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그럼요. 이게 직업인데….재미 없으면, 학생들이 안 모이잖아요."
그러면서, 손을 입가로 당겨 새가 부리를 재잘거리는 모양새를 흉내 낸다.
"하긴, 역사가 참 재미있는 학문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역사학과에 학생이 잘 안 모여요."
"아무래도 취업이 잘 안되니까 그렇죠. 그래서 요새는 이름 바꾸는 게 유행이래요. '역사 콘텐츠 학과', 이런 식으로요."
"텔레비전에서 사극이 뜨니까, 그런가. 드라마 작가 양성하는 학과로 홍보하려는 건가보죠."
"글쎄요. 어찌됐거나, 학문을 꼭 취업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게 슬픈 일이죠. 노르웨이에서는 취직이 잘 된다는 이유로 전공을 고르는 일은 드물어요. '재미'가 중요하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최대한 재미있게 가르쳐야 해요. 다행히, 역사학을 재미있어 하는 학생들이 꽤 있어요."
"부럽네요. 한국에선 취직 잘되는 학과가 인기학과인데…."
잠시 대화가 멎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쯤에서 누구와 나눈 이야기를 옮긴 것인지 알아챘을 게다. 단서는 '노르웨이'다. 대화의 주인공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 교수다. 박 교수가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을 찾았다.
"취업 때문에 재미 없는 공부를 하다니…"
뙤약볕이 내리쬐던 제헌절 오후,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만난 박 교수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프레시안>이 삼성에게 소송당한 이야기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논란까지.
이야기의 박자에 맞춰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와 신촌 거리를 거닐었다. "재미있는 전공에 학생이 몰린다"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들었는데, 하필 토익 교재를 품에 안고가는 대학생이 눈에 툭 들어왔다. '저 학생은 토익 공부가 재미있을까?' 붙잡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답은 뻔하다. 토익 공부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박 교수의 말마따나 공부는 원래 '재미'로 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가 '박노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대학에서 접한 한국어 고전이 준 '재미' 때문이었다. 하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것도,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취업을 위한 게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종종 잊고 지낸다.
문득, 박노자 교수를 만난 보람이 여기에 있다 싶었다. 잊고 지내던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
"이 정도 규모 시위가 이처럼 평화적이었던 적이 또 있나?"
'학문의 재미'라는 표현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대학 거리에서 박 교수와 찻집에 들어갔다. 그를 만나기에 앞서 준비한 이야깃거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촛불, 나머지 하나는 독도. 둘 다 집단적 열정과 관계있는 주제다.
물론, 박 교수의 반응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의 블로그에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촛불집회에 대해 변호하느라 바쁘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 있다. 그는 시위의 폭력성 논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평화시위를 하라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최근의 촛불집회에 대해 "몇 명의 전경과 보수신문 취재 기자에 대한 집단 폭행이라는 유감스러운 사태들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과거의 대형 시위와 비교했을 때에, 대다수 시위자들의 투철한 비폭력 의식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 정도 규모의 시위대가 반대 측에 이렇게 적은 수의 부상자를 낸 것은 한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부와 보수언론은 마치 시위자들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듯 그들에게 물리력과 언어를 통해서 폭력을 계속 행사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블로그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 국가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는 잘 알려져 있다.
그래도, 묻기로 했다. 독도 문제에 대한 호들갑스런 반응을 개탄하는 그가, 외국인들에게 종종 민족주의적 열정의 발산으로 비친다고 알려져 있는 촛불집회를 어떻게 '변호'했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서다.
"촛불, '중산층 이데올로기'를 넘지 못했다"
역시나 그의 대답은 유창했다. 그리고 긴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계급'이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든 시민들이 분노를 쏟아낸 대상은 위험한 먹을거리를 사도록 꼬드긴 미국이라기보다, 시민을 경제 성장을 위한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정부였다. 재벌이 휴대폰과 자동차를 파는데 도움이 된다니까, 시민의 입에 들어가는 먹을거리는 위험해도 상관없다는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석 달 가까이 촛불을 들면서, 시민들은 이 정부가 결코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현 정부가 탄생하도록 표를 몰아준 다수 노동자, 서민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다. 이런 깨달음은 정부가 소수 재벌과 부동산·금융 자산가의 이익을 위해서만 부지런할 뿐이라는 인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런 과정은 조금씩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진다.
