지게 하는 국제중을 만드려고 한다. 자꾸 역행한다는 뜻이다."

"제도는 자식을 낳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흐르는 물을 역행하려는 시도처럼 어차피 실패할 것이 뻔한데, 그런 정책을 속속 집행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5년 뒤에 다시 누가 들어서더라도 고치려 할테지만, 너무 힘들 것"이라며 "그게 억울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제도는 자식을 낳는 것과 똑같다. 죽일 수가 없다. 내가 8년 간 특목고를 그렇게 애써서 서울에서 막아봤는데, 죽일 수는 없더라. 이미 하나의 계층화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교육 제도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영국은 의회에서 20~30년 논의를 한다. 모스크바 교육감은 구소련 당시 교육감이 계속 일을 맡았다. 교육의 일관성 때문이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하드웨어, 제도는 고치지 않고, 소프트웨어인 교육 콘텐츠를 바꿔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교육청과 교과부는 유 교수의 우려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재선에 힘입은 공정택 교육감은 국제중 설립, 고교선택제 도입 등 그간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갓 넘어 교과부는 정부 방침에 따라 학교를 자율화하겠다며 각종 조치를 철폐하는 '4.15 학교 자율화 조치'를 발표했다.

프레시안: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은 그런 제도적 개혁이 교육의 자율성을 높여 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유인종: 자율성과 공공성을 구분하지 못한다. 4.15 자율화 조치가 바로 그렇다. 아이들의 건강 문제는 철저한 공공성인데, 그런 건 자율이라고 하고, 정말 자율을 줘야 할 커리큘럼, 운영 방식, 아이들 교과목 선택, 두발, 교복은 또 억제한다.

1968년에 유럽이 대학을 개혁한 이유는 바로 공공성 때문이었다. 경제는 시장 경제를 하더라도 교육만은 공공성 때문에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지금도 당장에 교육청이 국제중을 설립하겠다고 하면 정부는 체크를 해야 한다. 그것이 공공성에 미치는 영향이 뭔지. 그걸 모르나.

프레시안: 최근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근현대사교과서 중 '좌편향'된 내용이 든 교과서를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유인종: 자꾸 넌센스같은 얘기를 하니까 문제다. 그건 역사학계에서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자꾸 나타나는데, 대체 누가 장난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어른들이 마음을 바꿔야 한다"
▲ 유인종 교수는 촛불 집회에서 '미친 교육'을 말하는 10대들이 교육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미래에 교육 환경이 바뀌어지려면 우선 어른들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그는 그래서 요즘 다시 바빠졌다고 했다. 유 교수는 "우리 아이들이 희생이 되고, 학부모들이 너무 고생을 한다"며 "그것이라도 좀 풀어줘야 되겠다는 뜻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외롭게 교육운동을 벌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의 난맥을 지켜보던 그는 최근 작은 책을 냈다. <한국교육의 리모델링>(교육과학사 펴냄)이 그것이다. 그는 한국의 교육이 전면적으로 '리모델링' 되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다고 했다.

프레시안: 촛불을 가장 처음으로 들고 나왔던 10대들이 어른이 되면 사회가 좀 바뀌어질까?

유인종: 그러겠지만 가능성이 크진 않을거다. 너무 이기주의로 자라서 그런다. 저렇게 경쟁하는데 인성을 키울 수가 있겠나. 입시 지옥은 알고 보면 도덕성을 말살하는 거다.

초등학교에서 수우미양가 성적표를 없애고 수행평가를 도입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고사를 하면 창의력이 다 죽어가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론으로 하는 도덕 교육이 다 없어졌다. 체험을 통해 배우라는 뜻이다.

프레시안: 흔히 '제자식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학부모의 태도도 자녀의 인성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유인종: 그게 바로 차별주의, 일등주의다. 외국에 지금 조기 유학 가는 이유가 뭔가. 10등 안에 못 드니까 가는거다. 첫 째는 사교육비, 두 번째는 10등 안에 못 드니까. 국제중 만들면 초등학생들이 다 유학갈 것이다. 그게 학부모들의 심리다. 결국 학부모의 교육열을 악용하는 일부 학원만 먹여 살리지 않나.

프레시안: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유인종: 어른들이 마음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고생했더라도 후대를 위해 마음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되어야지, 어른들이 행복한 학교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희망이 없다. 또 젊은 사람들도 행동을 하면서 교육 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켜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조건 아닌가. 그럴 때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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