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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강철중 좀 보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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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강철중 좀 보내 줘!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35호에 실린 글임.) 종로 경운동 노인회관 입구에는 더운 날씨에도 떡볶이와 어묵, 튀김을 파는 노점상이 있다. 이런 날씨에 누가 저걸 먹을까 싶어도 이 포장마차 아주머니, 기를 쓰고 장사를 한다. 웬일일까, 이 아줌마가 눈에 띄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단속이 뜨는 날이다. 어느 날, 나도 미친 놈이지 이런 날에 그렇잖아도 땀이 많은 놈이 떡볶이를 먹겠다며 뻘뻘거리고 있는데 울고 있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 왔다. 짐짓 모르는 척, 쾌활한 척, 아줌마에게 물었다. 올해 몇이시래요? 육십하고…여덟이유. 하이고 진짜루요? 60도 안돼 보이시는데요? 너스레를 떨었다. 왜 우느냐고 물어봐야 뻔한 얘기 아니겠는가. 아줌마가 떡볶이를 한주걱 더 내 그릇에 얹힌다. 흐이그, 나 더 못먹어요,하자 아줌마가 빨리 다 걷어치우고 들어갈라고 그라요 한다. 말문이 트이자 아줌마는 이말 저말 한숨으로 잇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이날 나온 시간은 오전 10시. 단속반이 나와서는 2시부터 일을 하라고 했단다. 하지만 2시는 무슨 2시, 아줌마는 4시까지 꼼짝 못하고 골목에 있는 창고 안에서 버텨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어서 우시는구나,라고 물었다. 아줌마가 다시 한숨섞인 소리로 말했다. 서러워서 그라요. 힘든 게 아니구.
패스트 푸드 네이션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만든 발군의 영화 <패스트 푸드 네이션>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쇠고기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다른 얘기 다 집어치우고, 이 영화에서 쇠고기 가공 공장에 취직한 멕시코 불법이민여성 실비아가 우여곡절 끝에 소의 콩팥을 들어 내는 파트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는 장면에 대해서만 말해 보자. 이 콩팥 분리 파트의 일은 쇠고기 공장에서 가장 힘들고 역겨운 것으로 손꼽힌다. 모두들 여기만을 안가기를 바라지만, 그나마 꼭 일을 잡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실비아는 공장장에게 몸을 주면서까지 이 일을 맡게 된다. 공장장은 아주 작은 권력자에 불과하지만 같은 계층 이민자들에게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인간이다.(그런 인간이 더 나쁜 놈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실비아는 스테인리스 소재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의 내장을 쳐다 보다가 주루룩 눈물을 흘린다. 소의 내장들이 몸서리쳐질 만큼 징그럽고 무서워서일까? 아니면 손을 대기 두려울 만큼 더럽고 비위생적이어서일까? 결코 그런 이유가 아닌 것이다. 실비아는 자신이 처한 삶이, 어쩌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결국 내장 한움큼이 돼 처리되는 소들처럼 사육되고, 도륙되는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건 두렵고 힘들어서가 아니라 서럽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인 것이다.(프레시안 7월2일자 '더 이상 사람들을 쇠고기 취급하지 말라, <패스트 푸드 네이션>에 담긴 쇠고기의 정치학' 참조) 얼마 전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버스요금을 70원이라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정치인인 만큼, 그것이 어떤 내용이 됐든, 화제를 모은 것을 가지고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실로 오랜만에 가슴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진정한 분노를 느꼈다. 다른 기자 동료가 그런 얘기를 했다. 거 참 700원이라고만 했어도 용서를 했을텐데.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난 그래도 결코 용서하지 못했을 거야. 그 친구가 물었다. 왜? 그럴 수도 있잖아. 나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냥 돈이 많은 사람일 뿐이라면 용서할 수 있어. 근데 그 사람은 언젠가 대통령이 되겠다며? 계속해서 정치를 하겠다며? 여전히 달동네에 속하는 신림동, 봉천동 사람들의 표를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라며? 그러면 절대로, 절대로, 버스요금가지고 장난치면 안되는 거 아냐?! 그런 정치인들일수록 포장마차의 아줌마가 우는 걸 보면 그저 노동이 힘들어서라고 할 것이다. 시청앞 촛불시위를 보면 사람들이 값싼 미국산 소고기를 먹는 걸 싫어할 뿐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패스트 푸드 네이션>같은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소고기 도살 장면이 무서워서 우는 것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렇게 현상만 알고 본질을 모를 것이다. 얼마 전 촛불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선배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웬일로 현장에서 전화를 다 하시냐고 물었다. 그 선배가 말했다. "여기, 강철중 좀 보내줘!" 아 그럴 수나 있었으면. 강철중이라도 보낼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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