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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지만 즐겁게…아줌마 '진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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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지만 즐겁게…아줌마 '진상'은 계속된다"

[인터뷰]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더 이상 아무도 촛불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 사회는 '절망'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미국산 쇠고기는 사실상 처음 조건 그대로 수입됐다. 두 번이나 국민 앞에 머리 숙였던 대통령은 이제 촛불 따위에 기죽으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를 호령하는 '상왕' 역할을 하고 있다.

민영화 정책, 감세 정책, 대기업 규제 완화 등 이명박 정부는 애초 계획했던 경제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 한 쪽에서 들리는 것은 서민의 곡소리다. 정부는 '9월 위기' 같은 것 없다고 강변하지만, 서민 경제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국방송(KBS), YTN은 이미 이명박 정부가 장악했다. 문화방송(MBC) <PD수첩>은 뭇매를 맞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8명의 수배자는 서울 조계사에 도피 중이다. 조·중·동 광고 중단 운동을 했던 이들,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하던 누리꾼을 향한 검경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다.

100일이 넘게 계속된 촛불 집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이룬 건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이 100일 넘게 촛불을 밝힌 그들을 다시 만나 이 질문을 던졌다. <편집자>


"촛불을 들면 정치 집회라 안 된다네."
"그럼 아로마향초는 어때? 모기향은 괜찮지 않을까?"


지난 달 27일, 서울 광화문 근처 한 카페. 6명이 모인 테이블에서 오가는 대화는 종횡무진이었다. 끊기지 않는 건 웃음 뿐.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들이키던 음료수를 앞으로 내뱉는 식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이들은 72만 명의 회원을 지닌 인테리어 온라인 카페 '레몬 테라스' 회원인 동시에 촛불 정국 와중에 독립적인 온라인 카페로 출발한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세바여)'의 회원이다. 3000명이 훌쩍 넘는 회원 중 대다수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던 20~30대 여성이다.

촛불 집회에 열심히 참가했다고 해도 세바여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 미사에서 백합을 받아 들었던 이들이라면, 시국 법회에서 연등초를 받아 보았던 이라면, 집회 현장에서 나눠주는 수제 주먹밥을 먹어봤던 이들이라면 '세바여'와 한번쯤은 눈을 마주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정체'가 언젠가 한 번 신문 지면에 오르내린 일이 있다. 회원들이 농담으로 '쥐OO를 죽이고 싶다'고 올린 글과 댓글을 촛불 집회에 반대하는 한 온라인 모임에서 '대통령 암살 기도'로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들의 아이디가 선명히 보이는 화면을 캡쳐해 '대통령 암살 기도 카페가 있다'는 주제의 기사를 실었고, 30대 주부가 살인음모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이곳저곳에 실렸다.

그러나 댓글로 암살 기도를 하기에는 이들이 하는 다른 일이 너무 많아 보인다. 이들은 그간 기금을 모아 주먹밥, 연등 등을 만드는 것은 물론, 매주 정기적으로 <경향신문>, <한겨레>에 의견광고를 내왔다.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수입된 이후에는 '미국산 쇠고기 불매 장바구니'를 제작했으며, 불매 기업 리스트를 명함으로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종종 다른 단체에도 영감을 제공한다.

광고비를 마련하기 위한 다음 아이템 구상에도 바쁘다. 일단 현재까지는 촛불 집회는 물론 추운 겨울에 어디서든 요긴하게 쓰일 예쁜 담요를 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어디에서 이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일까.

"아이디어? 만담 하다가 나온 말인데…"
▲ 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백합을 나눠주고, 시국 법회에서 연등을 나눠준 이들은 소리없이 힘을 보탠 여성들이었다. ⓒ뉴시스

"비결이요? 만담이요."


왕성한 활동과 아이디어의 원천이 어디냐는 물음은 '박안나' 씨는 이렇게 답했다. 세바여의 운영진인 이들의 회의 공간은 주로 인터넷. 집에서, 또는 회사에서 컴퓨터를 켜면 자연스레 메신저로 인사를 하고, 그때부터 끊이지 않는 회의와 수다가 함께 이어진다.

