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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 룰루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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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 룰루를 부탁해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최근호에 실린 글임.) 내가 키우는 고양이 룰루(비데 이름이 아니고, 폴 오스터의 시나리오 '룰루온 더 브릿지'에서 따왔다)는 신기가 있는 고양이다. 그렇다고 뭐, 피터 게더스의 그 유명한 고양이 '노튼'같지는 않다. 노튼을 모르시는 분들은 게더스의 에세이 소설 <파리로 간 고양이><프로방스에 간 고양이><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를 읽지 않은 분들이다. 어쨌든 내 고양이 룰루는 집이 아니라 내 사무실에서 산다. 나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이 고양이는 사람들이 흔히 연상하듯 슬며시 다가와 부비고, 애교떨고, 앙증맞게 구는 적이 없다. 그저 배고플 때 와서 야오오옹~(나 밥줘어어~)할 뿐이다. 사무실에 온통 고양이 털 천지에, 오는 손님(특히 여자)들을 기겁하게 만들어서 늘 처치 곤란, 고민의 대상이다. 내 사무실은 안과와 한의원이 들어서 있는 낡은 건물 4층에 있는데, 어느 날 창가에 붙어 앉아 밖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고 있는 이 철학자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왼쪽 귀에서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오른 쪽 검지로 톡 밀어버려, 그럼 넌 고양이 털없이 깔끔한 사무실에서 살 수 있어.' 오른 쪽 귀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난다. '쟤도 안됐잖아. 너하고 살면서 대접이나 제대로 받았니 어디? 그러니 예뻐해줘.' 살짝 오른 손 검지를 들었다가 힘없이 내려뜨리며 나는 룰루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룰루야. 너 떨어져. 그러다 너 죽는다아~" 그러면 룰루는 나에게 얼굴을 돌리며 이렇게 말한다. "야아아오오오옹.(사실 넌 내가 죽기를 바라지?)"
고양이를 부탁해
자꾸 말이 늘어진다. 룰루가 신기가 있다는 건 이런 얘기다. 너무너무 털이 빠져 견딜 수가 없을 때면 나는 고양이를 옥상에 데려다 놓는다. 먹이통도 옮기고 변소도 옮긴다.(고양이는 꼭 모래가 든 변소가 따로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사무실이 한결 개운해진다. 어떤 때는 마음도 개운해진다. 어머니가 전화로 하시는 말씀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그까잇 고양이 뒷산에 풀어 버려!" 그런데 그렇게 편한 마음도 잠시다. 옥상에 올려 놓은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으면 정말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동안 안오던 비가 고양이만 옥상에 올려 놓으면 와르르 떨어진다. 그러면 나는 부리나케 옥상으로 올라가 룰루 다시 내려놓으랴, 밥통 다시 옮기랴, 변소 옮기랴 부산을 떤다. 그럴 때마다 룰루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요년의 고양이'가 옥상에서 마치 기우제를 드린 것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있지 않은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단을 세우고 두손 모아 천지신명께 빌어 바람의 방향을 바꿨다는 그 전설. 요 고양이가 내가 옥상에다 지를 갖다 놓고 내려가면 바로 앞발을 모으고 하늘에 대고 기도를 올리는 모양이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주인이 나를 다시 데려가게 비를 내려주옵소서. 태풍 갈매기가 오기 전날에도 룰루를 옥상으로 옮겨놨었다. 그게 금요일이었고, 토요일 새벽, 나는 우르릉꽝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다. 앗 고양이! 그리고 부리나케 사무실로 달려가 옥상으로 향했다. 시간을 보니 아침 6시였다. 옥상 문을 열자마자 룰루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세게 기도를 드렸거든'하는 표정으로. 아, 이놈의 고양이같으니라구.
적벽대전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이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는 것을. 사무실로 가는 대신, 룰루를 차에 태웠다. 병원으로 갔다. 15만원을 들여 종합검진을 시켰다. 그리고 큰 맘먹고 주변 사람을 소개받아 이틀 후, 룰루를 보냈다. 남은 사료를 챙기고, 먹이통을 넣고, 변소와 이것저것 사물을 챙기면서 속으로 자꾸 같은 말이 떠올랐다. 아 쓰발 다시는, 다시는 고양이든, 인간이든 사랑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정붙이지 않을 거야,라고. 룰루가 새 주인과 잘 살게 될까? 이름은 바뀌었을까? 고양이를 부탁할 자격이 내게 있기나 한 걸까? 근데 왜 영화 지면에 잔뜩 고양이 얘기냐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과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천지차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것과 영화를 '키우는 것' 역시 엄청난 차이다. 고양이 주인으로서든, 저널리스트로서든 사는 건 다 똑 같은 원리다. 이번 주 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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