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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이 여기 오면 잡혀간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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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이 여기 오면 잡혀간댔어요"

[현장] '절제된' 촛불 문화제, 이래도 시비걸까?

봄 답지 않게 날씨는 쌀쌀했다. 높은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종이컵 하나로 둘러싼 촛불을 자주 꺼트렸다. 그러나 옆에 있던 이의 촛불을 나눠 다시 불을 켜는 모습은 오히려 주변을 더 훈훈하게 만들었다.

연휴가 지난 6일 저녁, 서울 청계천 소라광장과 여의도 산업은행 주변에서 각각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는 평화로웠다. 앞선 두 차례의 집회에 비해 참석 인원은 다소 줄었다. 청계천에 1500, 여의도에 9000여 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권력과 권력에 가까운 언론이 '인터넷 괴담'의 진앙으로 지목하는 중고등학생은 학교의 단속을 비웃었다. 대학생과 직장인, 가족 단위로 참가한 이들도 많았다. 분위기는 차분했다. 반미? 그런 거 없었다. 세련된 집회 문화는 정치적 집회로 변질되기를 은근히 기대했을지 모를 그들보다 한 수 위로 보였다. 구호도 전에 비해 좀 더 간결해졌다. "미친 소를 청와대로!"

"모두 아는 걸 한 사람만 모른다"

"교장 선생님이 방송으로 말했어요. 여기 오면 잡혀간다고, 가지 말라고."

청계천 소라광장. 지난 2일과 3일에 비해 중·고등학생의 참가가 대폭 줄어들면서 교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도드라져보였다. 서울 송파구 소재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라며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두 고등학생은 "급식이 걱정돼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런데 선생님들이 여기 나오면 경찰이나 교육청에서 처벌한다고 말했다"며 "애들도 무서워서 안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촛불문화제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도록 훈화지도를 하고 생활지도 교사들을 현장에 파견, 학생지도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의 발언은 교육청의 지시가 일선 학교에서 어떻게 전달됐는지 짐작케 했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또 다른 고등학생(서울 시내 고교 1학년)은 "집회 참가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별 말이 없었지만,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대부분 친구들은 오지 못한 것"이라며 "나는 오늘 원래 학원에 가는 날이어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중고등학생들과 20~30대 여성들이 주조를 이뤘던 앞선 문화제에 비해 중장년층 참가자도 꽤 많아졌다. 인터넷을 통해 문화제 소식을 접하고 나왔다는 백발이 성성한 한 참가자는 "젊은 애들이 한다고 하는데 부끄러워서 나왔다"고 운을 뗐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그는 "친구들끼리 둘러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이 한두번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영어몰입교육도 그렇고, 쇠고기도 그렇고, 우리나라를 위한 대통령이 아닌 것 같다"고 일갈했다.

양복을 입고 나온 김병수 씨(46)는 "오늘 처음으로 이런 행사에 참가해본다"며 "아내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번갈아가며 참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이 문제라고 느껴 참석했느냐'는 질문에 "그걸 설명해야 아나. 다 알고 있는 것을 한 사람만 모르고 있는데"라고 답하며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프레시안

"가해자는 1명, 피해자는 4000만"

이날 문화제 자유발언대 시간에는 여성들이 주로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을 세 차례의 촛불문화제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여대생은 "이명박 정부가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권을 박탈하려 하고 있다"며 "저렴한 미국산 소고기는 특히 급식과 도시락, 그리고 소규모 음식점 등에서 많이 쓰이게 될 텐데 일반 서민들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고 말했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한 40대 여성은 "지난 20년 간 자식들 키우느라 힘들었는데 이 아이들이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뇌에 구멍이 생기면 어떡하냐"며 "제발 대통령은 상식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은 "정말 답답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며 "온 국민이 다 아는 얘기를 대통령만 모르고 있는 게 너무 한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소고기를 수입하면 가해자는 1명이지만 피해자는 4000만 명이 된다"며 "절대 미국 소고기가 수입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경찰은 '인터넷상의 유언비어 유포행위'에 대해서도 위법 여부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유언비어 유포를 처벌할 마땅한 법 조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배후가 있는지 등은 좀 더 조사해봐야 나오겠지만 업무방해죄 등은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람이나 내용 등을 면밀히 확인해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날 문화제 참가자들은 "누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를 '불허'하고 참가자들을 사법처리하겠다고 겁주는 경찰이야말로 범죄 집단"이라고 성토했다.

'정부의 침묵'에 침묵하지 않기 위해

비슷한 시각. 여의도 국회의사당 방향과 윤중로 방향 인도에 질서정연하게 열 지어 앉은 약 9000여 명의 시민들도 질서정연하게 집회를 이어갔다. 여의도 행사는 '안티 이명박 카페'에서 주관했다.

청계천의 분노가 단상에서 표출됐다면 여의도는 침묵의 항의였다. 박노해 시인이 '촛불아 모여라'라는 시를 낭송한 정도 외에는 경찰의 우려와 달리 정치적인 구호는 없었다.

단상에서 누군가가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치자고 하자, 참가한 시민들이 여기저기에서 "우리는 정치 구호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따라하지 말자"고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참가자들 중에서 마스크에 까만색으로 'X' 표시를 한 무리도 눈에 띄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문화제에 참가한 관악구에 사는 최 모 씨(32. 직장인)는 "마스크는 침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자는 침묵의 의미를 "수면 아래서 (쇠고기 협상 등을) 은밀하게 진행하는 '정부의 침묵'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뉴시스

9시 반 경 사회자는 "청소년들은 차가 끊기기 전에 귀가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한 중학생은 "부모님 허락 하에 왔다"며 "아무리 학생이라도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고, 미국 쇠고기가 안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도 눈에 띄었다. 성북구에서 온 윤지운(10) 학생은 "오늘 점심에 쇠고기 조미료를 이용한 소고기 국이 나와서 반 전체 학생들이 먹지 않았다"며 "(쇠고기가 들어오면) 급식에 혼란이 올 것 같다"고 사뭇 당돌한 얘기를 했다. 학생의 아버지는 "집에서 1시간이나 걸리는 이곳을 지운이가 오고 싶다고 했다"며 "지운이가 TV를 보고 자발적으로 며칠 전에 참가를 결심했고, 나도 급식 등 아이들 먹거리가 걱정돼 동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중학생들은 충청도 천안에서 올라오기도 했다. 그 학생들은 "쇠고기 협상 후 학교 5월 급식에 쇠고기가 들어가는 메뉴가 많아 걱정이 돼서 올라왔다"고 밝혔다.

이날 문화제 계획한 '2MB 탄핵 투쟁연대' 수석공동대표인 백은종 씨는 "여기 모인 젊은 분들을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며 "부패한 나라는 선진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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