"처음에는 일 얘기로 시작한다. 장바구니는 언제 나오는지, 다 파는 시기는 언제쯤이 될지…. 그러면 누군가가 '이명박이 죽기 전에' 이런 식으로 농담을 던진다. 진지한 얘기만 계속하면 힘들겠지만 이런 유머를 하는 여유도 있고, 또 남들이 안 하는 독특한 일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단 대부분이 여성이고, 다 살림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말이 통한다. 시댁 험담도 보고, 남편 흉도 보고, 요리 비결도 나누고…그러다가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들은 자신들의 회의 또는 대화의 특징을 '목적 지향형'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결론 도출이 빠르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즐겁고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회원 중에서는 좀 더 기민하게, 강경하게 활동하길 원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늘 이렇게 대꾸한다고 한다. "그럼 당신이 하세요."

회의를 통해 나온 제안은 게시판에 올려진다. 그러면 다시 회원들 사이에서 댓글을 통한 두 번째 회의가 이어진다. '박안나' 씨는 "장바구니 하나를 만들어도 100개 넘는 댓글이 올라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라며 싱긋 웃었다.

"<100분토론>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그럼 이들은 원래부터 이렇게 사회 활동에 왕성했을까? 답은 정반대였다.

"결혼 40일 남겨놓은 신부가 <한겨레>, <경향신문>에 광고를 내자는 제안을 실행하려고 카페를 개설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댓글을 달자 바로 운영진이 되더라."

'아디테' 씨는 지금도 때때로 '쫑알쫑알 게시판'을 보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지난 4월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막 끝났을 무렵, 그는 평소엔 들어가보지도 않던 자유게시판에 우연히 들어갔고, 회원들이 올린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정보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카페 내에서도 유명할 만큼 인테리어에 재주가 많은 그가 집에 리폼 재료 대신 주먹밥 재료를 잔뜩 쌓아놓고, <100분토론>에 드라마보다 더 재미를 붙일 줄은 그 자신도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하나를 알게 되니, 문제는 줄줄이 이어졌다. 민영화와 언론 장악, 조·중·동과 검찰의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점점 가만히 있기 힘들어졌다. 손재주가 좋은 아디테 씨는 주먹밥을 만들어 광화문 집회로 달려갔다. 여의도와 강남에서 이어지는 촛불 집회에 참석해 새벽까지 주먹밥을 나눠주는 일상이 세 달 가까이 이어졌다.

"부동산과 8학군에 관심있던 엄마들을 이렇게 만든 배후는 MB"
▲ "부동산과 8학군에 관심있던 엄마들을 나서게 만든 건 다름아닌 정부, 그리고 보수 세력이었다." 지난 6월 광고주 리스트를 올린 주부들을 '테러 세력'으로 몰고간 <조선일보>에 항의하기 위해 '82쿡' 소속 회원들은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

어떤 면에서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고맙기도 하다고 했다. 주부와 여성들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인테리어와 신변에 관한 얘기가 넘치던 카페에 '퍼온 기사'와 토론이 실시간으로 쏟아지게 만든 '배후 세력'이 다름아닌 이명박 정부라는 것. 세바여 이외에도 '82쿡', 유모차부대 등 여성들은 이번 촛불 정국의 핵심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전까지 엄마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사회 문제는 부동산과 8학군이었다. 다 자녀들 때문이었다. 자식 문제에 모든 걸 쏟아붓느라 다른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것 뿐이다. 그런데, 자녀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주는 먹는 문제가 터져버린거다. 만약 대운하가 자식 문제와 관련된다면 엄마들은 거기도 갈 거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공기업 민영화가 먼저 터졌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사태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먹는 것이라는 가장 밀접한 문제였기 때문에 사회에 정말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일어난 것이다."

"4월부터 레테에 계속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광우병 박사 학위 줘야 돼'라고 말했다. 론스타가 터지면 '이번엔 또 금융이야'들 하고. 내가 이정도 했으면 서울대 갔어라고들 한다."


"3보1회의 보다는 수다가 훨씬 낫더라"

수다와 웃음 속에서 이어진 활동 속에서는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에피소드가 많았다.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뿐 아니라 같이 밤을 새는 전경에게도 주먹밥을 나눠줬던 이들은 소위 '프락치'로 오해받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한다. 전경들과 격의없는 수다를 나누면서 간식을 주고,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기도 여러 번.