촛불의 한계에 대한 답변도 결국 '계급'이었다. 그는 촛불이 중산층 이데올로기를 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축제'로서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비정규직은 왜 촛불 속에서 고립됐나"
"촛불집회는 축제였다. 시민의 가슴에 쌓여 있던 불안과 공포가 녹아내리는 자리였던 동시에, 억눌렸던 욕망이 분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철저히 중산층 중심의 의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왜 광우병 위험에 대해 분노하는 그들은 KTX 여승무원과 기륭전자,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는 지지와 관심을 쏟지 않았을까. 촛불을 들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광우병 문제는 자기 문제이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문제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제 근거가 약하다.
이미 비정규직의 수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넘었다. 쇠고기 급식을 먹고 자식이 광우병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부모들은 머지않아 자식 세대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도 20대의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촛불의 물결 속에서도 KTX 여승무원과 기륭전자,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은 계속 고립됐다. 몹시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랜드 노조 위원장 "촛불은 아름답지 않았다"
실제로 이랜드 여성 노동자의 파업 1주년을 맞은 지난 6월 23일, <프레시안>과 만난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은 "광화문을 뒤덮은 촛불의 물결을 보며, 절망했다"라고 말했다. 자식의 먼 미래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직장에서 쫒겨나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이웃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광화문 뒤덮은 촛불 물결 보며 절망했다")
당시 그는 촛불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한 조합원이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다.
"전기가 끊겨 아이들이 촛불을 켜놓고 공부한다고 했다. 엄마한테 외려 그 아이들이 '엄마, 텔레비전도 안 나오고 컴퓨터도 안 되니까 집중이 잘 돼'라고 했다고…. 촛불만 보면 그 얘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촛불을 차마 못 켜겠다."
"총파업, 더욱 강력한 총파업"
박 교수와 이야기하다, 당시 인터뷰를 떠올렸다. 그쯤에서 박 교수는 "총파업, 더욱 강력한 총파업"이라고 중얼거렸다. 이어 나온 이야기다.
"(촛불정국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역할이 중요했다. 시늉만하는 파업이 아니라, 실제로 공장을 멈추는 파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총이 보인 모습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강력한 총파업을 통해 노동운동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 이데올로기를 깨고, 계급적 의제를 부각시켜야 했다.
어차피 중산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비정규직이 늘었다.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을 외면하면서 쇠고기 문제에만 관심을 쏟은 중산층 부모들은 곧 가처분 소득이 확 줄어드는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중산층이 계속 늘어나던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재단하면 안 된다. 사회 양극화를 비롯한 계급적 의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
"재벌 덩치는 커졌는데, 소비자 주머니는 비었다…결론은?"
그는 늘어나는 빈곤층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득은 줄고, 고용 상태는 더 불안정해졌다. 미래는 불안하기만한데, 물가는 계속 오른다. 시장에 나가서 주머니를 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긴, 주머니를 털어봤자 나오는 것도 없다. 이쯤에서 툭 튀어나온 말. "그런데 재벌은 점점 더 몸집을 불리고 있죠."
익숙한 장면이다. 거대 기업은 계속 상품을 쏟아내는데, 국내 시장에서는 팔리지 않는다. 소비자의 대부분은 노동자인데, 미래가 불안한 그들은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니,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형편이 어려워진다. 결국, 국내에서는 거대 기업이 파는 상품을 살 사람이 거의 없다. 나라 밖에서 시장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100년쯤 전에, 유럽 국가들이 겪었던 일이다. 이들 나라들이 내몰린 길은 공황과 파시즘, 전쟁이었다. 이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제국주의'다.
나라 안팎에서 '아류 제국주의 모델' 따르는 한국
박 교수는 "한국 역시 '아류 제국주의 국가'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경영하는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이미 여러 면에서 제국주의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 아시아 곳곳에서 한국 재벌들은 이미 수탈자의 이미지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몽골과 동남아 등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이미지도 비슷하다. 결코 '약자'가 아니다. 현지 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쪽에 가깝다. (☞관련 기사: "'삼성 식 경영'은 세계화될 수 없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숱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도 얻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 한국인들은 인종적 편견을 갖고 이들을 대한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 국민들이 식민지 백성을 대하는 태도와 꼭 닮았다.
