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부와 불교 승려가 함께 손 잡고 시국 미사를 진행한 다음날인 1일 오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근 목사, 수경 조계종 교육원장, 김병상 몬시뇰,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등은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선언했다. 이어 이들은 종교계와 학계 인사 32명이 서명한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10대 청소년들이 거둔 승리…이명박의 사과는 모두 거짓이었다"
이들은 이날 회견문에서 "지난 5월 2일 이후 쉼 없이 계속된 촛불집회의 맨 앞줄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있었다"라고 지적한 뒤, "그들은 과감하고 분명하게 행동으로 나섰을 뿐 아니라 이전의 세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집회문화와 시위문화를 일거에 바꾸어 놓았다"라고 지적했다. 인터넷과 결합된 다양한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서 시위를 거대한 축제로 바꿔놓았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들은 "이것 자체가 이미 국민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명박 정부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기보다 나라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이나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듯했지만 모두 거짓"이었다는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 시민의 성취에 흠집내는 일에만 몰두"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아예 작전을 짜듯 색깔론을 입히고, 80년대식의 폭력적 진압으로 평화롭게 진행되던 촛불집회의 폭력화를 유도하고 있다"며 "지난 60일 동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평화적으로 촛불집회를 지속해온 우리 시민들의 경이로운 성취에 흠집을 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촛불시위가 놀라운 창의력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반면, 이명박 정부는 한 세대 이상 뒤떨어진 정부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라는 게 이날 선언에 동참한 지식인들의 판단이다.
"'교육 정상화', '언론 장악 포기' 요구에도 귀 기울여야"
그리고 이들은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요구가 단지 쇠고기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은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며 "'촛불'이 제기한 '교육의 정상화'와 '정권에 의한 언론 장악 기도 포기' 등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民無信不立(민불신불립)"이라는 문장을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에 담아두도록 권했다.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승리의 열쇠 쥔 것은 대통령이 아니다…저들의 술책, 웃어넘기자"
이어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하며, 오는 7월 5일을 '국민승리를 선포하는 대축제의 날'로 선포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의 승리를 결정짓는 것은 "정부와 대통령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시민들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이 승리를 훼손하려는 갖가지 시도와 작전을 우리가 꿰뚫어보고 웃어넘길 수 있으면 저들의 술책은 힘을 잃는다"라고 지적했다. "구시대적 폭력과 폭압으로 나선 정부의 자해행위에 말려들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7월 5일 집회, 창의적 발상과 유머가 넘치는 감동적인 축제의 장으로 만들자"
이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비폭력 평화의 정신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면 된다"며, "발랄하고 유머에 넘치며 갖가지 창의적 발상으로 우리가 함께 일구어온 이 새로운 문화를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지켜낼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런 호소와 함께 이들이 제시한 구체적 방안은 오는 7월 5일 촛불 집회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들은 "7월 5일을 국민승리를 선포하는 대축제의 날로 만들자"며 "지난 6월 10일에 못지않은 대규모 인파가 전국 방방곡곡에 모여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이며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이들의 회견은 "그동안 촛불시위에서 확인됐던 민주시민의 성숙성과 헌신성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과시하자"는 호소로 끝났다.
다음은 이날 선언에 동참한 인사들의 명단이다.
▲종교계: 김상근 (목사), 유경재 (목사), 청화 (조계종 교육원장), 지선 (전 백양사 주지), 명진 (봉은사 주지), 수경 (화계사 주지), 김정각 (미륭사 주지), 도법 (생명평화),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김현 (원불교 광주전남 교구장), 김광준 (성공회 교무원장), 김병상 (몬시뇰), 김승호 (대전교구 신부)
▲학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이석영 (전북대 명예교수),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법조계: 한승헌 (변호사), 최영도 (변호사)
▲여성계: 이효재 (여성학자),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송보경 (서울여대 교수), 조화순 (목사)
▲언론계: 임재경 (원로 언론인),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
▲시민사회: 오재식 (아시아교육원 원장), 박재일 (한살림 회장), 정성헌 (남북 강원도교류협력회 이사장), 원경선 (평화원 공동체원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