빈곤마마 씨는 "한번은 경찰 지휘관과 수다 끝에 인도에 있으면 잡아가진 말라고 말하고 확답까지 받았는데 부대가 교체되더니 인도에 연행을 하더라"며 "너희 정말 경찰 맞냐고 꼬치꼬치 따져 물으니까 귀찮았던지 버려놓고 가더라"며 웃었다.
▲ 촛불 집회를 100일 넘게 이끌고 오게 만든 힘의 원천 중 하나는 바로 거리로 나선 여성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번 집회에서 새롭게 등장했던 '유모차부대'는 집회에 활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프레시안

이들은 차벽으로 설치한 경찰버스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지만 왜 남성들이 굳이 버스를 끌어내리려 진을 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디테 씨는 "남자들이 경찰에게 홧김에 시비는 거는데, 정작 진압이 들어오는 중요한 순간에는 온데간데 없더라"며 "오히려 스크럼을 짤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이들은 여성들인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비슷한 답답함은 남성 위주로 구성된 온라인 카페, 그리고 심지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서도 느꼈다고 했다. 결과를 중시하면서, 행동보다는 심각한 말을 이어가는 분위기. 이들은 이를 두고 '3보1회의'라고 불렀다.

"사회가 남성주의적으로 발전하다 보니까 수단의 즐거움, 과정의 즐거움을 자꾸 잊어버린다. 빨강머리 앤에 그런 말이 나온다. 나는 마라톤을 완주하는 사람보다는 가다가 주저앉아 길가에 핀 꽃도 보고, 예쁜 돌도 줍는 철학자가 되고 싶다고. 저희는 만담이 정말 즐겁다. 그 즐거움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거다."

"한번은 인터넷방송 좌담회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생방송을 생각하지 못하고 갔고, 그래서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름있는 여성학자가 와서 '영상물을 남기지 않으면 내가 여기에 온 의미가 없다'고 했다. 결국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은 생략한채 밀어붙이면 이명박과 다를게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들더라."


"200명이 알던 걸 1만 명이 알았다, 그리고 또…"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 그렇다면 지난 100일간 촛불이 이룬 것은 무엇이라고 볼까?

"4월 26일 첫 집회에 200명이 왔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1만 명이 넘었다. 촛불 후에 달라진 게 뭐냐고 물으면 항상 그것 먼저 얘기한다. 200명이 알고 있던 걸 1만 명이 알게 됐다고. 그건 의미와 파장 자체가 다르다. 또 집회와 시위 문화가 바뀐 점, 여성의 긍정적인 힘에 대해서 재인식도 물론 많은 사람이 체감을 못 하고 있지만 변해갈 점이라고 본다."

빈곤마마 씨는 희망의 징표 중 하나로 청소년을 꼽았다.

"친구들 따라서 나온게 아닌 친구들이 많았다. 각자 역사, 인권에 관심이 많다는 친구들을 집회에서 만났는데, 자기뿐 아니라 타인의 인권도 생각하고 있더라. 밤 새면 먹을 거 주고 재밌고, 흥미진진해서 나오는 애들도 있지만 진지한 애들이 분명 있고, 이들에게 힘이 있다는 것이다. 몇년 후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정치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우병 반대 현수막을 구입하려다 가입했다는 40대 남성회원 '늘푸른' 씨는 세바여 자체가 앞으로의 희망이라고 했다.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하던 20~30대 여성들, 가정 주부들이 사회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세대가 또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가족들도 알게 되지 않을까."

"싸우지 않고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 "과정이 즐거우면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트숍을 하나 만드는 거다. 이름은 'MB 아트숍'?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걸치고 먹는 것에도 메시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세상을바꾸는여자들

세바여의 즐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최근 경찰은 온라인 상에서 활발히 활동한 누리꾼들을 찾아내 집시법, 또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줄줄이 입건하고 있다. 이 기세라면 세바여 역시 언제 어느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를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빈곤마마 씨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귀찮게, 시끄럽게 하는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변화라는 건 누가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차근차근 계단식으로 이뤄지는 거라고 본다. 과정이 즐거우면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우리말고도 이런 곳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트숍을 하나 만드는 거다. 이름은 'MB 아트숍'?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걸치고 먹는 것에도 메시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남자와 똑같이 싸워서 이길 순 없다. 지금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정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도태시켜서 아무리 쇠고기를 수입해도 소용없게 만들어야 한다. 싸우지 않고, 무력화시키는게 여성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경찰이 정말 잡아들이려 한다면?

"위축되고 겁먹으면 상대방은 더 당당해진다. 오히려 내가 당당하게 굴면 상대방은 아무 말을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 경찰은 당당한 이들을 못 건드리더라. '아… 아줌마다'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지하철에서 가방 던지는 아줌마를 보듯 말이다. 아줌마 진상을 떠는 건 자신있으니까."

그때 아디테 씨가 경찰에게 당분간 가장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말을 들고 나왔다.

"일단 이렇게 외친다. 너희들 중에서 내 주먹밥 안 먹은 사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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