"'우리는 피해자니까'라는 논리는 이제 안 통한다…내면화된 '강자의 논리' 경계해야"
"한국이 아류제국주의 국가가 되고 있다"는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고구려에 열광하는 대중문화도 그 중 하나다. 고구려는 강한 군사력을 가진 정복 국가로 종종 묘사됐지만, 이제 이런 묘사가 낳은 부작용을 걱정할 때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조선문학사>, <조선문명사> 등의 저서를 남긴 역사학자 안확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고구려 무사'의 이미지는 주로 안확의 연구 성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활을 잘 쏘는 주몽을 '북방 무사의 모범'으로, 연개소문을 '고구려 말기의 가장 뛰어난 무사'로 평가했던 안확의 이론은 이기백, 이병도 등 주류 사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한국 역사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런 상식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은 전투적인 고구려 무사를 이상화하는 민족주의적 역사학을 통해 종종 자기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은 더 이상 식민지 국가가 아니며, 오히려 아시아 곳곳에서 수탈자의 이미지로 통하는 나라다. "우리는 피해자니까"라는 논리가 통하던 시절은 지났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강자에게 짓밟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된 '강자의 논리'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정복국가'를 무턱대고 이상화할 시기는 지났다는 뜻이다.
박 교수가 안확의 이론을 재검토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내면화된 고구려의 이미지를 되돌아보기 위한 첫 작업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아류 제국주의'
이쯤에서 떠오르는 책이 있다. 우석훈 박사가 쓴 <촌놈들의 제국주의>다. 이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석훈 박사는 삼족오 깃발을 든 고구려 무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이 책을 썼다. (☞관련 기사:"건설족 내버려두면, 전쟁 난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요"라고 툭 던졌다. "맞다. 그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연스레 화제가 <촌놈들의 제국주의>로 옮아갔다. 박 교수의 생각은 대부분 <촌놈들의 제국주의> 내용과 일치했다.
하긴, 용어도 비슷하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는 표현에서 '촌놈'은 지방 사람을 비하하는 뜻이 아니다. 제국주의 중심 국가 흉내를 몹시 내고 싶어 하지만, 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을 뜻한다. '아류 제국주의'라는 표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박 교수의 생각이 우 박사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크게 엇갈렸다.
"'북한 내부 식민지론', 설득력 약하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우석훈 박사는 한국 재벌과 정치 권력이 북한을 내부 식민지로 삼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우 박사는 이 책에서 "다른 먼 나라에 외부 식민지를 갖기 어려운 한국 자본주의 입장에서 북한만큼 만만한 식민지가 또 있을까? 중국보다 가깝고, 동남아보다 임금이 싸고, 아프리카보다 훨씬 양질의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북한을 식민지로 전환시키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인(?) 눈으로 볼 때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라고 적었다.
그런데, 박노자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 재벌에게 북한 투자는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라는 것. 박 교수는 "안정적인 이윤이 보장되는 투자라면, 삼성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윤 앞에서 늘 기민한 모습을 보였던 삼성이 대북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 자본, 북한 노동자 쥐어짜 얻은 이윤을 북한 관료와 나누려 할까?"
박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대북 투자는 높은 이윤을 거두기 힘들다고 본다. 북한은 기업 활동을 위한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다. 물론, 인건비를 쥐어짜서 이윤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북한 관료 집단과 이윤을 나눠야 한다. 뇌물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 관료 집단의 협조 없이 대북 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이윤을 보장하기 어려운 북한에 한국 자본이 큰 매력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북한은 중국에 예속되는 길을 택할 게다. 지금도 북한은 식량을 자급하지 못한다. 부족한 식량을 대주는 곳이 중국이다. 한국 자본은 북한 체제를 인수하는 비용에 대해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 체제를 인수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천황제 폐지' 주장하는 일본 공산당, 독도 문제에선 우익과 마찬가지"
동북아시아 3국 사이에서 일어날 정치적 지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상처 입은 역사를 갖고 있는 한·중·일 3국이 이런 지진 앞에 노출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게다가 이들 3국은 모두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영광'을 떠올리며 흥분하는 한국, '중화 제국주의'의 추억을 다시 끄집어 낸 중국, '패배의 기억'을 씻고 싶어 하는 일본이 부딪히면 재앙은 뻔하다. 이미 경고음은 울리고 있다. 독도 문제다.
