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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정부, 이대로 둬서는 안 됩니다"

[인터뷰] '무기한 단식'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내가 이거 오늘 두 통을 마셔야 하는데, 한 통을 다 못 마셨어요."

정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1.5리터(ℓ) 생수병을 끌어당기며 나지막한 한숨을 뱉었다. 오후 5시를 넘기는 시간이었지만, 그의 옆에 놓인 생수병에는 햇볕에 데워진 물이 한통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늘 가릴 곳 하나 없는 청와대 앞길. 그곳에서 정진화 위원장은 지난달 26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0교시, 우열반, 야간 보충 학습 등을 대폭 가능케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자율화 조치'에 반대하는 농성이다.

홀로 진행하는 단식에서 '물 마실 시간'조차 없는 이유는 그를 찾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탓이었다. 경찰은 농성장 인원수가 5명이 넘으면 안된다며 정 위원장의 방문객 수를 제한했지만, 충청도, 경상도 등지에서부터 그를 만나러 온 이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청와대 앞이라는 이유로 천막 하나 치지 못하고, 오후 6시 이후에는 그나마 자리까지 옮겨야 하는 농성이었지만, 그곳까지 찾아가 응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단식 6일째를 맞는 정진화 위원장의 얼굴색은 이미 많이 안 좋았다. 전교조 결성 당시 1주일간 단식을 하고, 서울지부장을 맡았던 당시 국제중학교 설립 철회를 요구하며 16일간 단식 농성에 나섰던 그는 "이번엔 더 길어질 것 같다"며 짧게 웃음지었다.

"하필이면 이런 것만 뽑을 수 있나"
▲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
단식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했나.

정진화 : 애들이 얼마나 더 비명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이 정책이 수정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자율화 조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아직 현장으로 곧바로 내려간 건 아니어서 체감이 좀 덜하지만 조금 있으면 일선 학교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시·도교육청마다 나름대로 새로운 방침을 세운다고 하지만, 크게 다를 게 없다.

특히 사립학교에서는 먼저 치고 나가고 있다. 이미 자율화 조치 한 달 전부터 유명 학원 강사들을 고액으로 불러다 한달에 600만 원씩 주고 방과후 수업을 개최한 학교도 있지 않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나 일부 학생을 밤 12시까지 붙잡아놓는 학교도 많다.

그 업체 매출액이 작년에 비해 매출액이 60% 올라갔다고 한다. 다른 사교육업체들도 물가가 오르고 있다. 결국 사교육을 죽이는 정책이 아니라 사교육 부흥 정책이고, 학교를 학원으로 만드는 학교 학원화 정책이라는 게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사교육 시장이 활화산처럼 움직이고 있다.

교과부가 발표하던 날, 한 외국어고 학생이 자살했다. 게시판에 1등부터 꼴등까지 이름을 게시하는 바람에 괴로워하면서 먼저 떠났다. 그런 일이 더 많이 벌어지지 않을까. 안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청소년 자살률 1위인데, 다른 일도 아니고 성적을 비관해서,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이들이 계속 자살을 하는 희귀한 기록을 낼 것 같다.

프레시안: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경쟁과 다양화를 앞세운 교육 공약을 내걸었다. 그의 당선과 함께 이 같은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교육계에서도 하지 않았나.

정진화: '학교 자율화 조치'는 사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공약이나 선거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거다. 물론 시·도교육청에 권한을 이양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어렵게 만들었던 것들은 하루아침에 없애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예정돼 있던 대입 자율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이외에 학교 자율화 조치는 기존의 지침을 규제 개혁이란 이름으로 한꺼번에 폐기한 것이다. 영어몰입은 예상됐었지만 일단 후퇴시켰다. 그런데 그 연장선에서 아주 전격적인 일들을 정부가 저지르고 있다.

교과부가 폐기한 지침들은 그동안 그나마 공교육을 붙잡아 놓고 있었던 최소한의 안전판, 신호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는 지키라는 선이었다. 일선 현장에 내려진 지침은 200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이런 것만 뽑을 수 있나. 한 예로 사설 모의고사가 허용되는 건 무슨 자율화인가. '규제 개혁'이라는 표현은 눈을 가리는 속임수라고 생각한다.

"몰래몰래 하는 것과, 해도 좋다고 하는 건 다르다"

