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미소를 띤 한 과학자가 말한다.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들 얘기하지요. 천만에요. 지구는 괜찮을 거에요. 끝내 살아남을 거에요. 멸망하는 건 인류지요. 인간이 멸종되는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자꾸 지구가 없어지는 것처럼 얘기하지요. 어쩌면 인류가 빨리 사라져 줘야 지구가 더 빨리 살아날 수 있을 거에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과 나레이션을 맡은 환경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 The 11TH Hour>은 또 다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작품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과 다른 지점에 서있는 작품이다. <불편한 진실>이 지구 환경에 대한 경종과 새로운 인식에 대한 작품이었다면 <11번재 시간>은 생태에 대한 철학과 삶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것들이다. 또 다른 과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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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째 시간 |
"우리 인류의 역사는 너무 짧아요.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건 사실이에요. 지구 생명을 캘린더로 파악할 때 시작이 1월1일이었다면 지금은 12월31일이죠. 그것도 15분전 0시에요. 그런데 그 1년의 역사 가운데 인류의 역사는 60초 전에 시작된 것에 불과해요. 그런 인류가 지구를 지금의 상태로 몰아 넣은 셈이지요." 내용을 너무 자세하게 애기하는 것 같지만 하나만 더, 영화속 증언을 소개하면 이렇다. "지구 온난화 문제도 중요합니다. 심각한 대기 오염의 문제도 중요하죠. 삼림파괴 현상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죠. 하지만 이런, 하나하나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태도에요. 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앞엣 것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습니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진실>이 강의식이고 토론식이어서 다소 주입식이라는 느낌을 줬다면 이번 다큐 <11번째 시간>에서는 대화와 설득, 생각을 공유하려는 자세가 느껴진다. 전자가 이성적인 작품이라면 이번 후자는 일종의 '감성 과학'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따뜻한 다큐멘터리다. 그래서일까. 환경운동의 모토인 휴머니즘의 정신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다큐를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살짝 눈물까지 난다면 믿어지겠는가. 진실의 힘은 위대함을 넘어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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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째 시간 |
할리우드 최고의 셀리브리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미간을 약간 좁힌 채 중간중간 스크린에 나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하는 장면도 좋다. 단순히 디카프리오여서 좋은 게 아니라 디카프리오가 '이런 일'에 앞장서서 좋아 보인다. 스티븐 킹의 기계음 육성은 마치 신의 목소리가 대변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제 좀 제발 정신들을 차리라고 걱정하는 목소리 같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좀더 말년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와 환경문제를 얘기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제임스 울시 같은, 오히려 냉전과 군비 확충을 주장하며 환경파괴에 앞장 설 것 같은 전 CIA 국장이 이건 정치적인 문제라며, 강대국들이 펼치고 있는 오일 폴리틱스(oil politics)가 결국 문제라며, 진심으로 우려하는 표정을 지을 때 성큼 이 다큐의 진정성이 가슴 속을 파고든다. 50여명의 과학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 나간다. 다소 의도적으로 느껴졌는데 환경 대재앙의 모습은, 실사든 그래픽이든,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줄줄이 이어지는 인터뷰는 처음엔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들의 얘기에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갖는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요즘의 극장가 풍토상 <11번째 시간>은 언감생심 일반 개봉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해 칸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됐던 이 작품은 딱 1년이 지나서 DVD로 출시됐다. 이런 작품은 입소문의 힘으로 극장 상영을 다시 성공시켜야 한다. 소극적이나마 그것 역시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많이들 보시고, 많이들 소문내시고, 많이들 얘기하시길 바란다. (*이 글은 부산 동의대학 신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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