박 교수는 "국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본 정부가 인기 회복을 위해 독도 문제를 꺼냈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보수 세력이 걸핏하면 색깔론을 들먹이듯, 일본 보수 세력은 영토 문제를 통해 대중의 의식을 마취시킨다는 설명이다. '좌파'인 그에게 '영토 민족주의'는 불편한 화제다. 표정 위로 허탈한 웃음이 번졌다.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일본 공산당이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몸을 사린다. '영토 회복'이 그들의 공식 입장이다. 물론, 좌파가 패권적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답이다"
영토 문제에 대해선 일본 좌파가 우파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긴, 한국도 비슷하다. 민주노동당이 독도 문제에 대해 취한 태도는 보수 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서 이익을 얻는 쪽은 일본과 한국의 보수 세력이다. 진보 세력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박 교수의 대답은 명료했다.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선, 한국과 일본의 진보 세력이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EU(유럽 공동체)와 비슷한 동아시아 공동체를 꾸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한·중·일 3국 사이의 갈등이 위험 수위 안쪽에서 조절될 수 있다. 이런 공동체가 꾸려지면, 영토 문제가 감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아진다. 노동시장이 통합된 상황에서 민족적인 감정다툼이 생기면, 기업 활동이 어려워져서 자본에게도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영토 문제를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려는 시도도 잦아들게 된다."
"한·중·일 젊은이들이 평화 위해 손 잡아야"
'동아시아 공동체'는 우석훈 박사의 <촌놈들의 제국주의>에도 나온다. 이 책에서 우 박사는 한·중·일 3국 사이의 갈등이 점점 더 고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을 풀 유일한 해법은 이들 3국의 청소년들이 쥐고 있다고 했다.
갈등이 임계치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이들 청소년들이 기성세대가 돼 사회를 주도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3국의 젊은이들이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라는 열정을 내면화하는 게 파국을 막는 열쇠라는 설명이다.
우 박사는 유럽연합의 대학생 교환 프로그램은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 젊은이들은 민족 패권주의적 선동에 흔들리지 않는 힘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힘은 한·중·일 3국 젊은이들에게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직장 없으면 사람 대접 못받는 나라, 한국"
박 교수와 이야기를 마친 다음 날, 그의 블로그를 찾았다. "자전거형 사회 경제"라는 글에서 박 교수는 1990년대 한국에서 만났던 대학생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내용은 이렇다.
"제가 1990년대에 본 한국 대학생들이 대개 미래를 낙관적으로 봤지요. 이유는 하나이었지요. 아무리 여러 고충이 있어도 대졸에게 직장이 거의 보장되다시피 했기 때문이고, 직장 가진 이는 신분 상승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지요.
저와 1991년대에 친했던 고려대 학생 중에서는 여학생까지 포함해서 취직이 안 된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1997~2000년 사이에 가르쳤던 경희대 러시아어과 학생만 해도, 다소의 중간 고충들이 있어도, 결국 저와 연락이 닿아 있는 이들은 다 취직됐어요. 그 중에는 절반 가까이 전공까지 살렸으니 기적 같은 일로 보이지요. 거의 다 결국 정규직이 된 것입니다. 물론 IMF 때는 당분간 취직이 안 되고 1~2년 놀거나 몇 년간 학원에서 가르치는 등 불안한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1990년대 말기만 해도 아직 '절망의 시대'는 아니었지요.
대졸에게는 정규직으로서의 취직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만큼은 잔혹한 군대, 자기 부담 위주의 의료서비스, 국가적 보장이 없는 노후 등이 다 크게 인식되지 않았더랍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어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요? 86%가 대학생이 되는 오늘날에는 '대졸'은 대한민국의 젊은이의 별칭일 뿐이고, 다수의 대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정규직 취업을 기다리는 매우 긴 '대기 기간'이나 비정규직으로서의 미래 없는 인생이지요.
미래가 없는데다가 월급마저도 생계 유지선을 겨우 넘으니 없다시피한 공공의료, 노후 보장, 실업 급료에 대해서 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고성장 시대에, 비교적으로 풍부했던 취직 가능성은 복지의 부재(不在)나 사회의 전체적 낙후성을 어느 정도 보상했습니다.
그러나 취직이 '별 따기'가 된 저성장의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직장'이 없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유럽과 달리-인간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수많은 이들에게 실감되기 시작했지요. 사실, 촛불 집회와 같은 대중적 저항 운동의 발생은 이 부분과 결코 무관하지가 않아요."
'선동의 정치' 막기 위해 '학문의 재미' 되찾자
'직장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지적이다. 이런 곳에서 취업 가능성이 전공을 고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학문의 재미'는 사치스런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적 선동은 정신의 사치가 허용되지 않는 곳에서 주로 창궐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은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다.
독도 갈등을 이용해 감정 다툼을 선동하는 이들에게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학문의 재미'를 되찾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노르웨이에서는 '재미'가 전공을 선택하는 기준"이라는 박 교수의 말이 신촌 거리를 메운 대학생들 위로 자막처럼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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