프레시안 : 한편에서는 학교 자율화 조치 이전부터 이미 학생들은 크게 다를 바 없는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진화 : '하지 마라'고 했는데 몰래몰래 하는 것과, 해도 좋다고 하는 건 다르다. 이제 마음놓고 활개치면서 너도나도 0교시, 심야 보충 수업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7시까지 학교에 오라고 하고, 새벽 1시까지 붙잡아 둔다고 하면 아이들이 언제 숙제하고, 자고, 독서하고, 가족과 대화를 하나. 어른들은 근로기준법으로 8시간 노동을 규정해 놓고, 초과수당, 잔업수당, 철야수당, 특근수당을 받는다. 그런데 학생들이 돈을 받나? 도망갔다고 혼나고, 점수 깎이고…. 차라리 그러려면 돈 받아가면서 해야되지 않나. 모든 학교에서 너도나도 늦게까지 새벽까지 한다고 하면 그러지 않던 학교도 어쩔 수 없이 휘말려가고, 인성 교육에 중심을 뒀던 학교도 어쩔 수 없이 성적 중심,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가버릴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8시간만 일하라는 것도 노동자의 건강과 가정의 휴식, 충분한 수면과 개인의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애들은 고등학교의 경우, 등교에서 하교까지 정규 교과 과정만 8시간이다. 그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최대한 교육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그건 내버려두고, 끝난 다음에 몇 시간을 더 시키느냐에 집중되는 꼴이다. 교사도 힘에 부치고, 애들이 공부할 만반의 태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 문제도 많은 애들의 사정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지금은 공부해야 한다'며 책상 앞에만 앉혀놓는다면, 애들이 앉아있을 순 있겠지만 무슨 생각을 할 것이며, 무슨 공부가 될까. 그게 우리가 말하는 21세기 교육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그리고 누가 청소년들을 그렇게 할 권리를 갖고 있나. 부모? 교사? 아무도 아니다. 그건 애들의 권리다. 공부하고, 쉬고, 자고, 먹고, 놀고, 가족이든 친구든 만나는 게 그들의 권리다.

프레시안 : 그런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는 정책이 '자율화'를 앞세워 긍정적인 인식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정진화 : 자율화라는 프레임으로 그럴듯한 포장을 했지만, 금방 탄로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속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입시 경쟁 풍토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학부모도 있겠지만, 결국 그 아이나 부모를 위해서 행복하고 질높은 교육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 그런 공부를 한 아이가 커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겠느냐. 체험, 봉사, 대화를 스스로 해볼 기회를 잃어버렸던 아이들이, 그것들을 스스로 해보라고 했을 때 뭘할 수 있겠나.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에 대한 가치의 문제가 심각하게 등장할 거다. 그동안 이어졌던 우리의 사회적 가치를 다 포기하는 정책이라 본다.

"교육은 평등이라는 가치가 유일하게 살아있던 분야였다"

프레시안 : 단식 농성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나 연락은 있었는지.

정진화 : 그럴 정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단식을 하는 이유는 정부를 향해서라기 보다는 학생과 학부모를 향한 것이다. 교사, 시민단체, 사회단체, 모든 국민에게 '우리 다시 생각해봅시다, 이렇게 추진되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묻기 위해서다.

프레시안 : 정작 고통받을 학생들이 공부와 시험에 묶여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진화 :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지금 나서기 시작하고 있다. 청소년 단체, 학부모들이 함께 하고 있고, 교육단체가 아닌 시민단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다들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마음이다. 5월 17일에는 날로 심각해져가는 교육계 현안을 두고 함께 모여 투쟁하는 날로 정했다.

프레시안 : 현재 정부는 교육 정책을 두고 평등주의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격적으로 경쟁, 자율, 다양화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정책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예측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정진화 : 그나마 우리사회에서 평등이라는 가치가 유일하게 살아있던 분야가 교육이었다. 영국, 미국에는 값비싼 명문 사립고나 사립대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래도 그나마 돈에 의해서 졸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정서가 컸다. 그것을 깨려는 정부의 방침이긴 하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대운하도 계속 눈치를 보고 있고, 영어 몰입 교육도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하겠다고 해서 100% 되는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 정의가 있고, 최소한 지켜왔던 사회적 가치와 합의가 있다. 아무리 정부와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들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 당장은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문제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 철회될 거라고 본다.

결국 시간 문제다. 초·중등학교가 난장판이 되고 혼란에 빠지기 전에 이를 최소화시켜보려고 시작을 하고 있지만, 학교 내에서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우리 국민들이 나설 거라고 본다. 저항할 때 저항해왔고, 교육에 관한 애정과 교육열이 강하지 않나. 정부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할 거다. 전교조도 열심히 나서서 막아내겠다.

"진짜 학교 자율화의 모습, 보여주겠다"

프레시안 : 대안을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도 중요할 듯하다.

정진화 : 그렇다. 학부모들이 바라는 새로운 학교의 상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새로운 학교 운동, 학교 개혁 운동에 예전보다 박차를 가해서 국민들에게 현실적인 희망을 보여주겠다. 진짜 학교 자율, 학교 자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소중하게 여기는 학교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일사천리, 일방통행, 입시전쟁 교육에 저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학교의 물결을 만들어내서 교사, 학부모,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전교조의 과제다.

참여정부 말기에 교장공모제가 실시됐다. 이것을 대폭 확대해서, 더 나아가서 교장선출보직제를 실시해서 학교 구성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민주적인 교장이 탄생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법제화된 학부모회, 교사회, 학생회가 학교 자치에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학교 자율화의 모습 아닐까. 그것이 우리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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